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가 뭐길래" 조현아 전 부사장이 발끈한 이유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2019.12.2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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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상 '총수' 정의 없어...공정위 "명확한 규정이 '독' 될 수도"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 7월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천만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2019.7.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 7월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천만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2019.7.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동일인(총수) 지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선대 회장님의 유훈과 다른 방향으로" "상속인간 실적적 합의나 충분한 논의 없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 회장을 총수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의 문제 제기가 가능한 것은 총수 관련 법적 규정이 미비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공정위는 명확한 규정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시한 닥쳐 총수 지정, 왜?
조 전 부사장은 23일 낸 입장문에서 "한진그룹은 선대 회장님의 유훈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며 "상속인들간 실질적 합의나 충분한 논의 없이 공정위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이 지정됐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매년 5월 1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과 그 총수를 지정한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 달리 지정 시기를 법적 시한인 15일로 늦췄다. 한진이 주된 원인이었다.

조양호 회장이 4월 8일 급작스럽게 별세하면서 한진은 총수 변경이 불가피해졌고, 공정위는 관련 자료를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진은 지정 시기를 이미 넘긴 5월 3일까지도 "내부 의사 합치가 이뤄지지 않아 총수를 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당시 상황을 종합 고려했을 때 조원태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이 총수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 조 회장을 중심으로 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만일 다른 사람을 총수로 지정하고자 한다면 그를 중심으로 자료를 내도록 했다. 한진 내에서 의견만 합치됐다면 다른 인물이 총수로 지정될 가능성도 있었다는 의미다. 한진은 마감 이틀 전인 5월 13일에야 조 회장을 중심으로 한 자료를 제출했고, 공정위는 직권으로 조 회장을 총수로 지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추측하기로는 가족 사이에 조 회장을 기준으로 자료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는, 어느 정도 묵시적 동의하에 절차가 진행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6월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대한항공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6월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대한항공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법에 없는 '총수' 정의...공정위 "명확한 규정이 '독' 될 수도"
조현아 전 부사장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상속인 간 실질적 합의, 충분한 논의 없이 총수가 지정됐다는 것.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은 총수 지정에 대한 법적 규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 '동일인'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정의는 규정돼 있지 않다. 지분율 등 계량화 된 기준이 없다. 공정위가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이나 법인'으로 설명할 뿐이다. 법률 용어인 '동일인'보다 '총수'라는 단어가 같은 의미로 더 자주 쓰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정위는 기업의 자발적 결정을 되도록 존중해 총수를 지정한다. 기업이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제출할 때 결정한 총수가 대부분 그대로 지정된다. 조 전 부사장이 5월 당시 한진 내 합의·논의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공정위의 총수 지정을 문제삼은 것도 이런 관행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정위는 당시 종합적 상황, 대기업집단·총수 지정 시한 등을 고려해 조 회장을 총수로 직권 지정한 것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동안에도 총수 지정 문제를 두고 잡음이 있었다. 대표 사례가 2017년 네이버 사안이다. 당시 공정위는 네이버를 처음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를 총수로 지정했다. 이 과정에서 이해진 창업자는 자신이 아닌 법인을 총수로 지정해달라고 공정위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역시 총수의 법적 정의가 미비해 일어난 해프닝이다.

공정위는 총수를 법으로 정의했을 때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총수는 지분율 등 정량적 부분뿐 아니라 정성적 부분을 함께 고려해 지정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지분이 거의 없음에도 사실상 기업을 지배하는 총수가 있는 등 사례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한 계량적 기준을 만들어 놓으면 이를 악용해 교묘하게 지정을 빠져나가거나, 실제 기업 내 영향력이 크지 않은 사람이 총수가 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총수 정의를 만드는 것이 일견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현실과 안 맞는 부분이 있다"며 "한진과 같은 사례는 보편적이지 않은, 일부에서만 나타나는 상황이라 현상에 맞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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