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보여주기식 '인공지능 이벤트' 이제 그만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 2020.01.0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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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이세돌 9단의 은퇴 대국은 ‘인간과 기계의 바둑대결’로 또한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세돌의 마지막 상대는 토종 AI(인공지능) ‘한돌’.

 이세돌다운 선택이다. 이세돌은 2016년 구글 ‘알파고’와 대결로 바둑팬뿐 아니라 바둑을 접해보지 못한 일반 대중에게도 바둑과 이세돌이란 이름석자를 크게 알렸다. 결과적으로 이세돌은 알파고, 한돌과 대결에서 모두 패했지만 적어도 1승씩은 거뒀다는 것 자체가 영예로운 그의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반면 한돌 입장에서 본다면 다르다. 한돌을 개발한 NHN은 뭘 얻었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NHN은 이세돌과 대결을 통해 한돌의 수준 높은 기술력을 선보이려 했다. 하지만 첫 번째 대국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패했다. 두 점을 먼저 두게 한 핸디캡이 민망할 정도였다. 이세돌과 맞붙은 ‘알파고 리’에 100전 100승을 거둔 ‘알파고 제로’를 한돌이 넘어섰다는 평가가 무색했다. 한돌은 2, 3국에선 승리했지만 이번 대결을 통해 AI의 기술력을 알리려던 NHN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후배들이었다면 이겼을 것” “중국 AI ‘절예’와 비교해 아직 부족하다” 등 이세돌의 혹평이 화제가 됐다.

 알파고도 이세돌에게 한 판을 졌는데 한돌에만 너무 냉혹한 평가를 내린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3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알파고 등장 이후 성능 개선을 거듭한 AI가 바둑판을 정복했기 때문이다. 한돌은 이세돌 은퇴대국 전 국내 최상위 프로기사 5명과 겨뤄 5전 전승을 거뒀다. 이세돌과 대결은 한돌의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력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한계점을 노출하며 새로운 과제를 떠안았다.



 산업분야를 막론하고 기업의 최우선 생존전략은 AI 경쟁력 확보다. 연구논문 이론이 아닌 생산현장, 실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AI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이벤트를 통해 AI의 특정 능력만을 홍보하는 시대는 지났다. 더군다나 이번 대결은 특정업체의 기술을 홍보하기 위해 AI가 동원된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샀다. 보여주기식 AI 이벤트는 이번이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
[기자수첩]보여주기식 '인공지능 이벤트'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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