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담판'…제2의 'DJ-오부치 선언' 나오나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19.12.2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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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런치리포트]한일관계 변곡점...24일 한일 정상회담 '강제징용·수출규제·지소미아' 테이블 위로

【방콕(태국)=뉴시스】 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태국 방콕의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 참석해 각 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박수를 치고 있다. 2019.11.04.  since1999@newsis.com【방콕(태국)=뉴시스】 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태국 방콕의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 참석해 각 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박수를 치고 있다. 2019.11.04. [email protected]


21년前 'DJ-오부치' 잇는 '文-아베' 성탄 선물 내놓을까
[the300][런치리포트]한일관계 어디로① 24일 한일정상회담 '역사·경제·안보' 갈등 해소 담판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4일 중국에서 양자 회담을 갖기로 하면서 사상 최악인 한일 관계에 훈풍이 찾아올지 주목된다.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 이후 15개월 만이다.



한일 정상회담이 임박하면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도 재조명되고 있다. 한일 정상이 21년 전 양국 관계의 극적 변곡점으로 작용했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재확인 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강제징용과 수출규제,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등 3대 핵심 갈등 현안을 일괄 타결하긴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한일 관계 개선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日오부치 "사죄" 최초 문서화, DJ "미래지향 관계 노력" 화답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 10월8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DJ)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일컫는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래 부침이 심했던 양국 관계에서 '과거'와 '미래'를 포괄하는 가장 바람직한 협력 모델을 제시한 선언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일본을 국빈 방문한 DJ는 일본 의회 본회의장에서 "일본에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며 "한국도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연설했다.

오부치 총리는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전후 50주년 특별담화'를 기초로 일본 식민지배와 관련해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언급하고 최초로 공식 외교문서에 명시했다. DJ는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공동선언 발표 후 한일 어업협정 파기로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던 한일관계는 10개월 만에 완전히 복원됐다.


21년 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다시 주목받는 건 한일 정상회담을 앞둔 지금의 한일 갈등 양상이 당시 상황과 묘하게 포개져서다. 1998년 2월 김대중(DJ) 정권 출범 당시 한일 관계는 바닥까지 추락한 갈등 국면이었다.

◇'文-아베' 전례없는 한일갈등, '김대중-오부치 선언' 재조명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격한 발언을 내놨다. "한일합방으로 일본이 좋은 일도 했다"고 한 에토 다카미 일본 총무청 장관의 망언에 대한 강경 대응이었다.

일본은 YS 임기 만료 직전인 1998년 1월 한일 어업협정 파기를 한국에 일방 통보했다. '역사 바로세우기'로 대변되는 YS의 강경한 대일외교에 사실상 보복을 한 것이다. 그러자 유종하 외무장관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리상 맞지 않는다"는 공개 발언으로 맞대응했다. 역사(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가 경제(일본의 수출규제), 안보(한일 지소미아) 갈등으로 확전한 지금과 닮아있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일 안보협력의 필요성 등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도 현재와 유사한 점이 없지 않았다. DJ는 당시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유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려면 일본과 관계를 개선해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 대통령이 한미일 3국 공조의 중요성을 감안해 고심 끝에 지난달 조건부 지소미아 종료 유예 결정으로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던 맥락과 비슷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성안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엔 한일간 정치 안보 경제 인적·문화교류 글로벌 이슈 등 5개 분야의 협력원칙을 포함한 11개항이 담겼다. 당시 외교통상부 동북아1과 서기관으로 DJ의 일본어 통역과 공동선언의 기획, 추진을 실무적으로 맡았던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지난해 한 보고서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한일 외교사에서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공식 합의 문서로 명확히 했다는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4일 中서 한일 정상회담…강제징용·수출규제·지소미아 '담판'

외교가와 정치권에선 오는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고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한일 갈등의 뿌리에 있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비롯해 일본의 수출규제, 한일 지소미아 등 모든 현안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집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를 위한 수출관리당국간 정책 대화 재개 등을 전제로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결정했다. 일본이 보복성 수출규제를 원상복원할 경우 지소미아를 연장한다는 조건부 결정이었다. 문 대통령도 아베 총리에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선 일본이 수출규제를 즉각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일본은 사실상 강제징용 문제와 수출규제를 연동한다. 우리 정부가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의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제징용 문제가 풀려야 수출규제 철회를 적극 검토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18일 대표 발의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법안', 이른바 '1+1+α' 안(문희상 안)이 마중물 역할을 할지도 관심거리다. 문 의장 측은 "(강제징용 해결 법안이) '김대중-오부치 선언' 중 일본 정부의 반성·사죄의 뜻을 재확인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일 정상회담에 수출규제 문제의 답이 바로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문희상 법안이 어떻게 (국회에서) 논의되느냐에 따라 일본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표명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오상헌 기자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문희상 국회의장이 5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학교에서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합니다 : 진정한 신뢰, 창의적 해법으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복원’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 제공) 2019.11.05.   photo@newsis.com【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문희상 국회의장이 5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학교에서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합니다 : 진정한 신뢰, 창의적 해법으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복원’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 제공) 2019.11.05. [email protected]


징용 해법 '문희상 안'…피해자 반발·국회 문턱 넘어야
[the300][런치리포트]한일관계 어디로② 강제징용 해법 '1+1+α' 발의...'마중물' 기대, 피해자 "日면죄부 반발"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으로 지난 18일 대표 발의(여야 의원 14명 공동)한 법안은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1+1)에 더해 양국 국민(α)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피해 보상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1+1+α' 안으로 불린다. 정부가 공식 제안했지만 일본이 거부했던 '1+1'(한·일 기업의 자발적 위로금 출연) 안을 변형한 것이다.

문 의장은 앞서 지난달 5일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강연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으로 한·일 기업과 양국 국민이 기부금을 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후 국회 안팎의 의견 수렴을 거쳐 오는 24일 한일 정상회담을 약 일주일 여 앞두고 발의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담판' 전 한일 관계의 물꼬를 틀 마중물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작용했다. 문 의장은 "현재 교착상태에 빠져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양국관계가 과거를 직시하는 동시에 미래를 지향하는 관계로 나아가도록 (이 법안이) 마중물의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문 의장이 발의한 법안은 '기억·화해·미래재단' 법안 제정안과 강제징용 피해 조사를 위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등 2가지다. 성금을 모아 재단을 만든 후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면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 청구권 혹은 재판청구권이 상실한 것으로 간주하는 게 골자다.

문 의장 측은 이 법안이 '피해자 중심' 지원 방안이면서 한일 갈등을 푸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피해자와 관련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로 국회 논의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일부 피해자단체들은 '문희상 안'이 공식 사과를 하지 않은 가해자인 일본 측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며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전범기업이 모금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강제할 방안이 없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강제징용 문제를 두고 국장급 협의를 이어오고 있는 한일 양국 정부의 입장도 아직 분명하지 않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피해자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는 데다 일본 기업이 기부를 안 하면 강제할 수단도 없다"며 "법안 발의는 됐지만 통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여당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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