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 도둑손님 잡았더니…"청소년인데 신고하세요"

머니투데이 오진영 인턴기자 2019.12.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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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흡연하는 미성년자들 처벌 규정 없지만 가게는 영업정지…"개정 시행령 무용지물" 업주들 불만 고조

미성년자가 신분증을 위조해 술을 마셨지만 처벌은 업주의 몫이라며 불만을 토로한 현수막. /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미성년자가 신분증을 위조해 술을 마셨지만 처벌은 업주의 몫이라며 불만을 토로한 현수막. /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저 아직 고등학생인데, 신고하실 거예요? 어차피 처벌 안 받아요."

"돈 없는데 그냥 보내 주세요. 신분증요? 제 거 아니고 형 건데요."



성남에서 한 술집의 매니저로 일하는 김모씨(31)는 매일 밤 '고등학생과의 전쟁'을 벌인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초보 매니저인 김씨는 졸린 눈을 비비며 신분증과 얼굴을 대조하지만 이따금 계산대를 벗어나는'도둑 손님'들의 덜미를 잡으면 고등학생일 경우가 많다. 김씨는 "불법인 걸 알면서도 영업정지를 받을까 두려워 보내 줄 수밖에 없다"면서 "위조한 미성년자들은 빠져나가고, 업주만 처벌하는 게 무슨 법이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김씨의 사례처럼 최근 신분증 위조나 변장 등 '스파이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음주한 후 적발되면 "내가 미성년자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미성년자들에 대한 업주들의 불만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업주들만 처벌받는 미성년자 음주"라는 국민청원이 게시돼 532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법의 허점을 악용한 청소년들 때문에 업주들이 고통받고 있다"면서 "가게의 신분증 확인 절차 강화와 미성년자의 처벌 규정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개정 식품위생법…증가하는 미성년자 음주와 대비
식품위생법 개정안. 일각에서는 '업주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라는 조항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 사진 = 법제처 포스트 갈무리식품위생법 개정안. 일각에서는 '업주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라는 조항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 사진 = 법제처 포스트 갈무리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한 업주는 청소년보호법과 식품위생법 2가지 법률의 적용을 받는데, 현행 청소년보호법 59조 '청소년에게 유해약물 등을 구매하게 하거나 출입 금지업소에 출입시킨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규정에 따라 '미성년자 주류판매'로 적발된 업주는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지난 6월 개정된 식품위생법 시행령에 따르면 업주가 미성년자인 것을 몰랐을 경우 영업정지 처분은 면제받을 수 있지만, 청소년보호법에는 면제조항이 없어 형사처벌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미성년자인 것을 알지 못한 사실'의 입증 책임은 업주 측에 있어 실질적으로 적발 당시 업주가 행정처분을 면책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청소년 음주율 역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의 음주율은 16.9%로 2016년(15.0%)·2017년(16.1%)보다 오른 수치다. 고등학생 음주자들 중에서는 PC방·노래방 등의 공공 시설이나 식당·술집 등의 주류 판매 시설에서 술을 마시는 비율도 23.2%나 됐으며 중학생 음주자들도 20.3%가 '야외 음주'를 즐겼다.

'나이 속인 미성년자 덕분에 영업정지'게시글 잇따라 올라와…"부탁인데 우리 가게에서 끝내 달라"
신분증을 위조한 미성년자들 때문에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다고 밝힌 한 곱창집. /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신분증을 위조한 미성년자들 때문에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다고 밝힌 한 곱창집. /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청소년 음주는 증가하는데 마땅한 처벌규정이 없다 보니 업주들은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지난 4일 한 커뮤니티에는 "친구네 동네 미성년자들이 한 건 했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자가 올린 사진에는 한 곱창 가게의 업주가"12월 2일부터 23일까지 영업 정지를 받았다. 이용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미성년자 여러분들 덕분에 긴 휴가를 얻었다. 다른 영업장도 피해가 없었으면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ㄱ'곱창가게에 대해 화성시청 관계자는"경찰서에서 적발 후 통보를 받아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내렸다. 별도의 형사 처벌도 받을 것"이라면서 "최근 적발 사례가 늘어나 영업정지 처분 사례가 많다. 신분증 위조 외에도 몰래 술을 반입해 마시는 등 음주 방법이 다양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6월 시행령이 개정돼 영업정지 처분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는 질문에는 "알지 못한다. 식품위생법 상에 명시된 대로 행정처분할 뿐"이라고 답변했다.

지난 5월에도 대구 상인동의 한 음식점에 내걸린 "미성년자들이 25만 7000원어치 술을 마시고 자진신고해 영업정지를 당했다"는 현수막이 누리꾼들의 이목을 끌었다. 현수막을 붙인 업주는"새벽 2시에 들어와 술 마시고 자진신고한 미성년자들, 공짜로 마신 술이 맛있던가"면서"차라리 먹고 싶어 먹었다고 하지, 나(업주)도 주방 이모·직원·알바도 모두 피해자가 됐다. 부탁인데 이 집에서 끝내 달라"고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신분증 위조한 청소년들도 처벌해야"…'청소년 쌍벌제'도입은 미지수


신분증 위조로 피해를 본 업주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미성년자 음주를 막아 달라는 국민청원들. / 사진 = 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신분증 위조로 피해를 본 업주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미성년자 음주를 막아 달라는 국민청원들. / 사진 = 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국민청원에 글이 잇따를 정도로 업주들은 "미성년자의 음주·흡연를 막기 위해서는 미성년자들을 처벌하는 규정도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산 사하구 동아대학교 인근에서 아버지와 술집을 운영하는 송모씨(26)는 "미성년자들의 신분증 검사를 위해 C사의 신분증 검사기까지 들여놨지만 대학생들이 술집을 찾을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빠른년생'이나 근처 고등학생들은 아닐까 걱정"이라면서"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을 때 업주들만 처벌하는 것은 가혹하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범죄자인 셈인데 왜 업주만 두려워해야 하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외식업중앙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음주 후 자진신고한 미성년자들에 피해를 본 업소는 2619곳으로 미성년자 주류 판매가 적발된 업소의 78.4%를 차지한다. 게다가 형법 225조 공문서 위조죄에 해당하는 청소년의 신분증 위조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 1865건이던 것이 2016년에는 2068건, 2018년에는 1467건에 달했다. 최근 10년간 주민등록증 등의 공문서 위조로 검거된 청소년은 1만 6800여 명에 달한다.

그렇지만 청소년에게도 음주·흡연으로 인한 처벌의 부담을 지우자는 '쌍벌제(업주-청소년 쌍방을 처벌하는 제도)'는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이 신분증을 위조해 음주·무전취식 등을 저지른 청소년에게도 학교·부모에게 통보한 후 사회봉사 등의 벌칙을 부과하는 '청소년 음주 쌍벌제법(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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