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일자리 걷어차기

머니투데이 강기택 금융부장 2019.12.03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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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명분이 부딪칠 경우 ‘약자 혹은 서민 보호’를 외치는 쪽의 주장대로 일이 돌아갈 때가 많다. 거대기업·은행과 소비자의 이해관계가 다르면 더 그렇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이후 대책을 내면서 가장 우선한 가치도 금융소비자 보호였다. 연 4~5%의 기대이익에 비해 손실이 무한대인 상품을 판매한 것, 그 과정에서 불완전판매의 소지가 있었던 것과 내부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등이 그 근거였다.

금융위원회는 은행의 잘못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고난도 사모펀드와 신탁 상품 판매를 일괄적으로 못하게 했다. 은행 고객은 예·적금 이자를 받으려는 성향의 보수적 투자자들이므로 고위험상품을 파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DLF를 팔지 않은 은행도 상당수였다는 점에서 판매는 자율에 맡기되 사고가 생기면 제재를 더 세게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선택하지 않았다. 사모펀드의 최소 투자금액은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했다. 수익률이 높은 사모펀드에 자산가들만 가입하는 건 옳지 않다는 비판 때문에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췄던 것을 되올렸다. 과잉규제로 인해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갈 것이라는 우려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일부 서민이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대부분 부자인 사모펀드 투자자의 ‘소비자 책임’도 따져봐야 한다는 견해는 묻혔다.



이런 조치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비자 보호’가 아니라 ‘일자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대책은 그동안의 기조를 거스른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금융 일자리 통계’를 보면 2015년 이후 금융투자를 제외한 모든 금융업권에서 일자리가 줄었다. 예컨대 은행은 2015년보다 2018년 말 일자리가 1만4000개 감소했다. 비대면 거래와 업무 효율화 등으로 전통적인 뱅커 영역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IT(정보기술)부문만 디지털 투자확대로 고용이 늘어났다. 반면 금융투자는 4000개의 새 일자리가 생겼다. 규제완화와 사모펀드 등의 성장이 기폭제가 됐다. 특히 2015년 자산운용회사 수는 93곳, 고용인원은 5259명이었지만 지난해는 243곳, 8234명이었다. 이 수치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업’이 퇴조하느냐 발전하느냐에 따라 일자리가 줄거나 늘어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금융위가 은행이 얼마나 일자리를 창출하는지 살펴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은행은 사람을 더 뽑을 수 없는 구조적 상황에 처해 있다. 금융위 역시 인위적 개입으로 일자리를 늘릴 수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신탁시장 활성화’를 금융 일자리 확대방안의 하나로 검토하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기존 규제를 U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탁상품 판매금지’ 카드를 꺼내 들자 은행들은 ‘멘붕’에 빠졌다. 파장은 단순히 은행의 비이자이익이 축소되는 것을 넘어선다. 대면영업을 통해 판매하는 상품을 못 팔게 하면 결국 그만큼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은행이라는 최대 판매채널이 막히면 자산운용업계도 인력을 쳐내야 한다. ‘일자리 걷어차기’가 되는 셈이다. 이 같은 조치는 사모펀드 규제를 풀어 금융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일자리도 확대하려던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뜻이 아니다. 그의 소신과 다른 내외부의 의견이 의사결정에 반영됐다.
[광화문]일자리 걷어차기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DLF를 두고 국회에서 ‘갬블’(도박)이라며 “국가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윤 원장이 대책을 만든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런 시각을 좇은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대책은 DLF 사태가 ‘성장통’이라며 ‘소비자 책임’까지 거론한 은 위원장의 균형감각에 따라 풀어가야 했다. 금융정책은 정무적 판단보다 경제적 판단이 앞서야 한다. 금융정책이 서정시가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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