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 검증에만 1년…"수소차·충전소 폭발? 걱정 없다"

머니투데이 영월(강원)=권혜민 기자 2019.12.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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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수소 포함 국내 유일 '가스안전' 시험 기관, 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강원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강원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


"저 아래 검은색 용기 두개가 보이시죠? 용기 안에 대기 압력의 1000배인 1000바(bar)로 압력을 높인 물이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찾은 강원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안센터)'. '안전주의' 문구가 쓰여진 육중한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가 지하 1m 아래를 내려다보자 덩그러니 놓인 검은색 원통형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철썩철썩' 바닷가에서 들릴 만한 규칙적인 파도 소리가 끊임 없이 귀를 때렸다. 가압펌프가 물의 압력을 순간적으로 끌어올리는 소리다.



펌프에서 뿜어져 나온 고압의 물은 검은색 탄소섬유로 단단히 감긴 '타입4(TYPE4)' 수소 저장용기(연료탱크)에 채워지고 있었다. 수소 대신 물을 채웠다 빼는 과정을 약 5만회 반복하는 내구성 시험 과정이다. 수소 저장용기에 700~1000바의 고압 수소가스를 반복해 충전하더라도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한다. 수소는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일반 대기 중보다 압력을 높여 저장해야 한다.

11일 강원 영월군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 설치된 수소 내압방폭 시험환경 챔버.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11일 강원 영월군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 설치된 수소 내압방폭 시험환경 챔버.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
11일 강원 영월군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서 관계자가 안전밸브에 대한 질소 가압 시험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11일 강원 영월군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서 관계자가 안전밸브에 대한 질소 가압 시험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
2016년 문을 연 에안센터는 가스안전과 관련된 각종 시험을 담당하는 곳이다. △초고압 △화재·폭발 △방호시설 분야 시험장비와 설비 86종 165점을 갖추고 있다. 주요 설비만 약 143억원 규모다. 에안센터 설립으로 가스 화재와 폭발 사고시 실증을 통한 명확한 원인 규명이 가능해졌다. 또 고압가스 관련 제품에 대한 성능인증을 할 수 있게 돼 제품 개발과 수출이 쉬워졌다. 국내에 시험설비가 없을 땐 기업들은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해외 기관에 시험을 의뢰해야 했다.



특히 에안센터는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발맞춰 수소 인증시험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시중에 보급된 수소차와 수소충전소 핵심부품은 모두 에안센터에서 실시하는 안전성 시험을 통과한 인증 제품이다. 저장용기 뿐 아니라 밸브, 호스 등 고압 수소가 맞닿는 모든 부품은 인증을 받아야 한다. 해외 수출을 하려면 국내 뿐만 유럽, 미국 등 해외 규제 기준도 만족해야 한다. 현대차가 출시한 수소차 '넥쏘'도 이 곳에서 시험을 마쳤다.
11일 강원 영월군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파열시험 시설 천장에 폭발 과정에서 날아갔던 파편이 그대로 꽂혀 있다.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11일 강원 영월군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파열시험 시설 천장에 폭발 과정에서 날아갔던 파편이 그대로 꽂혀 있다.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
각 기업이 안전성 시험을 위해 에안센터로 보낸 수소 관련 제품은 내구성 시험 뿐만 아니라 △낙하시험 △화학적시험 △파열시험 △화염시험 등 다양한 검증 과정을 거친다. 예컨대 수소 저장용기의 경우 내구성 시험을 위해 고압의 물 뿐만 아니라 실제 수소를 반복 주입하는 작업까지 진행한다. 영하 40도 저온, 20도 상온, 85도 고온까지 온도 환경도 각기 달리한다.

파열시험의 경우 2000바까지 압력을 끌어올린 물을 계속 주입해 용기가 어느 시점까지 버티는 지를 확인한다. 압력을 버티지 못하는 시점이 오면 용기가 폭발적으로 터지는 위험성 때문에 전용 장비와 시설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시험이다. 실제 파열시험 시설 천장에는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폭발 과정에서 날아간 파편이 그대로 꽂혀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에 하나의 수소 저장용기 모델에 대한 시험을 마치는 데에는 꼬박 1년이 걸린다.
강원 영월군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서 화재시험 관련 버너 성능시험이 진행돼고 있다.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강원 영월군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에서 화재시험 관련 버너 성능시험이 진행돼고 있다.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
에안센터의 자랑거리는 화염시험을 진행하는 '연소시험동'이다. 거대한 돔형 형태로 지어진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벽두께만 1.2m로 TNT 15㎏급 폭발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곳에선 수소차나 수소 저장용기는 물론 배터리나 CNG(압축천연가스), LPG(액화석유가스) 용기까지 온갖 제품을 태워 안전성을 검증한다. 일본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세워졌고, 세계 최대 규모 화재시험이 가능하다.

화재시험 직후 정리 중인 상황이라 내부 진입은 불가능했지만, 이곳에서 이뤄진 시험을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수소차용 저장용기에 불을 붙이자 내부 압력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서서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약 5분 후 노란 불꽃이 천장을 향해 뿜어져 나오며 압력은 더 이상 높아지지 않았다. 안전밸브(PRD)가 작동해 내부에 있는 수소를 밖으로 내보낸 것.


수소차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형 폭발사고를 막으려면 이처럼 안전밸브가 성공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연소시험동 앞에는 타버린 LPG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차는 새까맣게 탔지만 형체는 그대로였다. 화재시험 중 안전밸브가 제대로 작동해 폭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일 강원 영월군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연소시험동 앞에 타버린 LPG(액화석유가스) 차량이 세워져 있다.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11일 강원 영월군 영월군 주천면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연소시험동 앞에 타버린 LPG(액화석유가스) 차량이 세워져 있다. / 사진제공=한국가스안전공사
조충희 에안센터 실증연구부 과장은 "독일, 미국, 캐나다 등 해외 관계자들도 에안센터를 둘러본 뒤 이런 시험을 잘 진행할 수 있는 시설은 없다며 놀라곤 한다"며 "특히 화염시험 시설은 독보적인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 강릉 수소탱크 폭발사고 이후 수소차나 수소충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늘어났다. 하지만 에안센터 관계자들은 "폭발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없다"고 설명한다. 조 과장은 "인증은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의미"라며 "1년에 걸쳐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면 정상적인 사용 환경에서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가스안전공사는 앞으로 수소경제 시대로 나아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안전성 확보를 위해 추가 설비 구축 등 적극적인 투자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향후 차량을 넘어 선박, 철도, 드론 등 모든 운송분야에 수소가 쓰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김홍철 에안센터 센터장은 "향후 수소 활용이 늘어나면 안전 관리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수소산업이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에안센터가 큰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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