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쇼핑 해볼까?"… '1개 국적'에 질린 사람들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12.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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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몰타 그리고 국적쇼핑①] '21세기형 보험' 시민권… EU가입국·영어권 몰타 인기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사진=픽사베이/사진=픽사베이


"국적쇼핑 해볼까?"… '1개 국적'에 질린 사람들
얼마 전 한 직장인 친구가 내게 "요즘 여러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 아이를 낳아 키워야하는데 한국이 너무 좁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을 가고 싶다"며 "몰타로 갈까 고민하며 매일 살피고 있다"고 덧붙였다.

몰타는 대부분의 국민에겐 생소한 국가다. 몰타는 이탈리아 반도 끝자락 시칠리아 섬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지중해의 숨겨진 보석'이라고 불린다.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 지중해 중심에 자리 잡고 있기에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랍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어 전 세계에 이름난 여행지다. 특히 몰타 수도 발레타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가 몰타를 가장 유력한 목적지로 꼽은 건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이라 이곳의 시민권을 획득하면 EU 회원국 간 이동은 물론 취업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국민의 88%가 영어를 사용하는 영어권 국가로 향후 자녀 교육에 용이할 것 같다 △영어 뿐만 아니라 몰타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다국어를 사용해 자녀가 다국어에 능통한 인재로 자랄 수 있다 등이다.

이외에도 그는 △지중해성 기후로 휴양지 같은 곳에서 살 수 있다 △의료 수준이 세계 5위로 높다 △기술자에게만 문이 열려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배경, 학력수준, 직업분야 등에 대한 요구 조건이 없다 △이 같은 이점들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영주권을 얻기가 '저렴하다' △2세대 이민만을 허용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돈만 있다면 4세대 이민(조부모-부모-본인-자녀)이 가능하다 등을 이유로 꼽았다.
몰타 /사진=이미지투데이몰타 /사진=이미지투데이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나 역시 한번 고심해볼까'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선지로 느껴졌다. 사실 이 같은 적을 선택해 추가적으로 만드는 행위난 '국적쇼핑'이라 불리며 이미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지난해 블룸버그는 '국적 쇼핑'이 최근 여유가 있는 이들 사이에서 꼭 해야할 것으로 꼽힌다면서 두 개 이상의 시민권을 소지해 다양한 국적의 여권을 수집하는 게 일종의 최신 트렌드가 됐다는 취지로 전했다.

그러면서 누구든 돈만 내면 살 수 있는 ‘황금 여권’을 파는 국가 10개국을 소개했다. 오스트리아, 키프로스, 몰타, 터키, 바누아투, 그레나다, 세인트키츠네비스, 세인트루시아, 도미니카, 앤티가 바부다 등이다. 이들 국가는 정착 프로그램이나 투자비자 제도를 운용하는 미국 등과 달리, 정해진 금액만 지불하면 국적을 준다.

'국적쇼핑'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탈세, 정치적 안정, 도피 등과 같은 이유에서부터 아주 만일 모국이 위기를 겪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자 하는 이유까지 다양하다.


이민컨설팅사 헨리앤파트너스의 대표 크리스티안 칼린은 "시민권은 21세기형 보험"이라며 "모국의 정치적 혼란 등에 대비해 두번째, 혹은 세번째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칼린 대표는 "어떤 고객은 단순히 재미로 여러 시민권을 수집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중 가장 인기있는 목적지는 몰타다. 칼린 대표는 "만약 당신이 요트와 두 대의 전용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의 부자라면, 그 다음으로 원하는 것은 아마 몰타의 여권일 것"이라며 "이는 최고의 부의 상징"이라고 했다.
몰타 발레타 /사진=이미지투데이몰타 발레타 /사진=이미지투데이
몰타는 박근혜 정부 때 국정농단 파문을 일으킨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시민권을 얻고자 한 국가이기도 하다. 정씨는 덴마크 사법기관에 의해 구금돼있던 때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몰타 시민권을 얻는 방안을 문의했다. 당시 정씨는 한국의 강제송환과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몰타 시민권을 취득하려고 한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었다.

몰타가 황금 여권을 파는 국가들 중 특히 인기가 많은 건 다른 나라에 비해 투자금이 적어서다. 몰타는 25만 유로(약 3억3000만원) 이상 국채를 구입하면 영주권 자격 조건이 주어진다. 시민권 자격 조건은 보다 엄격하다. 영주권 획득한 이후 1인일 경우 65만 유로를, 4인 가족의 경우 115만유로를 기부해야 한다.

몰타 정부는 시민권 대금 4분의 3을 반환금지액으로 가져가 교육이나 보건, 일자리 창출 사업을 위해 운용하는 '국가개발사회기금'으로 사용한다. 나머지 자금은 이민자가 몰타 국채를 사고 최소 5년간 주택을 사거나 임차하는 데 나눠 쓰도록 하고 있다.

이는 여타 황금여권 판매 국가들에 비해 매우 합리적인 금액이다. EU 국가에 지중해성 기후로 유사한 조건을 가진 국가들인 포르투갈, 사이프러스 등과 비교해 몰타는 매우 합리적이다.

△포르투갈은 50만유로(약 6억7000만원) 이상 부동산을 소유하면 거주 비자가 나온다. 비자 보유 중 매년 1주일 이상 거주하고 5년이 지나면 시민권 취득도 가능하다. △사이프러스는 EU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시민권 취득이 가능한 나라로, 아무리 늦어도 6개월이면 시민권이 나오지만 금액 부담이 크다. 200만유로(약 26억원) 이상 부동산에 투자해야 하고, 50만유로(약 6억7000만원)가 넘는 임대용 부동산 구입도 포함된다. 특히 50만유로 임대 부동산은 평생 소유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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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관련 제도가 시행되면서 그렇게 몰타 국민이 된 이들은 수천명이다. 자연히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EU에선 몰타가 황금여권 발급을 남용해 EU밖의 시민을 과도하게 EU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지난 1월 보고서를 통해 "몰타의 관련 제도는 타EU국가들보다 과하게 덜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몰타는 황금여권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로, 탈세 위험이 높다"며 몰타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다음 편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적쇼핑이 갖는 함의와 문제점 등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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