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블리]증거자료 열람·복사는 왜 오래걸릴까?

머니투데이 이정현 기자 2019.12.14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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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형사사법절차 전자화 등 개선 노력 필요

【편집자주】검찰 수사는 브리핑이나 발표로 전달되는 뉴스 외에도 이면에서 벌어지는 내용이 더 많습니다. 맛평가 조사인 블루리본처럼 검찰블루리본, '검블리'는 검찰 수사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살펴보고 전달하고자 합니다.
검블리 / 사진=이지혜기자검블리 / 사진=이지혜기자


지난 10일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된 정경심 교수의 3차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하던 송인권 부장판사는 검찰에 지적 사항을 말했다. 재판이 시작된지 한달이 다 돼가도록 증거자료 복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 부장판사는 피고인 방어권 차원에서라도 보석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사기록 등 증거자료는 피고인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변호인측은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나 각종 증거목록 등을 복사해 그것을 토대로 방어전략을 구상해 나간다. 증거자료 열람·복사의 범위와 가부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측이 매번 대립하는 이유다.



종이로 된 수사기록 등을 복사하는 일은 일견 단순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종이가 수사기록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사기록 원본은 그 자체로 굉장히 중요하다. 기록이나 증거목록을 한장 잃어버린 대가로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검찰청에서는 열람·복사 과정에서 기록 편철을 풀지 못하게 한다. 즉 수사기록을 한장, 한장 넘겨가며 복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건에 따라 몇천장, 몇만장이 될 수도 있는 수사기록을 한장씩 넘겨가며 복사해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복사가 끝난 증거자료는 담당 실무관들이 한번 더 검토한다. 종이가 겹쳐서 복사되진 않았는지, 허가되지 않은 부분이 복사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사건 관계인 개인정보가 포함된 부분이 있으면 칼이나 가위로 해당 부분을 오려내기도 한다. 이렇게 오려진 부분이 있는 복사본은 변호인측에서 PDF파일 등으로 전자화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한다. 일반적인 스캐너가 종이로 인식을 하지 못해 업체에 맡겨 한장씩 스캔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증거자료 열람·복사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복사·스캔 문제 뿐 아니라 비실명화 작업과 기록 넘버링 작업 등에도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증거자료 열람·복사에 소요되는 비효율적인 노고를 줄이기 위해 법조계에서는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전임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찰 수사기록의 양을 줄이기 위해 문답식 조서 탈피를 꾀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진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증거자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계속 종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서도 이같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조응천 의원이 지난 10월말 대표발의한 '형사소송 등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형사소송에서 검사나 피고인·변호인 등이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전자문서로 제출할 수 있게 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과학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 이렇게 기록을 전부 종이로 작성해 이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비록 아직까진 종이로 보는 것이 가독성 측면에서 낫긴 하지만 재판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위해선 형사사건 기록 전자화는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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