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① 사랑의 형태

김리은 ize 기자 2019.12.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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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① 사랑의 형태


아이유의 다섯 번째 미니앨범 ‘Love poem’은 요컨대 다양한 사랑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다. 앨범 수록곡 전체를 작사한 아이유는 ‘unlucky’에서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이야기하는 한편 ‘Love poem’을 통해 소중한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는 사랑을 보여주고, ‘그 사람’에서 지나가버린 사랑을 회상하다가도 ‘Blueming’에서는 사랑의 설레임이 피어나는 현재에 온전히 집중한다. 연인의 꿈으로 찾아간 이의 시점에서 쓰인 ‘자장가’,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노래한 ‘시간의 바깥’처럼 비현실적인 시공간에서 사랑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번 앨범에서 아이유는 자신의 이름 앞에 ‘지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이지은’이라는 그의 본명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가 직접 작사한 수록곡 전체의 가사가 ‘시’임을 강조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작품자의 순정만 담겨 있다면, 어떤 형태든 그 안에선 모든 것이 시적 허용된다.” 앨범 소개글에서 스스로 밝힌 것처럼, 아이유는 ‘Love poem’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랑의 면모들을 시의 형식에 담았다.



아이유는 ‘스물셋’에서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채셔 고양이를 빌려 자신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Palette’에서는 마치 팔레트 속 다양한 물감의 색을 보여주듯 자신의 다양한 면모를 펼쳐보이며 스스로를 콘셉트로 삼기도 했다. 반면 ‘Love poem’에서는 대중의 시선을 받는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을 내세우는 대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랑 그 자체에 집중한다. ‘나는 행운아다’라는 자신의 오랜 좌우명을 비튼 ‘unlucky’에서 아이유는 “여전히 무수한 빈칸들이 있지 / 끝없이 헤맬 듯해”처럼 다소 우울한 가사를 경쾌한 리듬에 묻으면서 개인의 감정을 최소화한다. 핸드폰 화면 속 메시지의 파란색(‘blue’)과 꽃이 피어나는 모습(‘blooming’)을 합성해 사랑이 피어나는 순간을 형상화한 타이틀곡 ‘blueming’에서 “‘뭐해’라는 두 글자에 ‘네가 보고 싶어’라는 속마음을 담아”, “이모티콘 하나하나 속에 달라지는 내 미묘한 심리를 알까” 등의 가사들은 상대방과 사귀기 직전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Love poem’ 속 수록곡들의 모든 가사가 문학적 장르로서 시의 형식을 철저히 따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가 개인의 내밀한 내면이나 의도하는 바를 비유로 감추는 것처럼, ‘Love poem’의 노래들은 사랑을 하는 한 인간의 동적인 감정 대신 보편성을 내세운다.

감정의 절제, 혹은 개인적인 감정의 추상화는 그 자체로 ‘Love poem’이 내세우는 ‘사랑시’의 형식이 된다.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곡 ‘Love poem’에서 아이유의 목소리는 멀리서 울리는 투명한 소리로 표현되면서 상대를 위해 멀리서 노래하는 상태를 형상화하고, 기교를 최소화한 창법은 담담하게 가사를 전달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는 아이유가 곡의 소개에서 밝힌 것처럼 '염치 없이 부탁하는 입장이니 아주 최소한의 것들만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이 시를 들어 달라는 것, 그리고 숨을 쉬어 달라는 것”을 요청하는 조심스러운 사랑의 태도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그 사람’ 역시 현저히 어두운 아이유의 보컬이 울림까지 섬세하게 녹음된 기타와 어우러지며 회한 어린 감정을 표현하지만, 후렴구에서 이는 코러스 및 피아노와 뒤섞이면서 부드러운 소리로 처리된다. 그 결과 ‘그 사람’이 표현하는 과거의 감정은 고조되는 대신 그저 흘러가듯 지나간다. “갑자기 와 손님처럼 잠시 머물다 간 ‘그 사람’의 이야기”라고만 간략하게 표현된 ‘그 사람’의 소개처럼, 지나간 사랑에 대한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화자의 심정을 대변한다 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절제하고 보편성을 의도하는 ‘Love poem’의 형식은 역설적으로 한 개인 ‘이지은’이 사랑 앞에서 취하는 태도, 혹은 아티스트 ‘아이유’가 사랑을 다루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8년 전, 아이유는 ‘너랑 나’의 뮤직비디오에서 지금은 사랑할 수 없는 이와 연인이 된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소녀를 연기하며 “내 이름을 불러줘”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8년 후, 아이유는 자신이 작사한 ‘시간의 바깥’에서 ‘너랑 나’ 속 두 인물을 재회하게 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너의 이름을 불러줄게”

‘시간의 바깥’의 뮤직비디오는 ‘너랑 나’에서 아이유가 연기한 소녀가 아니라 그를 떠나보내야 했던 이현우의 시점을 묘사한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너랑 나’의 뮤직비디오 속 남녀가 재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이지만, 작품 외적으로는 과거 아이유가 프로듀싱에 참여할 수 없었던 ‘너랑 나’에서 누군가에게 불려야 의미를 가졌던 자신의 이름을 ‘시간의 바깥’의 작사가로서 스스로 호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간의 바깥’에서 “기록하지 않아도 내가 전부 널 기억하겠다"라는 과거에 대한 기록은 “내가 널 알아볼 테니까”라는 현재의 다짐으로 변화하고, “영원히 도착할 수 없는 섬” 같던 상대와의 거리는 “서로를 감아 포개진 삶”으로 좁혀진다. 그렇게 ‘너랑 나’와 ‘시간의 바깥’ 두 곡 사이 8년의 세월은 ‘시간의 바깥’에서 상쇄된다. 한 아티스트이자 개인이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해온 삶의 파고가 비로소 해소되는 과정. 아이유는 자신의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서사, 즉 과거와 현재의 자아가 화해하고 비로소 완성되는 과정을 ‘너랑 나’에서 모티브를 얻은 비현실적인 시공간에 담았다. 하고 싶은 말, 혹은 개인사를 가장 내밀한 곳에서 표현하는 것. 이것 또한 아이유가 음악에서 보여주는 ‘시’의 형태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시간의 바깥’은 앨범 전체에서 가장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성을 보여준다. 한 서사의 막을 열듯 피아노 소리로 고요하게 시작한 노래는 오케스트라를 점진적으로 동원하면서 점차 감정을 고조시키고, “숨이 차게 춤을 추겠어”라는 노랫말이 등장한 후에는 빠른 리듬의 기타 연주와 성악 보컬을 통해 춤을 형상화한 경쾌한 클라이맥스를 표현한다. 그 후 “기다려”라는 멜로디의 가사가 “드디어”로 바뀌며 화자가 어떤 변화에 도달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 아이유는 오히려 가장 고요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듣는 이가 집중하도록 한다. 그리고 “서로를 닮아 기울어진 삶 / 소원을 담아 차오르는 달”로 시작됐던 노래의 첫 부분에서 연주되던 피아노 소리는 “서로를 닮아 포개어진 삶 / 그들을 가만 내려보는 달”로 노래의 시작과 수미상관을 이루는 곡의 마지막에서 기타 소리로 바뀐다. 이는 이 노래의 진행에 따라 두 사람, 또는 과거와 현재의 자아가 하나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를 쫓지 않을 두 발”로 “과거를 밟지 않고” 서서 “숨이 차게 춤을 추겠어”라고 다짐하는, 한 사람의 자아가 시간을 뛰어넘어 완성되는 과정은 그렇게 하나의 노래이자 서사시가 된다.

요컨대 ‘시간의 바깥’은 단순히 운율과 대구를 맞춘 시적인 가사에 멜로디를 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가사의 서사를 오롯이 음악적으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가사가 내포한 ‘사랑’의 형태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한 하나의 공연, 혹은 뮤지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전반적으로 절제된 톤으로 이야기하는 앨범 ‘Love poem’에서 ‘시간의 바깥’은 다소 이질적인 트랙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Love poem’의 노래들은 가사가 메시지에 함축한 감정의 정도를 음악에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일관적이다. 사랑에 빠진 현재의 상태만을 묘사하는 ‘Blueming’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일렉트로닉 기타로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잠든 연인의 꿈속에서 상대의 밤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는 ‘자장가’ 역시 피아노 반주와 아이유의 보컬만으로 곡을 전개하면서 감정을 크게 고조시키지 않는다.

절제된 감정이 상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Love poem’이나 환상의 공간에서 가장 동적인 서사를 표현한 가사를 가진 ‘시간의 바깥’을 제외하면, 뚜렷한 기승전결이 없이 가사를 충실하게 구현하는 수록곡들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Love poem’의 수록곡 중에서 1분 가량의 티저 영상을 공개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원차트 성적이 낮은 ‘그 사람’의 경우(2019.12.1 ‘멜론’ 기준), 재즈적인 접근을 보인 후렴구 멜로디를 더 강렬하게 부르며 감정을 폭발시켰다면 더 강한 인상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유는 가사의 내용처럼 목소리도 흘려 보낸다. ‘시간의 바깥’이나 ‘자장가’처럼 가상의 공간에서는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거나 보컬리스트로서의 기교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unlucky’나 ‘blueming’처럼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으로 확장한 노래에서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창법으로 경쾌함을 표현하는 데 그친다.

절제된 가사의 내면을 그대로 음악에 구현하면서, ‘Love poem’의 일부 곡들은 아이유의 보컬이 가진 역량을 효과적으로 다 사용하지는 못한다. 대신 곡마다 다른 목소리로 가사의 내용을 표현하고, 그것은 가사가 전달하는 사랑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다. 아직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한 사람의 내면을 음악으로써 표현하고, 그런 사랑의 형태가 음악이 되는 것 역시 아티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발자취다. 이것이야말로 ‘시적 허용’이다. 음악으로서 ‘Love poem’의 완성도나 일관성의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할지라도, 이 균열은 아티스트이자 한 인간으로서 아이유를 그대로 드러내는 과정에서 나왔다. ‘Love poem’은 곡마다 다른 스타일과 그만큼이나 균일하지 않은 완성도를 통해 이 곡들을 쓰던 당시의 아이유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시를 쓰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유는 여전히 아이유다. 그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사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앨범에서조차 대중이 자신에게 주목할 만한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타이틀곡 ‘Blueming’에서는 “흥미로운 이 작품의 지은이 that’s me”라는 가사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활용하는 센스를 보여주고, 8년 전 자신의 상징적인 커리어였던 ‘너랑 나’를 뒤집은 ‘시간의 바깥’을 내놓으면서 대중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흥미로운 텍스트를 제공했다.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보여주는 앨범에서조차, 아이유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대중이 그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는 장치들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는 ‘너랑 나’의 “내 이름을 불러줘”라는 가사를 빌려 ‘이름에게’에서 “조용히 잊혀진 내 이름”을 찾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의 바깥’에서 “네 이름을 불러줄게”라 말하며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연결하며 자아를 완성하는 서사로 만들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동생, 혹은 누군가에 의해 정의되어야만 했던 소녀는 이제 자신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어디까지 드러낼지 결정하고, 표현한다. ‘Love poem’의 주제가 사랑인 것은, 과거에서 벗어나서 시간이라는 제약을 극복하게 된 원동력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는 아이유의 고백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의 바깥’ 뮤직비디오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유는 사다리를 타고 종이배를 벗어난다. 그는 사랑에 대해 말하며 비로소 창조된 세계, 혹은 시간의 제약을 벗어나 한 개인으로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한 개인이 자신이 새로운 세계에 내딛기까지의 마음을 시로 쓰고 음악으로 완성하는 것. 그 어떤 노래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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