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슬' 꺾은 '흥 배달부'…"택배車, 연습실이었죠"

머니투데이 이건희 기자 2019.12.1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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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트로트 도전 유재석 생방송 대결서 이긴 택배기사 출신 가수 이용주씨…"택배 일 안 했다면 노래 다시 못했을 것"

트로트 가수 이용주씨. /사진=김휘선 기자트로트 가수 이용주씨. /사진=김휘선 기자


트로트 신인 '유산슬'(유재석)이 아침 생방송 노래 경연에 깜짝 출연한 지난달 18일,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이용주'라는 이름이 올랐다. 이 경연에서 유산슬을 2만표 차이로 꺾은 또 다른 트로트 가수 '이용주'였다.



당시 '행복한 흥 배달부'로 소개하면서 경연에 나선 이용주씨(36)를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는 2015년부터 최근까지 CJ대한통운 (123,000원 ▲7,000 +6.03%) 소속으로 서울 마포구 망원동을 도는 택배기사로 일했다. 이씨가 '흥 배달부'가 된 건 올해 여름부터다. KBS 1TV '아침마당'에서 진행된 '도전 꿈의 무대'에서 내리 5연승을 거두면서였다.

이씨는 5연승 후 유산슬을 비롯한 트로트 신인이 경쟁한 경연에 다시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나훈아의 노래 '남자의 인생'을 불렀다. 현장에선 기립박수가 나왔고, 유산슬도 그를 향해 일어섰다. 시청자들로부터는 3만5304표를 받았다. 2위에 오른 유산슬 표가 1만4645표였던 점을 감안하면 '대박'을 친 셈이다.



"저는 행운아입니다."
지난달 18일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뒤 찍은 출연진 기념사진. '유산슬'로 등장한 유재석씨(앞줄 오른쪽 3번째)와 이용주씨(앞줄 오른쪽 4번째)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용주씨 지난달 18일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뒤 찍은 출연진 기념사진. '유산슬'로 등장한 유재석씨(앞줄 오른쪽 3번째)와 이용주씨(앞줄 오른쪽 4번째)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용주씨
이씨는 인터뷰 내내 "운이 좋았다"며 겸손한 모습이었다. 강원도 강릉 출신인 그는 2011년 이미 데뷔곡 '청춘아'를 내고 고향에서 활약한 가수였다. 하지만 노래 하나만으로 공연을 다니다 보니 한계에 부딪쳤다. 덩달아 재정 상황도 나빠졌다. 결국 생계를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이씨는 "한동안 노래 생각을 접고 일을 구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연예인 매니저로 일해보려 했지만 경력 부족에 따른 적은 급여가 발목을 잡았다. 그 사이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생계의 압박은 커졌고 돈을 안정적으로 벌어야만 했다. 가진 건 건강한 몸뿐이었다.

2015년 우연히 택배기사가 일하는 만큼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씨는 택배 업체를 찾아가 한 달에 400만원 이상 벌고 싶다고 했다. 업체에선 그가 원하는 만큼 벌 수 있는 구역을 이씨에게 내줬다.


예상대로 일은 많았다. 물량이 300개 넘게 들어온 날은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일해야 했다. 대신 바쁜 만큼 기대했던 벌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일이 익숙해지자 언젠가부터 택배차량에서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잊었던 꿈이 떠올랐다.

트로트 가수 이용주씨. /사진=김휘선 기자트로트 가수 이용주씨. /사진=김휘선 기자
이씨는 "어느 여름날 해 질 무렵 나훈아 '남자의 인생'을 듣는데 우리 일하는 분들을 위해 이 노래를 꼭 불러봐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차 안을 연습실 삼아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결국 기회가 찾아왔다. 무명가수를 세우는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씨는 "택배를 들고 다니는 길에도 가사를 옹알거리며 노래를 연습했다"고 회고했다.

동료들도 그의 도전을 응원했다. 녹화날 물량이 많을 때는 이씨의 일을 분담해주기도 했다. 그 덕에 5연승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이씨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했고 고객들도 웃으며 반겨주시는 건 물론 음료수에 식사까지 주신다는 분도 있었다"며 "돌이켜보면 택배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했으면 노래를 다시 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방송 경연에서 5연승, '유산슬'을 꺾은 가수가 되면서 곳곳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한 달 만에 200명 넘게 가입한 팬카페 '여의주'도 생겼다. 제대로 열린 기회에 그는 "노래에 전념하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택배기사 일은 내려놓았다. 앞으로의 다짐을 물었다. "넘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지 항상 되새기면서 노래로 보답하겠다"는 게 돌아온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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