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빛의 벙커'에서 선보인 반 고흐전. 빛과 음악, 역동적 이미지가 섞인 전시는 공연으로 비칠 만큼 재미로 무장했다. 전시는 내년 10월 25일까지. /제주=김고금평 기자
전시가 시작되면 모든 불이 꺼지고 가로 100m, 세로 50m, 외부 높이 10m, 내부 높이 5.5m에 달하는 대형 국가 기간 통신시설 벙커 사방에 드리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시선을 강탈한다.
제주 '빛의 벙커'에서 열리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 반 고흐 전. 내년 10월25일까지 열린다. /사진제공=티모넷
이번 전시는 고흐의 창의성이 집중적으로 발현했던 약 10년간 그가 남긴 800점 이상의 회화와 1000여 점의 드로잉 작품으로 구성됐다. 고흐의 강렬한 붓 터치를 디지털 작업을 거쳐 생동감 넘치는 영상미로 강조한 것이 핵심.
마치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듯 현장성이 강화됐고 이미지에 걸맞은 클래식과 재즈 음악을 배경으로 녹여 그 그림이 전하는 스토리와 감성적 측면을 읽을 수 있다.
전시 메카니즘은 저작권 있는 고해상도 이미지를 가져다가 시나리오에 맞게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뒤 그에 맞는 음악을 얹어 하나의 종합 예술 세트로 구성하는 식이다.
제주 '빛의 벙커' 건물. /사진제공=티모넷
이런 공연 같은 구성 때문에 이 전시는 기존 전시의 ‘일반적 관람’과는 거리가 멀다. 정적인 작품 한 편을 오랫동안 쳐다보며 옆에 쓰인 설명을 함께 읽는 방식이 아니라, 지식 없이 마냥 음악과 그림에 빠져들며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한 박진우 티모넷 대표는 “이 전시는 편안한 복장으로 작품을 산책하듯 걸어 다니며 볼 수 있는 친근한 방식으로 꾸며진 게 장점”이라며 “그림에 대한 설명도 달지 않았다. 오리지널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중간 단계에서 매개 역할을 하는 기능으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세계는 ‘감자 먹는 사람들’, ‘별이 빛나는 밤’ 등 수많은 명작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빛과 그림자에 둘러싸인 이 명작들을 통해 당시 혼란에 가득 찬 고흐의 내면세계도 직·간접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제주 '빛의 벙커'에서 선보인 반 고흐전. /제주=김고금평 기자
두 거장의 작품들은 90대 프로젝터와 69대 스피커가 동원된 축구장 절반 크기의 ‘빛의 벙커’에서 2020년 10월 25일까지 전시된다.
프랑스 컬처스페이스가 2009년부터 개발해 온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는 2012년 프랑스 남부 레보드프로방스 지역의 폐채석장을 개조해 '빛의 채석장'이란 이름으로 첫선을 보였다. 이후 2018년 파리의 낡은 철주조공장에 ‘빛의 아틀리에’를 열며 파리 예술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제주 성산읍의 ‘빛의 벙커’ 역시 옛 국가기간 통신시설 벙커를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재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