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신춘문예 가작]아버지의 신용카드

머니투데이 곽흥렬 2020.01.0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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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곽흥렬/수필

습관은 낯설던 것도 익숙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는가보다.

이십여 년쯤 전의 일이다. ‘신용카드’라는 말이 처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무렵, 카드를 만져보기는커녕 구경조차 하기가 힘이 들었었다. 카드란 것이 마치 무슨 특권을 부여받은 특정계층의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물건인 줄 알던 때였다. 이를테면 지금으로부터 불과 이삼 십여 년 전 자가용이 보편화 되지 않았을 시절,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검은색 세단을 보면 우리 같은 샐러리맨들과는 상관없는 별세상의 사람들만 소유하는 물건인 양 생각되던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나 할까.



어쨌든 자가용은 보통사람들로서는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엄청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언제 저런 걸 한 번 가져 보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요 막연한 동경의 상징물일 뿐이었다. 아니,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허황한 망상 같았다. 하지만 그 꿈만 같았던 자동차를 이제 용기만 내면 가질 수 있게 된 것처럼,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신용카드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신용카드가 사람들의 평등지수를 끌어올리는 데 톡톡히 한몫을 한 셈이다.

요즘 세상에 신용카드 한두 장 갖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내남없이 지갑 속 깊숙한 곳에 예쁘게 디자인이 된 신용카드가 신줏단지처럼 모셔져 있다. 물론 카드회사들의 과열경쟁으로 말미암아 애초 발급받아서는 아니 되는 미성년자들이나 신용불량자들까지 카드를 소지하여 말썽을 일으키는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이것이 카드가 통용됨으로 해서 얻어지는 순기능에 비하면 그다지 큰 문제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세상만사 그 무엇이든 빛과 그림자는 항상 공존하게 마련이어서, 카드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얼마간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하여 그 심각성 운운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격이 된다. 인간사에는 완벽하게 긍정적인 면만 가진 것도 없으며, 그렇다고 완벽하게 부정적인 면만 지닌 것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좋은 선약일지라도 거기에는 필시 부작용이 있으며, 설사 비상(砒霜) 같은 극약일지라도 극미량으로 적절히 사용하기만 한다면 고질병의 치료에 특효약이 되기도 한다.

신용카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일상생활에 더없이 편리한 이 신용카드도 제 분수를 모르는 무절제한 사용으로 인해 작게는 한 개인 또는 가정의 파탄을 불러오고, 크게는 국가 경제를 좀 먹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에 반해 절도 있는 알뜰한 사용은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고 갖가지 편리함과 이득을 선사해 준다. 지갑 속에 항시 두툼하게 현금을 보관하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에 비해 간편하기가 그만이고, 예기치 않게 급전이 필요한 경우가 생겼을 때 지갑의 두께가 얇아도 낭패감을 느끼지 않아 보디가드를 둔 것처럼 든든하다. 거기다가 요즘처럼 온갖 범죄가 득시글거리는 어수선한 세상에서 현금을 소매치기 당할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은 또 얼마나 마음 푸근한 보너스인가.

소매치기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어김없이 시골집에 홀로 계신 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소싯적부터 줄곧 시골서 살아오신 까닭에 도시의 물정에 어두웠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 출타를 해도 안주머니 간수에 그다지 신경을 쓰시지 않는 편이다. 덕분에 이따금 친지의 예식이 있거나 아들집에 방문하는 따위의 일로 도시에 나와서는, 붐비는 버스 간에서 양복 안주머니를 털리는 일이 여러 차례였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그러니까 내가 열두어 살 초등학생 시절에 벌어졌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때 아버지는 황소 몇 마리를 사 키우기 위해 대구 사는 막내고모 댁에 돈을 빌리러 가신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도 오래 전의 일이라 분명치는 않지만,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그때 잃어버린 돈이 오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오만 원이란 요즘의 금새로 따지면 꽤나 큰돈이었다. 아마도 오백 만 원 가량은 넉넉히 됨직하다.

아버지는 필요한 돈을 구해서 서부정류장행 시내버스를 타셨고, 그 안에서 그만 소매치기를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런 사실을 당신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까마득히 모르고 계셨던 것 같다. 어머니가 겉옷을 받아 걸면서 양복 안주머니에 난 면도칼 자국을 확인하고 거의 실신할 지경으로 놀라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물론 떠나기 전에 어머니는 도시 나가거든 어떻든지 주머니 조심해서 택시를 타고 다니라며 신신당부를 잊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쌀에 뉘처럼 귀하던 택시 삯이 당신 생각으로는 심히 부담스러웠던 게 틀림없다. 쪼들린 집안 형편을 먼저 생각하셨을 아버지였다. 그래서 당신 자신만 믿고 ‘뭐 어떻기야 하려고’ 이러면서 태연스레 버스로 귀가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만 주머니를 털리고 만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한동안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말문을 닫아버렸다. 식음을 전폐하고 구들목에 드러누워 누구와도 접촉을 끊었다. 어머니는 잃어버린 돈은 고사하고 저러다가 사람까지 버리겠다며 아버지를 붙들고 통사정을 했다. “그 돈 잃어버린 사람은 발 뻗고 자도 훔쳐간 놈은 발 뻗고 못 자니 그만 잊어 버립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에 근 열흘 만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며 잃었던 의욕을 되찾아 갔다. 아버지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오는 데는 하 많은 세월의 약이 필요했다. 이제는 옛이야기 삼아 담담히 꺼내 놓으실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도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때 신용카드란 것이 있었더라면 아버지는 분명 그날의 참담한 낭패는 당하지 않으셨을 게다. 빌린 돈을 가까운 은행에 입금시켜 놓고 집으로 돌아와 얼마든지 안전하게 찾아 쓸 수 있었을 일이 아닌가.

한 집에 한 집 꼴로 전화가 널리 보급된 십여 년 전, 실로 전화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만 같이 우리는 생활의 편리를 누렸다. 몇 날 며칠씩 걸리는 편지 대신 단 몇 분 만에 이런저런 소식을 전할 수 있으니 여간 신통방통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 무렵 하나둘 휴대전화란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지난날의 자가용처럼 강한 호기심은 두면서도 선뜻 가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시 금액으로 몇 백만 원 하던 휴대전화가 서민들에게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조금씩 보급이 늘어나면서 단가가 낮아지자 너도나도 휴대전화를 가지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이렇게 된 것이 불과 몇 십 년 안짝의 일이다.

일전에 어느 일간지에서 이 땅의 휴대전화 보급률이 벌써 오천만 대를 넘어섰다는 통계자료를 얼핏 본 적이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노인, 학생, 주부들까지 휴대전화의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다고 했다. 일반전화가 처음 보편화되었을 때 전화 없이는 살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이제 휴대전화 없이는 하루도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말하자면 생활필수품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셈이다.

신용카드 역시 거기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만일 어떤 힘센 권력자가 나서서 지금 당장 우리가 소지한 신용카드를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회수해 버리겠다고 을러댄다면, 사람들은 우리더러 원시시대로 돌아가라는 말이냐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설 것이 뻔하다. 신용카드는 그만큼 우리들 생활의 필수소지품으로 자리 잡았다. 아니, 현대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분신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옳을 것 같다. 신용사회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이 아닌가. 이러한 세상의 건설에 신용카드는 그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물론 세상에는 신용카드로 해서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경우가 심심찮게 인구에 회자된다.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무조건 쓰고 보자는 식의 막무가내식 소비는, 활발히 꽃을 피우고 있는 신용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그러나 앞서도 잠깐 짚고 넘어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세상만사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 그림자도 있게 마련인 법, 신용카드라고 해서 빛만 있고 그림자가 없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 경우 설사 그 그림자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 농도를 보다 엷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게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밝은 빛을 더욱 밝히려는 우리의 각오 하나에 달렸다. 각자 지갑에서 뽑아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알뜰하게 관리만 한다면 신용카드만큼 간편하고 쓰임새 있는 물건도 다시없을 듯하다. 자동차며 휴대전화가 비록 아무리 편리하다 해도 때로는 불편함도 그에 못지않다. 자동차는 어쩌다 고장이 나거나 만에 하나 불의의 사고라도 일어나는 날이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고, 휴대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불필요한 광고성 전화에 오히려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 비해 신용카드는 자기만 살뜰하고 계획적이면 이런저런 성가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 자동차며 휴대전화 따위에 비길 바가 아니다.

얼마 전, 나는 가까운 은행에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당신 명의의 신용카드 한 장을 만들었다. 팔십 줄을 넘어선 노인이기에 여러 장의 카드는 번거로울 것 같아 딱 한 장만 마련해 드렸다. 아버지는 병원에 가실 때나 뭘 사 드시고 싶거나 하는 일로 지출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신용카드를 사용하신다. 그러면서 “이 편리한 걸 왜 진작 쓸 줄 몰랐을꼬?”라며 어느새 신용카드 예찬론자가 되셨다.

내 지갑 속에도 석 장의 신용카드가 신줏단지처럼 모셔져 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숫자다. 오천 원 이상을 결제해야 할 때면 언제나 신용카드를 내민다. 나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 경제를 투명하게 한다는 나름의 자부심도 은연중에 작용하고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알뜰하게 쓰자’, 이 한마디를 늘 마음속 깊이 돋을새김으로 새겨 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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