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킹 설명하는 쇼호스트 영상, 90만번 조회된 이유

머니투데이 구단비 인턴기자 2019.12.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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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 구두, 속옷 등 각종 상품들을 홈쇼핑에서 선보이는 쇼핑호스트들이 온라인 상에서 '음란물'로 소비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사진=이미지투데이스타킹, 구두, 속옷 등 각종 상품들을 홈쇼핑에서 선보이는 쇼핑호스트들이 온라인 상에서 '음란물'로 소비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사진=이미지투데이






"믿고 보는 섹시한 OOO 쇼핑호스트(쇼호스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여지껏 왜 몰랐을까? 조용히 엄청난 OOO 쇼호스트", "아찔한 뒷태로 열심히 레깅스 소개하는 OOO 쇼호스트"



홈쇼핑 속 제품을 소개하는 쇼호스트의 영상들이 이상한 제목을 달고 '음란물'로 둔갑했다. 쇼호스트 영상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채널은 2년 전 개설해 구독자 수만 2만6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업로드한 영상 수는 5일 기준 약 465개, 가장 인기 있는 영상의 조회 수는 90만이었다. 그 밖에도 여러 채널들이 쇼호스트 영상을 편집해 공유하고 있었다.

속옷 소개부터 침대 선보이는 모습까지 '성적 대상화'
홈쇼핑 쇼호스트들의 영상이 업로드된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들. 성희롱적 발언을 비롯해 속옷방송을 편집해 올려달라는 요청까지 빗발쳤다./사진=유튜브 캡처홈쇼핑 쇼호스트들의 영상이 업로드된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들. 성희롱적 발언을 비롯해 속옷방송을 편집해 올려달라는 요청까지 빗발쳤다./사진=유튜브 캡처


주 대상은 의류를 설명하는 쇼호스트의 모습이다. 레깅스, 스타킹, 바지 등은 직접 시착한 상태로 얼마나 편안한지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신체 부위가 클로즈업되는 영상에는 "골반 죽인다", "엉덩이가 섹시하다" 등의 성희롱적인 댓글도 달려있었다.

속옷의 경우 더욱 노골적이다. 특히 여성 브래지어를 착용한 쇼호스트들이 착용감을 설명하기 위해 가슴 윗부분을 어루만지거나, 브래지어가 가슴을 잘 모아준다 등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가슴골을 강조한 영상들에도 어김없이 "(브래지어를) 입을 일은 없지만 충분히 공부했다", "쇼호스트가 아니라 비뇨기과 의사 아니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그뿐만 아니라 신발을 시착하는 영상도 꽤나 인기가 많았다. 신발을 홍보하는 쇼호스트들이 맨발 대신 스타킹을 착용한다는 점을 악용해 '성적 페티쉬'를 충족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소파, 침구류 등을 시연하며 신발을 벗고 앉아있는 쇼호스트의 발까지도 성적 대상화 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쇼호스트들의 신상 정보도 고스란히 노출되는 또 다른 문제도 발견됐다. 얼굴과 몸이 그대로 담긴 영상에는 "빨간 원피스녀 누구?"라는 댓글이 달리자, 다른 누리꾼이 쇼호스트의 이름과 나이, 결혼 여부를 공유했다.

홈쇼핑 "생생한 전달 위한 일인데…황당하다"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광고 영상이 음란물로 소비되는 현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사진=이미지투데이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광고 영상이 음란물로 소비되는 현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사진=이미지투데이
홈쇼핑 측은 이같은 논란이 생소하다는 반응이었다.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쇼호스트들이 제품을 착용하는 이유에 대해 "홈쇼핑 특성상 패션 제품을 입어보지 않고 소개하거나 판매하긴 어렵다"며 "외투를 입고 나오는 것처럼 다른 상품들도 착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쇼호스트들이 제품을 체험해봐야 고객들에게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영상들이 온라인상에서 성적인 의미로 소비된다는 건 정상적이진 않은 것 같다"며 "홈쇼핑 방송을 시청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전혀 성적 의미가 없다. 선을 지키지 않으면 심의에 걸리기 때문에 이를 준수하고 있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관계자는 "쇼호스트들도 소중한 우리의 직원"이라며 "영상이 (음란물로) 소비되고 있었다는 건 전혀 몰랐는데 법무팀이랑 상의해볼 문제인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 "쇼호스트 개인 대응 아닌 업체 측 강경 입장 필요해"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촬영물을 음란물로 소비하는 일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임종철 디자이너전문가들은 여성들의 촬영물을 음란물로 소비하는 일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쇼호스트가 개별적으로 다수의 남성 온라인 유저들을 대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이를 소비하는 남성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라며 "쇼호스트가 소속된 회사와 해당 제품 브랜드 업체 측에서 협업해 문제에 대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업체들이 함께 대응 메뉴얼을 공유하고, 공식적인 처벌 판례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라며 "대형 기업들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경고하고 행동에 옮긴다면 개개인의 남성 유저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제2항에선 촬영대상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유포하는 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에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쇼호스트들이 상품 광고 목적으로 촬영해 올린 영상이더라도 당사자가 봤을 때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을 편집하고 발췌해 온라인상에 올렸을 경우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해당 영상이 성적 욕망,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 부위를 촬영한 영상물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과거 레깅스 차림의 여성을 불법 촬영했던 남성이 무죄 처분을 받은 이유도 이러한 세부 조항 때문이다.

이에 윤 교수는 법의 개정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 법은 온라인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엔 미비하다"며 "디지털 성범죄가 불법 촬영으로만 국한돼 논의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일반적인 여성의 촬영물이 음란물로 소비됐을 때 처벌받을 수 있도록 법의 개정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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