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석유시대의 끝 알리는 '거인'의 외출

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2019.12.0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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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A 최근 "2030년 이후 석유수요 정체"
상장 아람코, 잇단 투자로 새 시대 대비
사우디, 증시서 거둔 돈으로 '비전2030'

편집자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왕실) 소유의 석유회사 아람코가 이번주 상장된다. 빈 살만 왕세자 주도로 세계 역사상 최대규모의 주식회사가 기업 공개를 통해 베일을 벗는 것이다. 유가 뿐 아니라 전세계 자금시장이 출렁이고,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도 아람코 상장의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로이터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로이터


지난달 12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보고서를 통해 10년 뒤부터 석유 수요가 정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석유가 고갈돼서가 아니다. 석유가 비싸서도 아니다.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에 관심 갖는 사람들과 정부가 늘면서 생긴 변화이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 석유시장의 10%를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기업 아람코가 11일(현지시간) 사우디 증시에 상장(IPO)한다. 아람코도 IEA가 말한 상황을 잘 안다. 지난달 IPO 투자설명서에서 업체는 IHS 마킷의 전망을 인용해 "2035년 석유 수요가 정점에 이를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대중에 공개했다. 시나리오 중에는 "정점이 2020년대 후반에 올 수도 있다"는 내용도 있다.



애플 시가총액(1.2조달러)보다 40%가량 비싼 1.7조달러로 평가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지만, 아람코의 상장은 한편으로 '석유=대박'이던 시대의 종말이 다가옴을 보여준다.

2025년, 20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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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A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석유 수요 증가 속도는 2025년 이후 느려진다. 지난해 9690만 배럴이던 하루 원유 수요량은 이후 2030년 1억540만 배럴로 늘고, 2040년에도 1억640만 배럴로 큰 움직임이 없다.



이렇게 되는 배경에는 현재 석유 소비의 60%가 발생하는 운·수송 부문의 변화가 있다. 앞의 보고서는 하이브리드 등 고연비 차량이 늘면서 하루 900만 배럴, 전기자동차로 인해 400만 배럴의 수요가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배기가스 배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노르웨이가 2025년부터, 네덜란드·아일랜드 2030년, 덴마크 2035년, 영국·프랑스 등이 2040년부터 내연기관차의 판매 금지를 추진 중이다. 최대 자동차시장 중국도 2035년 전기차 판매 비중을 60%로 올리려고 한다. 자동차 기업들도 전기차 시대에 대비해 투자하기 위해 지난달 독일 아우디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는 등 금융위기 때 수준의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다.

석유에 국가경제의 40%가량을 의존하는 사우디는 '탈 석유'를 위해 지난 2016년 경제·사회 개혁 프로젝트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왕실이 100% 소유해온 아람코 지분의 단 1.5% 공개로 거둔 256억달러(30조5000억원)는 이 사업의 재원으로 쓰인다.


최후의 석유기업
/사진=로이터/사진=로이터
아람코의 상장이 탈 석유에 대비한 움직임이지만, 아람코가 석유 시대 후반부에 연명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최후의 석유기업으로 남으려고 한다.

하루 1030만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아람코는 생산원가가 배럴당 2.8달러라고 밝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낮다. 초경질유로 품질도 좋다. 경쟁력이 있다.

업체는 최근 외부 기업들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 초 중국 노린코와 손잡고 중국에 정유·석유화학 단지 조성에 1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지난 8월에는 인도 석유화학기업 릴라이언스의 지분 20%를 인수했다. 지분 17%를 갖고 있는 국내기업 현대오일뱅크와는 20년 동안 원유를 공급하고, 휘발유·경유 등을 공급받는 계약을 맺었다.

석유 수요가 지속될 정유·석유화학 분야에 투자해 안정적인 원유 공급망을 짜고, 원유에만 의존하던 사업 구조도 바꾸려는 시도다. 아람코의 투자가 아시아권에 몰린 것도 눈길을 끈다. 개발도상국이 많은 아시아 지역은 석유 수요가 더 오래 간다고 예상되는 지역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7일 전문가를 인용해 "(장기적으로) OPEC(석유수출국기구)는 매장량이 많고 생산비용이 낮은 사우디, 이에 따라갈 수 있는 쿠웨이트, UAE와 그렇지 않은 다른 산유국으로 양극화될 것"이라는 분석을 전했다. 석유 사양 시대가 오면 OPEC 카르텔이 무너지고 거대한 강자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아람코는 지난 10월 예비주주들에게, 2024년까지 애플의 5배가 넘는 총 750억달러(89조원)의 배당금을 보장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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