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마약탐지견 민주. 만 10세의 래브라도 리트리버 암컷으로, 2017년까지 전국 세관에서 활약한 뒤 탐지견훈련센터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사진=관세청
돌이켜보면 후보견 때가 제일 편했다. 공기 좋은 인천 탐지견훈련센터에서 하루 세 끼 고영양식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게 일이거든. 수십 마리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됐다. 생후 8개월쯤 지나니까 체력훈련을 시작하더라. 달리기부터 6~7m 높이 고공사다리 오르기까지 안해본 훈련이 없다. 가끔 비행기 내부도 수색해야 하기에 높은 곳도 무서워하면 안되거든. 훈련교관 말 잘 듣고 사람 낯 가리지 않는 법도 배웠다.
생후 8개월 된 마약탐지견 후보생 '자견'들. 신체 성장은 끝났지만 아직 본격적인 훈련을 받기 전이라 천방지축이다. 훈련교관이 놀이방에 들어서는 순간 교관을 둘러싸고 흙 묻은 발과 혀를 들이대 교관의 옷을 엉망으로 만든다. /사진=관세청
종류별 마약 인지하기 훈련이 끝나면 실제 세관 같은 환경에서 훈련을 받는다. 수하물을 든 마네킹, 물류창고, 컨베이어벨트에서 마약을 찾아내는 훈련이지. 마약을 찾아내면 교관이 장난감 인형을 주거든. 마약을 찾고 보상을 받는 놀이를 열심히 배우면 되는 거야. 훈련 중에는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가 가장 힘들었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네 발로 느껴지는 진동을 무서워하는 친구들도 많아. 물론 이런 과정을 다 이겨내야 탐지견 자격이 주어지지.
물류창고에서 마약탐지 훈련을 받는 모습. /사진=관세청
여행객 검색 상황을 재연한 마네킹 탐색 훈련. /사진=관세청
내 짝꿍 핸들러가 나중에 속초, 김포, 대구로 옮겨다닐 때 나도 같이 갔다. 새로운 파트너랑 호흡을 맞추는 게 힘들기도 하고, 사실 파트너는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라 떨어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어. 파트너가 2017년 훈련교관으로 발령 받을 때 나도 슬슬 은퇴할 나이가 돼 함께 탐지견훈련센터로 옮겼어. 그 이후에는 편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지.
세관에서 정말 기상천외한 마약 밀수꾼을 많이 봤어. 형태를 숨기려고 가루로 만든 엑스터시부터 라디오, 책, 호두, 인형에 숨긴 필로폰·헤로인까지. 가장 골 때렸던 건 우산 대의 빈 공간에 숨긴 필로폰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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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태의 마약밀수 시도. 샴푸통, 우산대, 넥타이, 야구글러브 등에 숨겨온 마약 모두 탐지견의 후각을 벗어날 수 없다. /사진=최우영 기자
우리 탐지견들이 대한민국 길목을 지킨 지 벌써 33년째야. 88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부터 김포공항에 선배 견공 6마리가 도입된 게 최초거든. 지금은 그나마 여행객들의 인식이 좋아졌지만, 처음에는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어. 선천적으로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공항에 '감히' 개가 들어온다면서 지팡이로 때리는 인간들도 있었다. 요새는 먼저 핸들러한테 질문도 건네고 우리를 사랑스럽게 봐줘서 고마워.
우리도 최대한 여행객들에게 거부감 안 주려고 노력해. 그래서 마약탐지견들은 나 같은 래브라도 리트리버나 스프링거 스파니엘로만 구성돼 있어. 둘 다 얼굴이 호감형이면서도 체력이 좋고 활동적이거든. 셰퍼드 친구들도 일은 잘하는데, 여행객들 많은 공항에서 돌아다니면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까봐 일부러 안 뽑아.
호두 속에 숨겨오는 마약은 탐지견이 아니라면 절대로 찾아낼 수 없다. /사진=관세청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훈련에서 탈락한 1~2살 아이들은 입양이 잘 되는데, 나처럼 은퇴한 8~9살들은 일반 가정 입양이 잘 안돼. 우리는 훈련과정과 현장업무를 거치면서 인내력, 규율성 다 검증됐는데 말이야. 물론 센터에서 여생을 보내도 전문수의사와 담당직원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관리를 받긴 해. 그래도 우리가 그동안 국민들 위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남은 견생 국민들 집에서 함께 보낼 수 있게 관세청 무상분양 공고 나올 때 한번만 더 돌아봐주면 고맙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