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재계 거목들의 퇴장을 지켜보며

머니투데이 장시복 기자 2019.12.1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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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989년 출간된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에세이집 제목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을 상징하는 수사(修辭)로 읽힌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들, 샐리리맨들에게도 유효한 글귀다.

해외 여행도 귀했던 시절 김 회장의 '세계 경영'은 미지에 영역에 대한 강한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이 실제 가능하다는 것도 몸소 보여줬다.



서울역 맞은 편의 '대우빌딩'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목, 그 자체였다. 그룹 해체는 됐지만 대우건설을 비롯한 미래에셋대우, 대우조선해양, 한국GM, 위니아대우는 여전히 '대우 DNA' 인자를 각인해 각 분야를 이끌고 있다. 물론 빛과 함께 짙은 그림자도 공존한다. 분식회계와 부실경영 논란은 그가 끝까지 안고 가야 할 멍에다.

김 회장이 지난 9일 영면하면서 "이봐, 해봤어?"라는 실존적 경영 철학을 남긴 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 '반도체 신화'의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함께 해방 이후 재계 거목 1세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이미 그들의 유지를 이어받아 2000년대 초반 사업을 키워 온 재계 2세들도 여러 이유로 이미 경영 무대에서 퇴장하는 모습이다.



40~50대 재계 3·4세 '부'회장들로의 왕위 계승식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이젠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고 속에서 부단한 혁신을 해야 하고, 기업의 사회적 역할까지 책임져야 하는 '경영 완전체'가 요구된다. 날로 기준치는 높아지고 의구심은 많다. 그만큼 '재벌'이 아직 우리 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기도 해서다.

침체 늪에 빠진 한국의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키워드로 도전정신, 창의성, 혁신이 꼽힌다. 결국 강한 실행력으로 한국 경제의 기반을 닦은 재계 1~2세대 경영인들의 사례에서 쉽게 모범 답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시대 정신에 맞지 않는 구태들은 과감히 리트머스지로 거르면 된다.

기업들이 보다 더 자유롭게 부딪혀 볼 수 있는 장을 펼쳐주는 건 오롯이 우리 정부와 사회의 몫이다. 이른바 '타다 금지법'과 같은 정치 공학이 개입된 꽉 막힌 규제로 미래를 막는다면 21세기판 정주영·이병철·김우중은 나오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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