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공정거래위원회 서기관
퀄컴과의 '1조원 소송'을 승리로 견인해 2019년 '올해의 공정인'으로 선정된 이지훈 서기관은 승소의 숨은 주역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측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참여한 '어벤져스급' 글로벌 대기업이다. 평소라면 '같은 편'으로 상상하기 힘든 삼성전자·LG전자·애플·인텔·미디어텍·화웨이가 퀄컴에 맞서기 위해 '공정위 연합군'을 자처했다.
이 서기관은 "이들 기업이 퀄컴과 주고받은 이메일 등은 공정위 스스로는 확보하기 힘든 자료"라며 "소송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소송 시작 후 2년 가까이 이어진 LG전자의 '침묵'은 공정위로선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었다. 공정위는 LG전자에 그저 소송 참여 의사를 물을 뿐이었다. 강요할 수는 없었다. 2018년 말 LG전자가 소송 참여를 결정했을 때 비로소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작년 4월, 이번엔 애플이 연합군에서 빠져나가 공정위를 힘들게 했다.
이지훈 공정거래위원회 서기관
2017년 초 퀄컴이 소송을 제기하자 공정위는 즉각 10여명 직원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 서기관은 같은 해 6월 송무담당관실로 발령받아 TF에 합류했다. 2006년 공정위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이래 12년 만에 맡는 '역대급 사건'이었다. 송무담당관실 직원은 평균 20~30개 소송을 맡지만 이 서기관은 퀄컴 소송만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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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전략은 퀄컴과 달랐다. 퀄컴은 세부 사안을 많이 따졌지만, 공정위는 큰 틀에서 제재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노력했다. '물량' 차이가 전략 차별화로 이어졌다. 퀄컴은 국내 대형 로펌인 세종, 화우, 율촌을 동원했다. 공정위는 소형 로펌 바른과 개인 변호사(최승재)에게 대리를 맡겼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었다.
이 서기관은 "퀄컴은 '자원'이 많은 만큼 이메일 하나, 세부 사실 하나를 다 따졌다"며 "우리는 큰 틀에서 퀄컴의 라이선스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모뎀칩셋 사업자에게 사업 모델을 어떻게 관철했는지 등 전체 맥락에서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대응했다"고 말했다.
소송은 길고 복잡했다. 3년 동안 변론은 17회 진행됐고, 18부의 서면 검토가 이뤄졌다. 공정위는 진득하게 소송에 대응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달 4일 공정위 판정승을 선언했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1조311억원 전체를 적법하다고 봤고, 시정명령도 일부를 제외하곤 공정위 판단이 옳았다고 결론 내렸다.
과징금 전체가 인정된 데 대해 이 서기관은 "과징금이 얼마나 인정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원하던 결론이 나와 뿌듯했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이 시정명령 일부를 적법하지 않다고 본 것은 아쉽지만, 대법원 소송에서 충분히 설명하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서울고법은 퀄컴이 휴대폰 제조사와 맺은 포괄적 라이선스 계약과 이에 따른 비용 수취 등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서기관은 "대법원에서 고등법원 판결의 90% 이상은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전이 아직 끝난 게 아님에도 '올해의 공정인'으로 선정된 것은 격려의 의미로 이해한다"며 "모든 공정위 직원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