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앞에서 분열하진 않겠다"…고개 숙인 한진家 모자

머니투데이 기성훈 기자 2019.12.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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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 회장 기물파손 소동에 공동 사과-갈등 마무리는 아직…외부 경영권 세력 대응 차원

최근 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불거진 한진 (21,200원 ▲200 +0.95%)그룹 총수 일가 간 갈등에 대해 조원태 회장과 어머니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번 사과문은 총수 일가에 대한 회사 내·외부의 비난 여론 확산을 막고 경영권 위협 외부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일단 사태 수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조원태·이명희 "불미스러운 일 사과…가족 간 화합할 것"
사진 왼쪽부터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사진=머니투데이 DB 사진 왼쪽부터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사진=머니투데이 DB


조 회장과 이 고문은 30일 사과문을 통해 "지난 크리스마스에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집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조 회장은 이 고문께 곧바로 깊이 사죄를 했고 이 고문은 이를 진심으로 수용했다"며 "저희 모자는 앞으로도 가족 간의 화합을 통해 고 조양호 회장님의 유훈을 지켜나가겠다"고 전했다.



조 회장은 성탄절인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이 고문 자택을 찾아 말다툼과 함께 기물 파손 등의 소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이 고문이 자신을 공개 비판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불만을 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 전 부사장은 최근 법무법인 원을 통해 "조원태 대표이사가 공동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 왔고 가족 간의 협의에 무성의하게 일관했다"며 "향후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단 봉합…"캐스팅보트 쥔 이명희, 목소리 커질 것"
"적 앞에서 분열하진 않겠다"…고개 숙인 한진家 모자

이번 사태의 본질은 조 회장의 경영권이 안전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의 한진칼 사내이사 임기는 내년 3월 23일까지다. 한진칼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처리해야 한다.

한진칼은 한진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다. 조 회장 입장에서는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가족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조 회장이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면 한진그룹 총수는 경영권을 잃게 된다.

현재 한진칼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28.94%며, 조 회장(6.52%)과 조 전 부사장(6.49%)의 지분율이 엇비슷하다. 막내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6.47%)와 이 고문(5.31%)도 5% 이상의 지분율을 보유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당초 이 고문과 조 전무는 사실상 조 회장 편에 섰다는 게 그룹 안팎의 시선이었다. 조 전무를 경영에 복귀시킨 건 역시 조 전 부사장과 경영권 분쟁에 미리 대비한 측면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고문은 경영권 분쟁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룹 안팎에선 이 고문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싶어한다는 소문도 제기된다. 결국 이 고문이 조 전 부사장을 앞세워 조 회장을 압박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조 전 부사장이 이 고문과 조 전무와 힘을 합하면 조 회장 연임을 저지는 할 수도 있다.

한진그룹 사정을 잘 아는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벌어진 임원인사 등으로 가족 간 갈등이 표면화됐다"면서 "이번 사태 이후 앞으로 그룹 내 이 고문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룹 경영권은 지켜야…적(KCGI) 앞에서 분열하진 않겠다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지난 4월 1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에서 거행됐다.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두 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 유족들이 영결식장으로 향하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지난 4월 1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에서 거행됐다.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두 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 유족들이 영결식장으로 향하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조 회장과 이 고문은 사과문에서 "고 조 회장의 유훈을 따르겠다"며 가족 간의 화합을 강조했다. 이는 사모펀드 KCGI(일명 '강성부 펀드')와의 경영권 분쟁을 염두해 둔 것이다.

단일 주주 기준으로 한진칼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KCGI(17.29%)다. 가족 간 경영권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KCGI 등 외부세력으로 경영권이 넘어갈 수 있어서다. 조 전 대한항공 (22,000원 ▲100 +0.46%) 부사장 역시 KCGI와의 연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한진그룹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향후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의 또 다른 변수는 델타항공과 반도건설이다. 델타항공은 10%를, 부산에 기반을 둔 건설사 반도건설은 계열사 대호개발 등을 통해 지분 6.28%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경영권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다. 델타항공은 조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 회장 개인 보다는 회사 차원의 전략적 제휴라는 시각도 있다. 반도건설 역시 구체적인 움직임이 아직 없다.

재계 관계자는 "내년 주총까지 가능한 시나리오가 너무 많아 현재로서는 예측이 어렵다"면서 "외부 세력으로 인해 한진가 모두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해 가족 간 분열은 막기 위해 노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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