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비(권지안)가 현대미술로 하는 일

이장로(전시기획자, 평론가) ize 기자 2019.12.1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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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에 도전하여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만능인이라 불리며 큰 관심을 받는다. 대중 매체 속 연예인도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대중이 요구하는 이미지와 자신의 삶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그들도 만능인이라 불릴만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다양한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더욱 주목을 받곤 하는데, 연예인 솔비(권지안) 또한 지난 10월 5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대규모 아트 축제 2019 라 뉘 블랑쉬 파리(La Nuit Blanche Paris)에 초대받아 화제가 되었다.

‘백야’라는 뜻을 가진 이 행사는, 초청받은 현대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콘서트, 설치물이 도시 곳곳에 준비되어 하룻밤 동안 도시 전체가 예술로 채워진 경험을 즐길 수 있는 세계적인 축제이다. 그동안 한국인으로서 이 축제에 초청받은 것은 이미 국내외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경험하며 작품과 경력으로 인정받고 있던 김수자 작가와 최정화 작가로, 그들에 비하면 솔비는 활동 경력이나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작품세계로 인하여 한국 미술계 내에서의 위치가 미비 하였기에 이례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앞서 말한 작가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지점도 존재한다. 솔비가 K-POP으로 유명한 한국의 가수라는 사실과 퍼포먼스의 진행 기획에 있어서 현지의 안무가가 아닌 한국의 안무팀을 영입한 것은 미술 작가로서 K-POP의 영향력의 순풍에 올라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이는 작품 그 자체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스펙’들의 수혜였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솔비의 작업 시리즈가 현대 미술의 주요한 트렌드 중에 하나인 퍼포먼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과 합쳐지며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이런 점이 더욱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어, 실행 과정에 있어서 작업 외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현지에서의 좋은 반응은 솔비 본인이 끌어낸 것으로 하나의 도전이자 큰 성공이었다. 그것은 현대 미술의 다양성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이 더욱 넓어졌음을 시사함과 동시에 미술가 ‘권지안’으로서의 성장력이 더욱 돋보이는 지점이다.

그곳에서 권지안은 퍼포먼스 페인팅 ‘바이올렛(Violet)’을 진행하였는데,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한 치유의 행위로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형식의 작업 활동을 셀프-콜라보레이션이라는 단어로 시리즈 화 해오고 있다. 본래 가수였던 ‘솔비’와 미술을 하고 있는 ‘권지안’이 협업하는 형식으로 청각과 시각을 융합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 활동을 추구한다고 한다. 작품의 이미지나 담고 있는 메시지에 있어서, 약 7년 전 첫 개인전을 열며 자신에 대한 치유로서 미술활동을 선택했다고 이야기했던 솔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작가 권지안이었다. 그동안의 활동이 단순히 치유라는 이름 아래,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었던 것이라면 지금의 ‘권지안’ 대신 그림 그리려 하는 ‘솔비’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의 모습은 작가 본인이 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며 시간을 쌓아왔다는 증거이며 앞으로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작가의 생각을 조금 더 밀접하게 드러내기 위해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솔비’와 ‘권지안’을 분리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셀프-콜라보레이션 시리즈의 주된 개념이자 솔비가 미술 작가로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전통적으로 대중예술이라고 불리는 장르와 순수미술로 불리는 장르들은, 그 근간을 떠나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서로를 타자화 시켜왔다. 그 결과, 한쪽 장르에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은 다른 장르에서의 활동이 성과를 보여준다 할지라도 순수한 인정과 그 세계로의 완전한 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니 이미 연예계의 치열한 생존의 장에서 본인의 이름을 알린 솔비가 자신이 원하는 미술 작업 활동을 해나가며 그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선택한 방식은, 가수로서의 자신과 미술가로서의 자신을 분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타자화시킨 것이다.

솔비가 지난 2019 광주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아시아문화전당에서 퍼포먼스를 했던 것은 위와 같은 개념이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시사하는 바일 것이다. 아시아 문화전당에서 대중예술인이 무대를 가진 것은 최초라고 하나, 그것은 솔비로 오른 무대가 아니라 권지안으로 행해진 무대였다. 이것은 작품의 캡션에서 ‘솔비’가 아닌 ‘권지안’이 적혀 있는 것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사실이다. 대중 예술과 순수 예술, 이 보이지 않는 경계로 나누어진 두 세계에서 생존해나가는 솔비와 권지안은 실체화된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다른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2012년 첫 개인전을 열고 지금까지 솔비가 보여준 미술계에서의 흔적은 분명히 성공적이다. 물론 인기 연예인 ‘솔비’라는 훌륭한 단상을 딛고 시작한 일이기에 그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던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미술의 역사상 청각과 시각의 융합, 청각의 시각화라는 형식의 퍼포먼스가 처음 있던 시도도 아니고 여러 작가들에 의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진행되어오고 있지만, 권지안의 행위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채널과 기회가 다양했기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대중들의 관심을 받으며 수행할 수 있었다. 작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은 대중의 관심으로 에너지와 빛을 받는 예술이고, 미술은 대중을 등지고 어두운 터널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많은 미술 작가들은 여전히 터널 속에 있다. 그러나 순수 예술계에서의 여전한 일부 비판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작가들이 작업으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가수 솔비도 성공하기 위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단순히 시작이 달랐다는 이유만으로, 현재 눈에 보이는 작가의 성과를 축소시키기엔 요즘 시대의 정신에 적합하지 않다. 조금 더 타인에게 너그럽고 관대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개인적 아픔의 치유를 말하던 작가 권지안이, 이제는 사회의 현황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순히 개인으로만 향해있던 시선이 점차 외부로 전환된 것이다. 내부로 갇혀있던 사유가 점차 뻗어나가는 것은 대중에게 관심을 받는 작가로서 당연한 과정이자 성장일 수밖에 없다. 힘들었던 시간을 기억한 개인의 치유와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하여 지속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기쁨으로서의 주이상스(Jouissance)를 추구했던 초기의 상태에서 벗어나, 이제는 생의 에너지로서 넓은 의미의 주이상스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것은 고통과 함께하는 쾌로서 삶에서 느껴지는 문제들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인 작가의 태도로, 메시지를 전달해줌과 동시에 대중들에게 작가 권지안의 행보를 꾸준하게 남길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그 길의 끝에서 여전히 가수 ‘솔비‘의 타자로서의 작가 ‘권지안‘이 남아 셀프-콜라보레이션이 진행되고 있을지, 아니면 두 인물이 진정한 의미로서의 융합을 이뤄 셀프-콤바인(Self-Combine)이 될지 예측하기엔 이르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다. 미래에도 작가 권지안은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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