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오른쪽)과 정몽구 회장(왼쪽). /사진제공=정주영기념관
두 거목에 이어 직후 세대를 이끌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은둔황제'로 불렸다. 하지만 별명과 달리 해외출장 전후 공항이나 출근길에서 마주친 기자들에게 던진 한마디들이 꽤 많다. "까딱 잘못하면 10년 전 구멍가게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애플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회사가 삼성을 견제한다.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다" 같은 말이 그렇게 나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을 방문해 방진복을 입고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3세 기업인의 맏형격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디카(디지털카메라)회장', '디카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경제인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오면서 지금은 고인이 된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아버지 세대 기업인들의 사진을 공들여 찍어주는 모습이 별명으로 이어졌다.
'디카회장'이 11년 만에 재성사된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재용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동행한 동생 기업인들의 사진사를 자처했던 광경은 여전히 생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친숙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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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경제인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한 최태원 SK그룹 회장(맨왼쪽)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오른쪽), 구광모 LG그룹 회장(오른쪽에서 세번째) 등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현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정치권에 애정어린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 '미스터 쓴소리'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또 다른 별명은 '규제개혁 전도사'다. 20대 국회 들어 규제개혁 관련 입법을 촉구하러 '여의도'를 찾은 게 10차례가 넘는다. 최근 국회 본회의 통과를 두고 관심이 몰린 '개·망·신법'(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정보통신망법 개정안·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 등 데이터3법)을 두고도 지난 26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처해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했다.
전문 경영인 중에서는 황창규 KT 회장의 '미스터 5G(5세대 이동통신)'라는 별명이 올초 유명세를 치렀다. 삼성전자 시절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전세계에서 모인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을 상대로 5G 파급력을 설파해 참가자들로부터 이런 별명을 받았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를 방청,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이동훈 기자
남다른 꼼꼼함과 세심한 일처리로 직책에 맞지 않는(?) 별명을 가진 이들도 있다. 권영수 ㈜LG 부회장과 윤부근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은 사업부 현역 CEO 시절 직원들 사이에서 '권대리', '윤대리'로 통했다. CFO(최고재무책임자) 출신으로 효율을 중시하는 권 부회장에게는 '칼'이라는 별칭도 있다.
재계 한 인사는 "별칭에는 성격이나 태도, 됨됨이가 모두 담기다 보니 기업인들의 별칭을 보면 그 기업의 분위기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며 "시장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럴수록 기업가 정신을 담아낸 별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영수 ㈜LG 부회장(왼쪽 첫번째)이 지난해 2월 LG유플러스 CEO(최고경영자) 시절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방문해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왼쪽에서 세번째)과 갤럭시S9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LG유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