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불안하면…" 홍콩 증시로 본 주식의 정치학

머니투데이 김재현 이코노미스트 2019.12.0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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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보고 크게놀기]송환법부터 홍콩인권법까지

편집자주 멀리 보고 통 크게 노는 법을 생각해 봅니다.

"정치가 불안하면…" 홍콩 증시로 본 주식의 정치학


지난달 29일 홍콩 항셍지수가 2% 넘게 급락하자 국내 코스피지수도 1.45% 하락했다. 코스피 만큼 해외 증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증시도 드물다. 외국인투자자의 수요, 반도체 등 주요 수출 품목의 단가, 글로벌 무역환경 등 외부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뉴욕증시, 상하이증시, 홍콩증시가 번갈아 가며 코스피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최근 국내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증시는 홍콩 증시다.



홍콩은 6개월 넘게 격화되고 있는 시위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홍콩 증시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극도로 증폭된 상태다. 지난 5월 초만 해도 홍콩 항셍지수는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연초대비 16% 상승하면서 3만선을 상회했다.

◇한 달 만에 11% 급락한 후 다시 7.9% 반등
하지만 5월부터 범죄자를 중국 대륙으로 송환할 수 있게 하는 범죄자 인도법안인 ‘송환법’으로 촉발된 시위가 확산되면서 홍콩 항셍지수는 그야말로 수직낙하했다. 정치적 변수 때문에 주가가 폭락한 사례다. 지난 5월 3일 30081.6로 거래를 마감한 항셍지수는 하락으로 방향을 틀더니 6월 4일 26761.5로 급락했다. 한 달 만에 11%나 하락한 것이다.



하지만 시위가 크게 확산된 후 홍콩 정부가 타협할 기미를 나타내면서 증시 반등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6월 9일 빅토리아 공원에서 홍콩 시민 103만명이 송환법 철폐를 요구하는 등 시위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고 6월 15일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송환법 추진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시장의 투자심리가 안정되기 시작했고 항셍지수는 7월 2일 28875.6까지 상승하며 7.9% 급반등했다. 그런데 송환법 무기 연기에도 홍콩 시위는 계속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고 홍콩정부와 홍콩 시민의 강대강 대치가 지속됐다. 시위대는 홍콩 정부가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데 대해 분노했고 8월 들어 시위대가 홍콩 국제 공항을 점거하는 등 시위가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다시 12.4% 급락하며 무역협상 이전 수준으로 회귀, 그리고 반등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항셍지수도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하락폭이 더 컸다. 항셍지수는 8월 13일 25281.3로 올해 최저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7월 2일 대비 12.4%나 하락한 수치다.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올해 올랐던 증시가 무역협상 이전 수준으로 회귀한 셈이다.


지난 8월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처음 물대포를 동원하고 실탄을 사용하는 등 홍콩은 시위를 둘러싼 혼란이 지속됐으나 항셍지수는 바닥권에 다다른 듯 더 이상 하락하지는 않았다.

8월 13일부터 11월 7일까지 홍콩 증시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으나 계속 바닥을 높여가면서 전체적으로는 10.1% 상승했다. 홍콩 증시가 정치적 변수에 적응하면서 점차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송환법은 철회됐으나 아직 불씨는 꺼지지 않아
이 기간 중 가장 큰 사건은 송환법 철회다. 9월 4일 케리 람 행정장관이 공식적으로 송환법 철회를 선언하자 항셍지수는 곧바로 4% 가까이 급등했다. 근래 보기 힘든 상승폭이다.

하지만 홍콩은 시위대가 송환법 철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행정장관 직선제 등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케리 람 행정장관은 이미 송환법을 철회했으며 나머지 요구사항은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시위대의 입장에 다소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홍콩 정부의 뒤에 버티고 있는 중국이 홍콩 시위대의 요구사항을 수용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또한 홍콩 시위는 지난달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에 서명하고 난 후 미중 무역협상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홍콩 시위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올해 홍콩 증시는 정치가 불안정하면 주식시장이 몸살을 앓는 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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