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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 격추 거짓말에…이란시위 '반미'→'반정부' U턴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2020.01.13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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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FP./사진=AFP.




이란의 우크라이나 항공 소속 여객기 격추 사건으로 이란 정부가 국내외 압박을 거세게 받고 있다. 국내 반발 여론을 무마하고 국제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이란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위기에 따른 생계난을 이유로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이란 시민들이 반미 구호를 외치다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를 계기로 자국 정부를 다시 정면 겨냥한 것도 이란 지도부의 고민이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 등에 따르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수도 오타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항기 격추 사건은 끔직한 일"이라면서 "이란은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고 밝혔다. 이어 "캐나다는 (진상 규명 전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란의 철저한 책임 인정을 촉구한다"면서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에 대한 자세 천명·책임자 처벌·희생자 시신 송환·배상금 지급·공식 사과 등을 기대한다"고 요구했다.



지난 8일 수도 테헤란을 이륙한 우크라이나 항공 여객기가 추락하면서 탑승자 176명 전원이 숨졌다. 그 중 캐나다 국적자는 57명, 우크라이나 국적자는 11명으로 집계됐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이란군이 여객기를 격추시켰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자 이를 일축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압박 속 미사일 격추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사흘 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이날 이란혁명수비대는 여객기를 미국의 순항미사일로 오인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시인했다.

이에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미국이 살해하면서 잠잠해졌던 이란 내 반정부 여론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날 테헤란의 아미르카비르 공대 앞에서 대학생 수백 명이 모여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며칠 전만 해도 "미국에 죽음을" 구호가 제창되는 반미시위가 열렸지만 이날 시위대는 "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 구호를 외치면서 이란 정부를 비판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도 나왔다.

이에 따라 이란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전향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민항기 격추로 대미 강경파인 군부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필두로 온건파가 다시 힘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로하니는 오랜 경제제재에 지친 유권자들에게 개혁과 개방을 호소하며 당선됐다. 실제로 이란핵합의 체결로 미국의 제재가 풀린 2016년 이란의 국내총생산(GDP)는 12.52% 올랐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핵합의를 탈퇴, 제재를 복원하면서 로하니의 입지도 좁아졌다. 지난해 이란의 실업률은 16.78%(전망치)를 기록하고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대비 9.46% 하락하는 등 불황에 빠졌다.

재정난을 맞은 정부가 지난 11월 석유 보조금을 삭감하면서 유가가 오르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여기에 솔레이마니의 사망으로 강경파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됐지만 여객기 격추 사건으로 한 번에 뒤집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혁명수비대 측은 "모든 책임은 군에 있다"면서 사죄했다. 이란 정치·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혁명수비대가 이토록 자세를 낮춘 것은 사상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란 내 반정부 여론을 부추기며 압박에 나섰다. 그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영어와 페르시아어(이란어)로 "나는 대통령 취임 때부터 오랜 시간 고통 받아온 용감한 이란인(시위대)들을 지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 "우리는 당신들의 용기에 감명 받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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