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운전하더라"…대만 관광지서 생긴 일

머니투데이 한민선 기자 2020.01.12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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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 가오슝 치진섬 '전동자전거'…안전불감증 여전

tvN 예능프로그램 '더 짠내투어' 방송 사진./사진=tvNtvN 예능프로그램 '더 짠내투어' 방송 사진./사진=tvN


#"초등학생이 운전을 하더라니까요" 직장인 김지영씨(가명)는 지난해 대만 가오슝을 여행하다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전동자전거를 타던 김씨를 누군가 뒤에서 들이받았는데, 운전자가 '초등학생 남자아이'였던 것. 김씨는 "가벼운 접촉사고라 다치지는 않았다"며 "'죄송하다'며 사과는 하는데, 왜 아이한테 운전을 맡기냐고 물어보니 '그래도 되는줄 알았다. 면허 확인을 안했다'고 답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25명의 목숨을 앗아간 '다뉴브강 유람선 참사' 이후 8개월이 지났지만, 해외 관광지 레저·체험 시설에서 최소한의 안전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등 '안전불감증'이 여전하다. 특히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대만에서 전동 자전거 체험이 각광받고 있는 가운데 이와 관련한 사고 위험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오슝 필수관광코스 '치진섬 전동자전거'…운전자도 보행자도 위험
tvN 예능프로그램 '더 짠내투어' 방송 사진./사진=tvNtvN 예능프로그램 '더 짠내투어' 방송 사진./사진=tvN
남부 타이완의 최대 도시인 가오슝은 저렴한 가격으로 방문할 수 있고 비행 시간(최소 2시간30분)이 짧아 인기 여행지로 꼽힌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대만을 방문하는 한국인은 2010년 이후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국내 항공사가 인천~가오슝 노선 정기 운항을 시작했고, tvN 예능프로그램 '더 짠내투어'에 소개되면서 가오슝 방문자가 더욱 늘었다.



가오슝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치진섬'에 들린다. 걸어 다니기에는 비교적 넓은 곳이라 이곳을 찾는 관광객 대부분은 전동 자전거를 탄다. 페달을 밟지 않아도 전기로 움직이는 전동자전거는 2인 기준 1시간에 200대만달러(한화 약 8000원) 정도면 빌릴 수 있다.

문제는 이 전동자전거를 '누구나' 운전할 수 있다는 것. 전동자전거는 한국의 경우 페달을 밟을 필요가 없는 전동자전거(125cc 이하)는 '원동기 장치 자전거'에 해당한다.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최소 '원동기장치자전거 운전면허'가 필요하다. 운전자는 물론 동승자도 헬멧 등 인명보호 장구를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관광지에서는 관행적으로 면허가 없어도 전동자전거를 대여를 할 수 있고 헬멧이나 안전벨트 등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다. 대만여행 관련 커뮤니티에는 "면허 없어도 운전 가능한가요", "자전거도 못 타는데 어렵지 않을까요" 등 관련 질문이 자주 올라온다. 이에 대해 "중학생 자녀가 운전했다", "신호도 볼 줄도 몰랐는데, 운전에서 재능을 찾았다"라며 답글이 달린다. 이 같은 후기가 안전불감증을 낳고 사고를 부추기는 격이다.


전동자전거 사고를 목격하거나 경험한 관광객도 적지 않다. 전동 자전거가 일반 자동차 도로 위를 달려야 하고, 오토바이만큼 빠르다는 것을 고려하면 '예견된 사고'다. 가오슝 뿐만 아니라 단수이, 컨딩 등 대만의 다른 도시에서도 전동자전거를 비롯해 스쿠터, 오토바이 등을 면허 확인 없이 빌려주는 곳이 많다. 한국 국제운전면허증으로는 대만 내 운전이 불가능하다.

지난해 가오슝을 여행했던 대학생 최모씨(25)는 "길거리에서 걷다가 전동자전거에 치일뻔했다"며 "도로 구분이 정확히 안 돼있는데 누군가 '비키세요'라고 말하길래 뒤를 봤더니 전동자전거가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동자전거 속도가 꽤 빠른데 전체적으로 불안정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연 다 운전을 할 줄 아는 걸까 궁금했다"고 덧붙였다.

해외여행 안전불감증 여전…"레저·체험 상품 51% 사전 안전교육 없어"
7일 오후(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인근 유람선 '허블레아니' 침몰 현장을 찾은 헝가리 시민과 관광객들이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사진=뉴스17일 오후(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인근 유람선 '허블레아니' 침몰 현장을 찾은 헝가리 시민과 관광객들이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사진=뉴스1
해외여행 안전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5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에서 유람선 침몰 사고가 발생해 배에 타고 있던 한국인 2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탑승자들이 대부분 구명조끼를 입지 않아 인명 피해가 더 컸다.

또 지난해 11월 라오스에서는 줄에 매달려 빠르게 내려오는 하강 스포츠 '짚트랙'(zip track·짚라인)을 체험하던 한국인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했다. 높이 7m인 나무 지지대가 부러져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당시 해외 액티비티 시설의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4월에는 터키 파묵칼레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열기구가 불안정한 착륙을 해 탑승객들이 경상을 입었다. 2018년에는 파묵칼레에서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하던 한국인 관광객이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부분 안전 장비가 부족하고, 기본적인 안전 수칙들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 발생한 사고다. 한국어를 통한 안전교육을 제공하는 곳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패키지 해외여행 9개 상품에 포함된 수상·수중 레저체험 활동(37개), 현지 이동수단(17개)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점검 결과, 레저·체험 상품 중 51.3%는 사전 안전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 33.3%는 안전교육이 외국어로 진행됐다. 조사대상 이동수단(버스·승합차) 17개 중 9개(52.9%) 차량에서는 운전자의 탑승객 안전벨트 착용 안내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안전하지 않은 해외 교통수단은 소비자 스스로 이용하지 말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유수재 한국교통안전공단 대구경북본부 교수는 "대만의 '전동자전거'는 자전거와 운동역학 특성이 다른데, 면허가 없어도 빌려주는 것은 안전 확보가 담보되지 않는 것"이라며 "특히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운전한다면, 민첩하게 대처하지 못해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도로 가면 자동차로 분류가 된다. 다른 자동차와 함께 달리기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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