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단 이유로 '반말', 나만 불편한가요?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19.12.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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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 박기자]친해지려고 내뱉은 반말, 상대방은 '불쾌'

편집자주 출근길 대중교통 안에서, 잠들기 전 눌러본 SNS에서…. 당신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상 속 불편한 이야기들, 프로불편러 박기자가 매주 일요일 전해드립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나이 많단 이유로 '반말', 나만 불편한가요?
"어디?"

대학생 최소영씨(21)는 얼마 전 택시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택시기사가 다짜고짜 반말로 최씨에게 목적지를 되물은 것. 하차 직전까지 "여기 맞아?" "학생도 카드 결제야?" 등 반말이 이어졌다. "여자애가 늦게 다닌다"는 잔소리도 반말로 들어야 했다.



최씨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냥 듣고만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택시기사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어떤 상황에 처할지 몰라 무서웠기 때문이다. 최씨는 "어리다는 이유로 초면에 반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는데,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불만을 표하기도 애매하다"고 토로했다.

상대방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스스럼없이 내뱉는 '반말'이 듣는 이들의 불쾌감을 유발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친근감의 표현인 반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무례한 표현으로 여겨져서다.



나이 어리다고 자연스럽게 '반말'…"무례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사회에선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낮추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장인 강모씨(30)는 최근 병원에서 '반말'로 진료를 받았다. 강씨는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초음파 화면을 보면서 내게 '그치. 이거 보이지?' '확실하지?'라고 했다"며 "환자를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다"고 말했다.


직장인 곽정연씨(29)도 한 식당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회사 근처 분식집에서 40대로 보이는 종업원에게 "죄송한데 수저는 어디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수저? 그거 테이블 옆에 있잖아. 찾아봐 거기"라는 답이 돌아온 것.

곽씨는 "적은 나이도 아닌데 그렇게 반말을 들으니 좀 그렇더라"며 "백팩 메고 롱패딩 입어서 학생처럼 보였을 수도 있는데, 내가 진짜 학생이더라도 무례한 언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분 나쁘다고 항의하기도 그래서 그냥 앉아있었는데 솔직히 짜증 났다"고 털어놨다.

이렇듯 '반말'은 병원, 택시, 길거리, 카페 등 일상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로 인한 불쾌감은 오롯이 듣는 이의 몫이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이" "야!" 등 반말하는 손님에게 상처를 받은 아르바이트생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알바몬이 최근 알바생 9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90.2%)이 '아르바이트 중 고객의 비매너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꼽은 상처받았던 순간으로 '반말하는 고객을 대할 때'(51.5%)가 1위에 올랐다.
"어디 아프냐"는 의사에 반말로 대답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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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이 불쾌한 이유는 '하대'(下待)의 의미가 내포돼 있어서다. 반말은 사회 통념상 나이, 지위 등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용한다. 반말 사용을 허용하는 것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몫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이 먼저 '말 놓겠다'고 통보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된다.

직장인 김모씨(33)는 "상대방이 초면에 '나보다 어리니까 말 놓을게' 하면 순식간에 내가 아랫사람이 돼버리는 느낌이다. 반말이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건 어느 정도 친밀감이 쌓였을 때 얘기다. 우리말이 존댓말과 반말 구분이 뚜렷한 만큼 서로 불편하지 않게 배려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대화의 비밀' 저자 천성림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만나자마자 반말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본인보다 약자이거나 어리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이는 나와 상대를 구별하고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행동이다"고 분석했다.

반말로 인해 불쾌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SNS(사회연결망서비스) 등에서는 '반말엔 반말로 답하라'는 내용의 글이 공유되고 있다.

누리꾼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게재하기도 한다. 한 누리꾼은 "4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의사가 보자마자 '어디가 아파?'라고 물었다. 처음엔 '어깨요'라고 답했는데, 또 '언제부터?'라고 반말로 되묻더라. SNS에서 본 글이 생각나서 '일주일?'하고 짧게 답했다. '일주일 됐다고?' 하길래 '통증은 일주일, 조금씩 아픈 건 몇 달?'이라고 하니 '엑스레이 찍어봅시다'라고 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반말 사용으로 불필요하게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나이'가 관계의 기준이 돼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한 스피치 컨설턴트는 "존중받고 싶은 만큼 남을 존중해야 하는 게 대화의 기본자세"라며 "나이의 적고 많음을 기준으로 관계의 높낮이를 설정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어떤 사람이라도 존중하는 태도가 우선돼야 의사소통 과정의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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