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시간 버스서 보낸 취준생, "내년엔 꼭"[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9.12.2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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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한 청춘, 육아서 탈출한 하루, 처음 키운 강아지…2019년, 평범한 사람들이 보낸 한 해 이야기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밤거릴 밝히는 영롱한 불빛처럼, 회상하면 눈 앞에 반짝이는 기억만 안고, 새로운 한 해로 가기를./사진=뉴시스밤거릴 밝히는 영롱한 불빛처럼, 회상하면 눈 앞에 반짝이는 기억만 안고, 새로운 한 해로 가기를./사진=뉴시스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1차로 소주 한 잔을 하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이미 소 곱창 3인분에 볶음밥 2인분을 해치웠지만, 둘은(나와 아내) 여전히 배고팠다. 동네 치킨집을 봤고, 아내와 눈이 마주쳤고, 의사 결정은 단 1초 만에 이뤄졌다(일심뚱체).

"치킨 한 마리 주세요!"



주문은 10초면 충분했다. 닭 튀기는 기름 소리는 위장 내 펩신(단백질 분해 요소) 분비를 촉진 시켰다. 우린 이내 아까 뭘 먹었었는지 까먹어버렸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 했던가. 몸을 깨끗이 비워 경건히 만들었고, 치킨을 실물 영접하기 전 맥주 두 캔을 사왔다. 고소한 냄새가 교감 신경을 흥분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입안에 튀김 옷이 바삭거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단골 가게 사장님의, 우뚝한 뒷모습을 봤다. 어쩐지 말을 걸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물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시냐고. 사장님은 고개를 돌려 찡긋 웃으며 "오늘도 자정까지 하죠"라고 했다.



어쩌다 가족 얘기로 이어졌다. 3살이 된 딸 아이가 있고, 결혼한 지 5년 된 아내가 있단다. 가게를 정리해 집에 가면 새벽 1시쯤. 딸이 잠들면 부부가 오붓이 조용히 술 한잔할 거라 했다. 올해 얘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보냈다"는 사장님 말에, "여기 치킨이 최고 맛있다"고 화답했다. 감사하다고 웃으며, 잘 튀겨진 치킨 봉지 양쪽을 오므려 두 손으로 건네던 그는, 듬직한 남편이고 아빠였다.

광화문광장 앞 거리에 세워진, 여러 방향의 이정표들. 어디서 왔든, 다시 어디로 가든, 당신의 앞날이 빛나기를./사진=남형도 기자광화문광장 앞 거리에 세워진, 여러 방향의 이정표들. 어디서 왔든, 다시 어디로 가든, 당신의 앞날이 빛나기를./사진=남형도 기자
올해도 저물어간다. 그 안엔 또 많은 이야기가 담겼다. 소복소복 쌓인 눈이 녹고, 봄눈이 움트고, 무더위에 땀을 훔치고, 가을 낙엽이 바스락거렸었다. 그러니 또 겨울이다. 뜨끈한 국물과 술 한 잔에 회포를 풀고, "시간 참 빠르다"는 말에 "그러게"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 한 해를 보냈다.


퇴근길, 입김을 불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 한 해를 온전히 움직인 건 그들이라고. 그 '평범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꿈처럼 사는 딴 세상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네 일상 말이다. 그런 게 더 소소하고 귀하다 여겼다.

'인터뷰'라 하면 늘 뭔가 특별한 이들 몫이 아니었던가. 그게 아쉬워 무작정 거리로 나서 물었다. 올해 기억에 남는 일을 들려달라고. 독자들에게도 이메일과 SNS를 통해 사연을 보내달라 했다. 지난달부터 그리 차곡차곡 이야길 모았다.

그걸 함께 봤으면 좋겠다. '누군가 보낸 한해는 이랬구나, 다들 그렇구나', 그리 고개를 끄덕였으면 싶다. 얼굴은 모르더라도, 마음은 통하게 마련이니까. 인생은 초콜릿 상자에 든 초콜릿과 같아서(영화 포레스트 검프 명대사), 달고 쓴 맛이 함께 있다는 걸 공감했으면 싶다.

그게 다가올 한 해를 보낼 자그마한 용기가 되기를. 종이에 손글씨를 꾹꾹 눌러쓰듯, 소중한 이야길 하나하나 담아봤다.

장미꽃 핀 계절에 만난, 꽃동네 고양이


꽃동네 고양이들의 휴식 시간. 이들을 보며 시간이 흐른다는 걸, 삶이 이어진다는 걸, 감사해하고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사진=구윤아 독자 제공꽃동네 고양이들의 휴식 시간. 이들을 보며 시간이 흐른다는 걸, 삶이 이어진다는 걸, 감사해하고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사진=구윤아 독자 제공
구윤아씨가 충북 음성 꽃동네에 처음 간 건 중학생 때였다. 단체로 봉사활동을 하러 갔었다. 마치고 떠날 때 그는 맘속으로 다짐했었다. 이곳에 꼭 다시 찾아오겠다고.

10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새 소녀는 어엿한 어른이 됐다. 하지만 그 약속을 잊진 않았다. 학교 다니랴, 일하랴 바빴음에도.

장미꽃 피는 5월, 구씨는 꽃동네에 왔다. 오래 걸려 지킨 약속이었다. 휴가를 내고, 1박2일 동안 이곳 인곡자애병원서 봉사하기로 했다.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질병이 깊거나, 임종을 앞둔 이들이 지내는 곳이었다.

구씨는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셨다. 환우들 얼굴과 몸을 깨끗하게 해주려 했다.

팔을 닦으려 잡았다가 그는 그만 깜짝 놀랐다. 나뭇가지 같았고, 그의 손목보다 더 가늘었다. 이리 앙상한 팔목은 생전 처음이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좋은 일을 한단 보람보다, 죽음을 앞둔 이들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괴로움이 더 밀려왔다.

마음을 달랠 겸, 쉬는 시간에 산책했다. 근처 언덕엔 고양이 가족이 있었다. 귀여웠다. 꽃동네 식구들은 녀석들을 하나씩 소개해줬다. "얘는 새로 태어났어요", "얘는 성격이 이래요", "얘가 쟤 새끼에요." 그들은 마치 자식 자랑을 하는 듯했다. 새로울 것 없는 작은 산골짜기서, 고양이들은 계절이 달라진단 걸, 삶이 계속된단 걸 일러주는 활력소였다.

그걸 보며 구씨는 깨달았다.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곁에만 있어도 힘이 된단 걸.

그래서 내년에 다시 꽃동네에 가기로 다짐했다. 10여년 전 중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반짝이는 거리 속 '폐지 할머니'


최소라씨는 올해 20대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리고 그 하루가 기억에 남았다.

귤을 사서 남자친구 어머니 병문안을 가던 길이었다. 파지를 가득 담은 손수레가 움직이는 걸 봤다. 몸보다 더 큰 걸 끄는 이는 한 할머니였다.

그러다 파지가 떨어졌고, 할머니는 이를 모른 채 걸음을 재촉했다. 세상에서 최씨 어머니 다음으로 착한, 그의 남자친구는 파지를 주워서 손수레에 실었다. 그만큼 착한 최씨도 할머니 가방에 귤을 한 망 넣어드렸다.

사라져가는 뒷모습은 씁쓸했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거리에서, 할머니는 유독 쓸쓸해 보였다.

그건 그날이 크리스마스이기 때문만은 아녔고, 그의 손수레가 무거워 보인 것 역시 파지 때문만은 아녔다. 내년은 좀 더 찬란하게, 다만 함께 빛나기를, 최씨는 그런 바람이었다.

6년의 연애, 그리고 '결혼'


산토리니의 짙고 파란 바다, 웅장했던 아크로폴리스 신전. 김유진씨는 올해 늘 꿈꾸기만 했던 그곳, 그리스에 다녀왔다. 잊을 수 없이 즐거웠던 '신혼여행'으로.

김씨는 직장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보다 두 살 더 많았다. 그렇게 6년 동안 긴 연애를 했다.

서른셋이 되던 올해, 두 사람은 평생의 반려자가 됐다. 결혼식 당일에 울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씩씩하게 잘 마쳤다. 실수할까 온 신경을 다 쓴 덕분이었다. 살면서 가장 많은 축하를 받았고, 또 이런 날이 올까 싶어 새롭고 벅찬 기분이었다.

달달한 신혼을 만끽하고 있는 김씨는 가족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고 했다. 부모님에겐 "이렇게 잘 키워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친오빠와 언니들에겐 "4남매 중 막내에게 항상 양보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결혼식 날 감사 인사도 잘 못 했다면서.

그리고 사랑한다고,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서른 되기 한 달 전, '독립'을 했다
낡지만 낯선 동네를 산책하는 게, 꽤 괜찮은 취미가 됐다./사진=박지혜 독자 제공낡지만 낯선 동네를 산책하는 게, 꽤 괜찮은 취미가 됐다./사진=박지혜 독자 제공
아침에 눈 뜨면, '내게 왜 여기 있지'란 생각을 하며 하루가 시작된다. 29년 만에 독립한 박지혜씨 이야기다.

새로움을 동경하던 그에게, 30년 가까이 매일 같은 길로 등하교를, 출퇴근을 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지하철 2호선을 탄 그는 마치 '고정핀' 같았다.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사람들 틈에서 흔들릴 리 없는. 숨이 막혔다. 어느 날부터는 모든 게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 됐다.

서른 살이 되기 한 달 전, 박씨는 마침내 '독립'했다.

새 동네는 오래되고 낡았지만 근사하다. 높은 건물이 없어 시야가 트였다. 오래된 아파트 옆 은행나무도 근사하다. 꼬맹이 때나 보던 작은 철물점과 구멍가게도 발견했다. 취향대로 꾸며진 작은 카페들도 보인다. 한 동네서 살아온 그에게, 동네 구경은 꽤 즐거운 취미가 됐다.

집에서 회사까진 버스를 타고 영동대교를 건넌다. 지옥철을 떠나, 짙푸른 한강을 바라보며 출퇴근하는 삶이란!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신분 상승이라도 한 기분"이란다.

편안함과 휴식, 건강한 삶과 자연스러운 공간, 박씨는 그리 하루하루를 감사히 채우고 있다.

700시간을 버스에서 보냈다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사진=정혜인 독자 제공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사진=정혜인 독자 제공
첫눈이 오기 전 취직하고 싶었다. 취업준비생 정혜인씨는 그런 맘으로 고된 나날을 견뎌왔다.

기자가 꿈인 그는, 서울의 한 저널리즘 학교 학생이 됐다. 소중한 기억이다. 정씨처럼 함께 꿈꾸는 이들이 거기 있었다. 열심히 공부했고, 소소한 성과도 있었다. 수많은 순간을 울고 웃었다.

집은 수원이라, 올 한 해 최소 700시간을 버스에서 보냈다. 수원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수원으로, 그게 하루 왕복 4시간쯤 됐다. 그동안 들었던 음악, 떠올린 생각이 수천 개쯤 됐을까. 밤 11시,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 동호대교와 반포대교를 보며 '이 지긋지긋한 취준 생활이 언제 끝날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첫눈이 내렸다.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취준생이었다. 정씨는 헛헛한 마음에 곧장 술 한잔하러 갔다.

연말은 행복할 것 같다. 그의 남자친구가 가수 크러쉬 콘서트 티켓을 선물해줘서다. 그날만큼은 잠시 취준생서 벗어나 즐기려 한다. 재충전하고 다시 달리려 한다.

머지않아 이 시간도, 지나간 추억이 되리라 믿으면서.

저는 '아빠'입니다


올해 봄, A씨는 아빠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 뱃속엔 예쁜 아기가 있었다. 그는 작은 생명을 '별이'라 불렀다. 매일 아내 배를 쓰다듬었다.

부부 이야기를 잠깐 하면, 둘은 결혼식도 못했다. A씨 부모님이 10살 많은 아내를 반기지 않았다. 형편도 넉넉지 않았다. 월세 단칸방에 살았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다. 행복했다. 거기다 아기까지 생겼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A씨 아내가 하혈을 시작했다.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갔다. '유산'이었다. 한 번도 안아보지도, 뽀뽀하지도 못한 아이를 황망히 보냈다.

새옹지마라 했던가.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집안 사정은 나아졌다. 일이 잘 풀려 이젠 그럴싸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래도 A씨는 때때로 가슴이 시리다. 아이 숨결을 느끼고 싶어서, 단칸방 시절로 되돌아가더라도.

"그래도 그 아이는 제 아이입니다. 저는 아빠입니다."

그가 보낸 사연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도서관서 동고동락한 '언니'에게
함께 힘듦을 나눈 이와의 청량한 한 잔, 더 말해 무엇하랴./사진=강연지 독자 제공함께 힘듦을 나눈 이와의 청량한 한 잔, 더 말해 무엇하랴./사진=강연지 독자 제공
강연지씨는 올해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며,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됐다.

강씨가 시험준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도서관에 갔는데, 건너편에 앉은 한 여성이 굉장히 아파 보였다. 심지어 걷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그게 자꾸 눈에 밟혔다. 그래서 복도를 지나다 마주치면 화장실 문도 잡아주고, 엘리베이터도 잡아줬다.

그러다 대화를 하게 됐다. 알고 보니 언니였다. 그는 공무원 준비를 한 지 1년 됐는데, 허리가 많이 안 좋아져 힘들다고 털어놨다. 원래 간호사였던 강씨는 허리 건강 얘길 해줬고, 언니는 시험에 실패할까 두려웠던 그를 공감하고 위로해줬다.

둘은 마치 10년 넘게 안 사이처럼 잘 맞았고, 급격히 친해졌다. 강씨는 심지어 공부하는 게 재밌었단다.

그러다 강씨가 공부 장소를 도서관에서 독서실로 옮기게 됐다. 도서관 마지막 날, 그는 언니와 헤어지는 게 아쉬워 많이 울었다. 힘들 때 알게 된 인연이라 더 그랬다.

공무원 시험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연남동서 다시 만났다. 얼음 컵에 소주를 담아 마시며 여름밤을 만끽했다. 10분의 대화마저 사치였던, 지나간 시간을 보상받듯 무려 5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턱이 아플 정도였다.

시험이 고될지라도, 힘들 때 위로해주는 이가 있어 더없이 소중한 한해였다고. 언니, 지인들, 무엇보다 가족들까지. 그는 "꼭 시험에 붙어 그간 받았던 사랑을 베풀고 싶다"고 했다.

취업 성공, 계속 "합격 맞냐"고 물었던 엄마
취업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머니 얼굴이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취업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머니 얼굴이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김건휘씨는 이달 취업에 성공했다. 오래 꿈꿔왔고,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합격 소식을 부모님께 전했다. 특히 어머니가 뛸 듯이 기뻐했다. 전화 너머 목소리는 떨렸다. 계속 "합격 맞냐"고 김씨에게 물었다. 그 또한 찡하고 뿌듯했다.

20대 초반 생각이 났다. 수험생 때, 입시가 많이 꼬였었다. 수능을 다시 봤었다. 결과적으론 좋은 경험이었지만, 부침이 있었다. 우울하기도 하고, 자존감도 떨어졌다.

그 이후엔 열심히 살면서 만회하려 했다. 그리고 이번에 좋은 결과가 나와, 그 보답을 받은 것 같아 좋단다.

스스로 해주고픈 말이 있단다. 여태까지 수고했다고, 잘해 낸 것 같다고, 진짜 새로운 시작이니까 또 달리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이제껏 그랬듯이.

매주 토요일, '신촌역 라이브'의 추억
당신의 연주에, 누군가는 한해가 행복했답니다./사진=임아랑 독자 제공당신의 연주에, 누군가는 한해가 행복했답니다./사진=임아랑 독자 제공
임아랑씨가 보낸 2019년은, 튀지 않는 편안한 음악 같았다. 뭐랄까, 유니크하진 않아도 든든하고 안정감 있는 왼손 반주 같은.

그 비유처럼 임씨는 매주 토요일 저녁 6시마다 신촌역으로 향했다. 라이브로 하는 길거리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가 무척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였다.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 진행됐다.

생음악의 매력은 엄청났다. 연주곡은 비슷했지만, 날씨와 관객, 기분에 따라 신기하게 매번 달랐다. 그 자리에서만 오롯이 담을 수 있는 분위기에 취했다. 다 듣고 나면 일주일 치 스트레스와 피로가 싹 가셨다. 그 덕분에 또 다른 한 주를 잘 맞을 수 있었다.

연말은 공연 성수기다. 임씨는 이미 공연 3개를 예매해뒀다. 통장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무척 풍성하다. '행확소', 행복이 확실한 소비인 걸 잘 아니까.

아팠다가, 불안할 만큼 행복해져서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딱히 하고픈 것도 없어 시작한 공무원 시험준비였다.

공부만 하다 보니, 더 간절해졌다. 그러나 이수지씨에겐 시험 운이 따르지 않았다. 무려 세 번이나 최종 면접서 떨어졌다. 해가 갈수록 체력은 떨어졌다. 마음도 몸도 지쳐갔다. 병이 났다.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있다가, 1년만 놀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그러다 남자친구가 프로포즈를 했다. 이씨는 망설였다. 이뤄놓은 게 없다는 생각에. "완벽한 행복이 뭔지 보여주겠다"는 말에 결혼했다.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서 살았다.

그게 벌써 1년이 됐다. 특별한 한 해였다. 남편 말처럼 오롯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게 문득 불안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남편에게 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냐고, 이 행복이 끝나면 어떻게 사느냐고.

내년 1월엔 한국에 돌아간다. 기다리고 있을 온갖 걱정이 두려울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은 맘 편히 푹 쉬고, 행복을 한껏 누리고 싶으니까. 특별했던 2019년, 안녕.

스물셋, 쉰다고 쫄지마
고향에서 보낸 휴학생활, 거제로 엄마와 떠난 여행. 그 추억이, 삶에서 가장 값진 것이리라./사진=박소미 독자 제공고향에서 보낸 휴학생활, 거제로 엄마와 떠난 여행. 그 추억이, 삶에서 가장 값진 것이리라./사진=박소미 독자 제공
두 학기째 휴학 중이던 박소미씨는 올해 고향 천안에 돌아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살이를 했었다. 그러니 고향에 간 건 3년 만이었다. 언제 또 이렇게 가족들이랑 살아보겠냐는 맘이었다.

참 포근했다. 그간 달려온 날 위해,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가족들과 처음 술도 마시고, 요리도 해줬다. 봄 벚꽃도 함께 보고, 고양이 방울이(9살)도 매일 봤다. 모처럼 고향 친구들도 만났다.

그러다 5월이 되면서 불안해졌다. 휴학한 뒤 매일 늦잠자고, 겨우 아르바이트나 가는 스스로가 한심해 보였다. 열심히 사는 동기와 선후배들을 보면 조바심이 났다.

어느 날 친구에게 울면서 전화했다.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니라고 하소연했다. 그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1년 날렸다고 달라지지 않아. 충분히 낭비해도 괜찮아. 할 일이 없는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그 말이 큰 위로가 됐다. 새삼 고향이 왔을 때 맘이 떠올랐다. '아, 맞다. 나 쉬러 왔었지'하고.

오롯이 쉬자 맘 먹었다. 아르바이트만 빼고 다 그만뒀다. 그리고 6월, 무더워질 무렵 박씨는 그의 엄마와 거제, 전주에 다녀왔다. 엄마는 딸래미와 찍은 사진을 프로필로 해놓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그 시간 덕분에 박씨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열심히 사는 걸 좋아하고, 외로움도 많이 탄다는 걸. 충분히 낭비하며 가족들과 보낸 시간 덕분이었다. 뚜렷한 계획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도 좋은 휴학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 앞으로 쉬는 거에 쫄지 말자고, 난 그래도 멋있는 사람이니까.

처음으로, 나를 안아줬다
힘들었을 때 자주 찾던 장소라 했다. 복잡 미묘한 색감이라 좋아한단다./사진=백서아 독자 제공힘들었을 때 자주 찾던 장소라 했다. 복잡 미묘한 색감이라 좋아한단다./사진=백서아 독자 제공
백서아씨는 올해 사랑을 많이 했다. 다름 아닌 나와.

힘든 시간이 있었다. 삶이 무거웠다. 모든 걸 놓고 떠나고 싶었다. 그러다 현실에 부딪혀 주저앉았다. 힘들 땐 수없이 그런 질문을 했다. '난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대답은 늘 비슷했다. 남을 탓하고, 내 존재를 부정하는.

우연히 책 한 권을 봤다. '나에게 고맙다'란 제목이었다. 거기엔 그런 글귀가 있었다.

"남들 신경 쓰느라, 주변 눈치 보느라 유독 인색하기만 했던 나에게, 적어도 오늘만큼은 진심 어린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

책 한 장, 한 장에 아픔을 누르고 눈물도 꾹꾹 눌러 담아 비웠다. 시월 마지막 날, 가을밤 나를 처음으로 안아줬다.

그러니 내가 대견해졌다. 4차선 도로 앞에서도 겁을 냈던 시골 아이는, 처음으로 비행기도 혼자 탔다. 용기를 내서 퇴사도 했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해내는 날 사랑하게 됐단다.

벡씨는 지금도 나답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건넸다.

"가장 중요한 당신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왕 크고, 왕 귀여운 '룽고' 이야기
왕 크고 왕 귀여운 룽고야, 안녕!/사진=김고경 독자 제공왕 크고 왕 귀여운 룽고야, 안녕!/사진=김고경 독자 제공
웬만한 일엔 심장이 뛰지 않았단다. 최근 몇 년간 그랬다. 다사다난했던 날들을 보낸 탓이었을까. 그리 맹숭맹숭한 삶을 살았었다.

그런 김고경씨에게, '내게도 심장이 있구나' 느끼게 된 사건이 생겼다. 강아지와 가족이 됐다. 그의 부모님 지인 강아지가 낳은 새끼였다. 그 집엔 강아지가 많아, 제대로 된 돌봄을 못 받고 있었다.

그래서 데려와 함께 살게 됐다. 끝까지 책임져주겠단 맘이었다. 이름은 '룽고'라 지었다. 동생이 생겼다. 원래 집에서 제일가는 귀염둥이었던(뻔뻔) 김씨는 뒤로 밀렸다. 그래도 전혀 샘나지 않았단다. 책도 열심히 찾아 읽고, 훈련 동영상도 봤다. 수능 때 이후로 가장 열심히 공부했다고.

집에 온 룽고는 기다렸다는 듯, 가족들을 격하게 맞았다. 행복을 격하게 표출해줬고, 기생충도 맘껏 뿜어내줬다(하하).

룽고와 함께한 지 10개월, 김씨는 인생에서 가장 많이 웃고 있다. 강아지란 존재가 뭐길래 이리도 행복한 것일지, 하늘이 보내준 수호천사일지. '지구가 망했으면 좋겠다'며 우울해했던 과거의 그는 없다. 행복한 날들이다.

"왕 크고 왕 귀여운 룽고야, 너는 귀엽고 건강하기만 해!"

성소수자 부모 취재기(記)


대학 학보사 기자인 이채완씨는 올해 기억에 남을만한 기사를 썼다.

성소수자 부모에 관한 이야기였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성소수자도, 부모도 더군다나 아닌 그가, 그들을 이해하고 적는다는 건.

기사를 취재하고 쓰는 한 달 동안, 고민이 참 깊었다. 주위의 따뜻한 관심 덕분에 다행히 결과물이 나왔다. 기사가 나가던 날, 이런 짧은 글을 적었다.

'고민을 많이 했다. 얄팍한 정의감으로 소수자를 대변하겠다고 펜을 잡은 건 아닌지, 제3자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기자 역할은 무엇인지.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랐다. 기사를 위해 이방인을 기꺼이 초대해 준, 성소수자부모모임과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성소수자와, 그들의 부모에게.'

앞으로의 꿈에 대해 고민했던 이 시간이,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빠와 간 제주도 여행
가까이 봐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아빠와 함께한, 첫 제주 여행./사진=독자 제공가까이 봐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아빠와 함께한, 첫 제주 여행./사진=독자 제공
B씨는 아빠와 단둘이 제주도 1박2일 여행을 갔다. 태어나 처음이었다. 혹시 어색하진 않을까, 재미없어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단다.

그런데 웬걸, 이런 아빠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요리 수업에선 음식 만드는 걸 보니, 딸래미보다 더 잘했다. 토핑 올리는 손길은 또 어찌 그리 섬세하던지. 안 하는 거였지, 못 하는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아빠를 가까이서 또 알게 됐다.

양초 제작 수업에선 엄청 적극적이었다. B씨 도움 없이도, 취향대로 잘 고르고 만드는 센스까지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칭찬도 받았다. 평상시 해볼 수 없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엔 가까운 해외로, '부녀여행'을 또 다녀올까 생각 중이라고.

새집으로 이사 간, 빅이슈 판매원
"괜찮아요, 좋아요" 광화문역에서 빅이슈 판매원 곽창갑씨를 만난다면, 이 말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괜찮아요, 좋아요" 광화문역에서 빅이슈 판매원 곽창갑씨를 만난다면, 이 말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빅이슈(Big Issue)'를 아는가. 노숙인들 재활을 돕는 잡지다. 지하철역 인근서, 빨간 조끼를 입고, 이걸 판매하는 이들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집도 없고, 삶의 의욕도 없던 이들에게, 그건 단순 잡지가 아니다. 희망이다.

광화문역서 빅이슈를 파는 곽창갑씨를 만났다. 서글서글한 눈매가 매력적이었다. 노량진역서 팔다가, 여기로 옮겼단다. 주말엔 집회 때문에 잘 안 팔리고, 수요일과 목요일엔 많이 나간다. 지난주 금요일엔 28개 정도 팔았다. 뜻 있는 이들 덕분에, 꾸준히 나간다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올핸 좋은 일도 있었다. 지난 7일, 임대주택에 들어갔다. 집 없던 그에게, 새집이 생겼다. 기분이 어땠냐 물으니, 짧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괜찮아요, 좋아요."

아프고 힘든 마음을 잘 알아서, 더 어려운 이들도 돕는다. 매주 화요일마다 서울역에서 과거 자신과 같았던 노숙인들을 돕는다. 밥을 양껏 퍼주는 봉사를 한다. 내년엔 빅이슈에서 일자리를 알아봐 준다고 했다. 장애인 관련 자격증을 따서, 이들을 돕고 싶단다.

"괜찮아요, 좋아요." 여러 질문에 웃으며 답하는 그를 보며, 내 맘도 덩달아 좋아졌다.

인생은 원래, 그렇고 그런 것이니


C씨는 올 한 해 삶이 유달리 재미없게 느껴졌었다.

해야 할 일은 계속됐고, 치열한 일상을 끝나고 나면 고민이 찾아왔다. 대체 내 행복은 어디서 챙겨야 할까, 그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릴 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기사 하나를 봤다. 거기엔 이런 말이 있었다. "인생은 원래 그렇고 그런 것이니,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아 살아가라"고. 담담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그 말투가 그에게 외려 위로가 됐다.

해가 기울어질 때 머리에 비스듬히 내려앉는 은은한 빛, 그 속에서 홀로 듣는 음악, 여느 때와 조금 다른 하늘색, 그걸 보며 걷는 것,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발매일을 기다리는 시간.

그런 소박한 것들을 열심히 모았다. 이런 것들이 내 지루한 삶을 버티게 해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니 삶에서 충분히 배치해놓고 살아야겠다고.

입사 후 찍은 사진 한 장
"지금은 여기서 근무하고 있답니다", 내년엔 더 좋은 곳에 취업해 꼭 그런 얘길 들려주기를./사진=손한결 독자 제공"지금은 여기서 근무하고 있답니다", 내년엔 더 좋은 곳에 취업해 꼭 그런 얘길 들려주기를./사진=손한결 독자 제공
손한결씨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은행원을 꿈꿨다.

그리고 꿈이라 여겼던 은행에 취업했다. 사원증을 받고, 한동안 목에서 빼지 않았다. 그만큼 좋았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다. 몇 개월 뒤엔 회사와 계약이 끝난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날이 좋은 날, 유니폼을 입고, 한 장 꼭 남기겠다고.

가을 단풍이 노랗고 불그스름하게 든 어느 맑은 날,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길, 손씨는 마침내 사진을 찍었다.

그걸 보며 또 다짐한단다. 내년에도 힘내서, 좋은 곳에 취업하고 싶다고. 그땐 꼭 이 글을 보며, "제 글이에요! 저는 지금 여기서 근무하고 있답니다"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9500번 버스에서 들은, 음악 100곡


올해 D씨의 키워드는 '육아', 정말 오롯이 아기 키우는 데만 집중했다.

가끔은 아이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간절했다. 귀엽고 예쁘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자식이지만.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쳐서가 아녔다. 그저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는 '무감정'의 시간이 필요했다. 외로워지고 싶었다, 단 몇 시간 만이라도.

그럴 시간이 찾아왔다. 남편이 하루 휴무를 냈다. 아이를 부탁하고, 홀로 집을 나섰다.

보고 싶었던 전시를 보고, 유명 맛집에 가고, 사고픈 옷을 보고, 예쁜 카페서 맛난 커피와 디저트를 먹었다.

그런데 그날 하루 중 가장 좋았던 건 그런 게 아녔다. 홀로 9500번 버스에 올라, 이어폰을 꽂고, 음악 순위에 있는 100곡을 들었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평소라면 질색했을, 아이돌 노래까지 건너뛰지 않고 다 들었다.

인천과 강남이 그렇게 가까웠던가. 그 시간이 왜 그리 행복하고 짧게 느껴지던지. 그래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강아지 카페 알바생 "내년 목표요? 더 재밌게 놀기"
명동서 강아지 인형탈을 쓰고, 입에 양손을 넣고, 멍뭉미를 뿜뿜 내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사진=남형도 기자명동서 강아지 인형탈을 쓰고, 입에 양손을 넣고, 멍뭉미를 뿜뿜 내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사진=남형도 기자
명동 한복판을 지날 때였다. 밤색 강아지 인형 탈을 쓰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이가 보였다.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전단지 한 장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오른손으로 한 장을 건네는 척하다가, 왼손에 쥐고 있던 한 뭉치를 주려 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언제부터 일했냐고 물으니,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한 달이요?"하고 물으니, 고개를 저었다.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부터 시작했다고, 하루 됐단다. 며칠 더할 계획이라고.

휴학생이라는 그에게, 올해 기억에 남는 일을 물으니, 친구랑 논 것만 생각난단다. 카페서 떠들고, 친구네 집에서 수다 떨고, 그런 것들이다. 어쩐지, 별 것 아니지만 청춘(靑春)이 느껴지는 대답이랄까.

그리고 새해 계획을 물었다. 복학해서 이제 취업 준비를 한단다.

그런데 진짜 목표는 따로 있었다. "내년 목표요? 더 재밌게 놀기요(웃음)."

소개팅 11번으로 만든 '플레이리스트'
소개팅 11번에 채워진 플레이리스트. 이 사진 마지막 곡 제목 같은 멋진 이가 나타나기를./사진=독자 제공소개팅 11번에 채워진 플레이리스트. 이 사진 마지막 곡 제목 같은 멋진 이가 나타나기를./사진=독자 제공
지난해 마지막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1년 반째 솔로. E씨 얘기다.

지향하던 연애는 예컨대 이랬다. 길을 걷다 서로 부딪혀 물건이 떨어지고, 줍다가 한눈에 반하는 그런 것. 그게 로망이라 소개팅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20대 끝자락이 되니, 바라는 연애가 쉽지 않단 걸 알게 됐다. 절친 두 명이 결혼 선언까지 하니 마음은 급해지고, 심심하고, 쓸쓸해지고. 그리 소개팅을 시작하게 됐다.

한 달에 한 번 노래가 나오는, '월간 윤종신' 마냥 소개팅을 했다. 그게 벌써 11번. 금세 사랑에 빠지는 성격이건만, 이상하리만치 쉽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 그런가 싶어, 괜스레 초조하고 무서워졌다.

그 사이 음악 플레이리스트(재생목록)는, 다양한 장르로 가득 차 있었다. 소개팅에서 하기 좋은 질문,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덕분이다. 상대방에게 추천을 받으니 플레이리스트가 풍성해졌다. 팝, 연주 음악, 밴드, 옛 노래 등 없는 게 없다.

그는 짝없이 30대를 맞는 이들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이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제 짝도 어딘가 숨 쉬고 있다면, 얼른 나타났으면 좋겠네요."

행여나 그의 짝이 보고 있다면, 부디 빨리 등장하기를. 그리고 플레이리스트 마지막 곡을 오롯이 채워주기를.

배춧잎에서 만난, '달봉이'
배춧잎 하나면 충분, 귀여운 달봉이. 애틋한 관심 덕에 잘 자란단다./사진=독자 제공배춧잎 하나면 충분, 귀여운 달봉이. 애틋한 관심 덕에 잘 자란단다./사진=독자 제공
열 가구도 채 살지 않았다. 김모씨가 사는 곳은 그만큼 시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주말마다 오는 부부가 텃밭서 직접 키운 배추 한 포기와 당근, 그리고 무를 건넸다. 고맙다고 한 뒤 집에 가지고 왔다.

그런데 웬걸, 겉 배추를 뜯는데 달팽이가 숨어 있는 게 아닌가. 김씨가 깜짝 놀라 소리쳤더니, 녀석도 놀랐는지 달팽이집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어떡하냐 하니, 그의 남편은 밖에 버리라고 했다.

차마 그리 할 순 없었다. 바깥은 추웠다. 때때로 밖에 나가보면, 달팽이들이 줄지어 죽어 있기도 했다.

반찬 통 하나를 꺼내, 깨끗이 씻어, 달팽이가 있는 배춧잎을 넣었다. 뚜껑을 살짝 올려놓았다. 아이들이 손가락을 넣어 만지려 하면 "놀라서 스트레스 받아, 안 돼"하고 말렸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살아 있나 봤다. 여전히 집에 들어가서 안 나왔다. 배추 사이에 껴서, 마른 것처럼 보였다. 촉촉하게 해주면 살까 싶어 물을 뿌려줬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겠다 체념하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배춧잎 위에 달팽이가 없는 게 아닌가. 남편에게 "달봉이 버렸느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다들 꼼짝 말라고 신신당부한 뒤 어딨는지 찾았다. 배춧잎을 드니, 녀석이 그 밑에 붙어 있었다. 기특했다. 밖에 버렸음 큰일 났겠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배추도 잘 먹고, 똥도 잘 싸고, 조금 큰 것 같기도 하고. '달봉이'는 벌써 3주가 넘도록, 김씨 가족과 함께 잘살고 있다.

7살이나 많은 남자친구, 왜 이리 귀여운지
천생연분이란 건 분명 있고,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사진=독자 제공천생연분이란 건 분명 있고,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사진=독자 제공
2017년 5월14일에 남자친구를 처음 사귀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엔 헤어졌다.

다들 들뜬 그해 연말, F씨는 이별 후 무척 힘들었다. 살아갈 이유도, 행복할 이유도 없다 여겼다. 다들 들떠 있는데, 홀로 움츠러들었다.

3개월 반이 지나고, 올해 2월 그를 다시 만났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했던가. 둘은 행복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결혼을 약속하고, 꽃피는 3월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예비 신랑이 좋아 죽겠단다. 하루하루 더 좋아진다고. 상대가 귀여워 보이면 게임 끝이라던데, 그렇단다. 7살이나 많은데, '신생아'처럼 보인단다. 대단한 콩깍지였다. 모든 행운과 행복이 나를 비켜 간다고 생각했는데, 1년 만에 정반대로 생각하게 됐다.

내년 2월29일, 두 사람은 결혼한다. F씨는 "남자친구가 이 정도로 사랑하는 걸 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예비 신랑님, 보고 있으시죠? 두 분 행복하시길!)

그러니 틀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보기를
일주일 간의 휴가, 그리고 유럽여행. 틀 안에서 자유롭기를, 틀을 깨는 게 두려운 이들에게 그리 말하고 있었다./사진=독자 제공일주일 간의 휴가, 그리고 유럽여행. 틀 안에서 자유롭기를, 틀을 깨는 게 두려운 이들에게 그리 말하고 있었다./사진=독자 제공
G씨는 직장인이다. 그에겐 연차가 있었다. 하지만 맘대로 쓰긴 쉽잖았다. 눈치 게임을 하듯, 남들처럼 어렵게 사용하곤 했었다. 길게 휴가를 내는 건, '신혼여행 때나 가능하겠지' 생각했었다.

2017년, 한 차례 크게 아프고 난 뒤로 그는 달라졌다.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되, 누릴 수 있는 걸 좀 더 자유롭게 누리기로 맘먹었다.

그 뒤론 1년에 한 번, 눈을 딱 감고 일주일씩 휴가를 낸다. 그리고 저 멀리, 유럽으로 훌훌 여행을 간다. 물론 여행 중간중간, 그리고 다녀온 뒤 책임진 업무는 잘 끝낸다.

예전엔 종종 회사를 그만두고 장기 여행을 다니는 이들이 부러웠었다. 차마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다. 틀을 깨는 것도 멋지다. 하지만 그게 아직 두렵고 걱정되는 이들은, 이렇게 회사란 틀 안에서라도 자유로운, 2020년 한 해가 되면 좋겠다고.
아내가 현관문에 붙인 메모,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따뜻해졌다./사진= 남형도 기자아내가 현관문에 붙인 메모,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따뜻해졌다./사진= 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그리고 기자가 보낸 2019년.

소소하지만, 무척 따뜻했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무더운 여름, 퇴근해서 집에 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무척 시원했다. 순식간에 땀이 식고, 상쾌해졌다.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기사가 나간 뒤, 댓글을 보고 있었다. 으레 그렇듯 악성 댓글도 있다. 그런데 거기엔 답글이 하나씩 다 달려 있었다, 참 이상하게도. 그것도 장문으로, 열심히 내 입장을 항변하며 싸우고 있었다. 아이디가 어쩐지 낯이 익었다.

늘 첫 독자를 자처하고, 긴 기사를 미리 읽어줬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에 그러지 말라 했더니 이유가 있단다. 혹시나 내가 놓치는 게 있을까 싶어서, 그럼 안 좋은 반응에 상처 받을까 싶어서, 미리 얘기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금요일, 오늘도 밤 11시. 일찍 마감하려 했건만 또 이 시간이다. 앞 이야기 주인공은, 미련한 남편 때문에 거실서 홀로 TV를 보고 있다. 이따금 들리는 웃음소리에, 맘이 행복해진다. 빨리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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