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정의선도 썼다…미래 車 개발 혁신한 'VR'

머니투데이 화성(경기)=이건희 기자 2019.12.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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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가상현실 활용한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 본격화

현대·기아차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가동되는 모습. /사진제공=현대·기아차현대·기아차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가동되는 모습. /사진제공=현대·기아차


#현대·기아차가 올해 3월 150억원을 투자해 만든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디자인 품평장. 널찍하나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준비된 VR 기기 및 가방 형태의 장비를 착용했다. 그 순간 눈앞의 공간은 사라지고 노을이 지는 산맥 사이에 선 현대차 (252,500원 ▲3,000 +1.20%)의 수소전용 대형트럭 콘셉트카 '넵튠'이 나타났다.

현대·기아차가 VR을 활용한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를 가동하며 자동차 개발 과정을 혁신했다. 수십 명의 디자이너가 가상의 공간에 모여 차량 디자인을 점검하고, 버튼 하나만으로 차량 엔진부터 완성된 모양까지 볼 수 있게 됐다.



VR 쓴 정의선, 자동차 디자인·조립과정 지켜봤다

이 같은 과정은 지난 17일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현대·기아차 남양기술연구소 방문을 통해 공개됐다. 현대·기아차는 이날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 중 VR을 활용한 디자인 품평장과 설계 검증 시스템을 취재진에 처음 선보였다.



정의선이 '이걸' 쓰고 차량 디자인을 점검했다
현대·기아차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가동되는 모습. 디자이너들이 가상으로 구현된 신형 쏘나타 디자인을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현대·기아차현대·기아차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가동되는 모습. 디자이너들이 가상으로 구현된 신형 쏘나타 디자인을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현대·기아차
150억원이 투자된 세계 최대 규모의 VR 디자인 품평장을 김광현 현대디자인모델개발실장은 "핫 플레이스"라고 표현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비롯한 회사 최고경영진이 수시로 모여 가상 공간에서 디자인 모델을 품평하고, 차량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7월 미래 모빌리티 개발에 신속 대응하기 위해 연구개발본부 조직체계를 '아키텍처 기반 시스템 조직'으로 개편했다. 그 일환으로 '버추얼 차량 개발실'도 신설해 관련 작업을 준비했다.

'버추얼 개발'은 디지털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상의 자동차 모델 혹은 주행 환경을 구축해 실제처럼 차량을 시험 조립하는 과정이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바꾸며 품평을 진행할 수 있고, 시제작된 실물차에서 검증하기 힘든 오류 등을 즉시 확인하고 고칠 수 있다.


VR 디자인 품평장에선 20명이 동시에 VR을 활용해 디자인을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품평장 안에 설치된 36개의 모션캡쳐 센서는 VR 장비를 착용한 평가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1㎜ 단위로 감지한다. 이를 통해 평가자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버튼 조작만으로 차량의 부품, 재질, 색상 등을 마음대로 바꾸고 시공간별 디자인 적합성을 평가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10월 공개한 '넵튠'의 최종 디자인 평가 때부터 해당 품평장을 시범 운용했다. 이날 미디어 체험은 당시 운용된 '넵튠'을 둘러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VR 장비를 착용하고 품평장에 선 취재진(위쪽)과 가상 공간 속에 구현된 현대차 '넵튠' 및 평가자 모습. /사진=이건희 기자, 현대·기아차VR 장비를 착용하고 품평장에 선 취재진(위쪽)과 가상 공간 속에 구현된 현대차 '넵튠' 및 평가자 모습. /사진=이건희 기자, 현대·기아차
실제 공간에선 VR 장비를 착용한 사람들의 모습밖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가상 공간은 달랐다. 안내자의 간단한 조작에 따라 가상 공간 속 넵튠의 위치는 자유자재로 바뀌었고, 실내도 실제 차량을 둘러보는 것처럼 확인이 가능했다.

차량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배경을 눈길, 도심, 산맥 등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이 작업을 향후 개발할 모든 신차에 확대 적용할 것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VR 기술을 통해 현대·기아차는 실물로 시제품을 만드는 데 드는 자원을 줄였다. 기존에는 재질, 색상 등에 따라 일일이 시제품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용·시간이 줄면서 품질을 높이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앞으로 현대·기아차는 △유럽 △미국 △중국 △인도 등의 디자인센터와 협업해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가상 공간에서 진행하는 원격 VR 디자인 평가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 디자인 품평 외에 VR을 아이디어 스케치 등 초기 디자인 단계로도 확대하고, 실제 모델에 가상 모델을 투영시켜 평가하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기술도 도입키로 했다.

차량 설계, 가상 주행도 'VR'로 가능하다
현대·기아차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가동되는 모습. /사진제공=현대·기아차현대·기아차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가동되는 모습. /사진제공=현대·기아차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6월부터 VR을 활용한 설계 품질 검증 시스템을 구축해 시범 운영해왔다. 차량 설계 부문으로부터 3차원 설계 데이터를 모아 디지털 차량을 만든 뒤 가상 환경에서 차량 안전성, 품질, 조작성에 이르는 설계 품질을 평가했다.

기존에도 디지털을 활용한 차량 평가는 일부 진행됐지만 큰 화면을 통해 2차원 환경에서 주행 화면을 보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VR 설계 품질 검증 시스템은 자동차 운행 환경까지 가상으로 구현해 부품 간 적합성이나 움직임 등을 입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VR 장비를 착용한 연구원들은 가상 디지털 자동차를 직접 운행할 수 있고, 컨트롤러로 운행 중인 차량을 마음대로 절개해 엔진의 움직임이나 부품의 작동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실제 차량에서 불가능했던 검증이 가능해졌다"면서 "실물 평가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개발 차량의 개선 사항을 파악해 설계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VR 설계 품질 검증 프로세스는 △고속도로, 경사로 등 다양한 가상 환경 주행을 통한 안전성 △도어, 트렁크, 후드, 와이퍼 등 각 부품의 작동 상태 △운전석의 공간감 및 시야 확인 등의 가상 검증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날 설계 검증 체험을 통해 버튼 조작 하나만으로 기아차 (116,200원 ▲300 +0.26%) 세단 'K5'의 2세대, 3세대 간 운전석 시야 차이를 즉각 비교할 수 있었다.

VR 설계 품질 검증이 이뤄지고 있는 화면. /사진제공=현대·기아차VR 설계 품질 검증이 이뤄지고 있는 화면. /사진제공=현대·기아차
이처럼 현대·기아차는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를 상품기획 단계에서부터 생산까지 차량 개발 전 과정에 도입해 신차 개발 기간은 약 20%, 개발 비용은 연간 15%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사장은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 강화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와 고객의 요구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주요 전략 중 하나"라며 "이를 통해 품질과 수익성을 높여 연구·개발(R&D) 투자를 강화하고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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