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약도 날 피할 순 없다" 되짚어본 탐지견의 삶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2019.12.02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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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세관에서 마약 찾아내는 '국경 수비대' 마약탐지견의 '견생'

편집자주 지난해 전국 세관에서는 8.24㎏ 의 마약 밀수 시도가 적발됐다. 사람의 눈으로 찾기 힘든 마약을 찾아내는 건 고도로 훈련 받은 탐지견 39마리의 몫. 2년간의 훈련, 6년간의 현장 업무를 마친 뒤 은퇴한 마약탐지견 '민주'의 입장에서 관세청 마약탐지조의 단속 업무를 돌아봤다.

은퇴한 마약탐지견 민주. 만 10세의 래브라도 리트리버 암컷으로, 2017년까지 전국 세관에서 활약한 뒤 탐지견훈련센터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사진=관세청은퇴한 마약탐지견 민주. 만 10세의 래브라도 리트리버 암컷으로, 2017년까지 전국 세관에서 활약한 뒤 탐지견훈련센터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사진=관세청


내 이름은 민주. 2010년 6월에 태어난 래브라도 리트리버 암컷이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에 마약 몰래 들여오려던 놈들 참 많이도 잡았다. 그동안 나한테 걸린 밀수꾼들만 일렬종대 앉아번호로 연병장 열두 바퀴다. 가정주부부터 유명인사까지 다양한 인간들을 잡았지. 구체적인 신상정보는 수사기밀이라 말할 수 없으니 이해해주라.

돌이켜보면 후보견 때가 제일 편했다. 공기 좋은 인천 탐지견훈련센터에서 하루 세 끼 고영양식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게 일이거든. 수십 마리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됐다. 생후 8개월쯤 지나니까 체력훈련을 시작하더라. 달리기부터 6~7m 높이 고공사다리 오르기까지 안해본 훈련이 없다. 가끔 비행기 내부도 수색해야 하기에 높은 곳도 무서워하면 안되거든. 훈련교관 말 잘 듣고 사람 낯 가리지 않는 법도 배웠다.



생후 8개월 된 마약탐지견 후보생 '자견'들. 신체 성장은 끝났지만 아직 본격적인 훈련을 받기 전이라 천방지축이다. 훈련교관이 놀이방에 들어서는 순간 교관을 둘러싸고 흙 묻은 발과 혀를 들이대 교관의 옷을 엉망으로 만든다. /사진=관세청생후 8개월 된 마약탐지견 후보생 '자견'들. 신체 성장은 끝났지만 아직 본격적인 훈련을 받기 전이라 천방지축이다. 훈련교관이 놀이방에 들어서는 순간 교관을 둘러싸고 흙 묻은 발과 혀를 들이대 교관의 옷을 엉망으로 만든다. /사진=관세청
만 1세가 될 때 견생 처음으로 시험이라는 걸 치르더라. 인내력, 지구력 등 하나라도 부족한 친구들은 탈락했지. 합격의 기쁨도 잠시, 16주 집중훈련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선 코카인, 대마초, 헤로인, 해시시, 아편, 필로폰 등 주요 마약 6종에 더해 요새 새로 생기는 마약들까지 냄새를 익힌다. 요즘은 '살빼는 약' 같은 이름으로 둔갑한 변종 마약도 많더라.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남아 있으면 인간 후각의 1만배를 뛰어넘는 우리를 피해갈 수는 없어.

종류별 마약 인지하기 훈련이 끝나면 실제 세관 같은 환경에서 훈련을 받는다. 수하물을 든 마네킹, 물류창고, 컨베이어벨트에서 마약을 찾아내는 훈련이지. 마약을 찾아내면 교관이 장난감 인형을 주거든. 마약을 찾고 보상을 받는 놀이를 열심히 배우면 되는 거야. 훈련 중에는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가 가장 힘들었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네 발로 느껴지는 진동을 무서워하는 친구들도 많아. 물론 이런 과정을 다 이겨내야 탐지견 자격이 주어지지.



물류창고에서 마약탐지 훈련을 받는 모습. /사진=관세청물류창고에서 마약탐지 훈련을 받는 모습. /사진=관세청
여행객 검색 상황을 재연한 마네킹 탐색 훈련. /사진=관세청여행객 검색 상황을 재연한 마네킹 탐색 훈련. /사진=관세청
그렇게 16주 훈련을 끝내면 현장에 배치된다. 내 첫 근무지는 대한민국의 길목 인천세관이었어. 핸들러 아저씨와 파트너로 활동했지. 3교대 24시간 근무시스템은 나뿐만 아니라 핸들러도 지치게 하더군. 그나마 30분 일하고 2시간 쉬는 식으로 휴식이 보장되는 게 다행이었지. 꼬마 시절에는 하루 세 끼 주던 밥도 현업에서는 한 끼만 줘. 근무시간에 똥 마렵다고 화장실을 갈 수는 없잖아. 밥 먹고 화장실 다녀온 뒤 근무를 시작해.

내 짝꿍 핸들러가 나중에 속초, 김포, 대구로 옮겨다닐 때 나도 같이 갔다. 새로운 파트너랑 호흡을 맞추는 게 힘들기도 하고, 사실 파트너는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라 떨어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어. 파트너가 2017년 훈련교관으로 발령 받을 때 나도 슬슬 은퇴할 나이가 돼 함께 탐지견훈련센터로 옮겼어. 그 이후에는 편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지.

세관에서 정말 기상천외한 마약 밀수꾼을 많이 봤어. 형태를 숨기려고 가루로 만든 엑스터시부터 라디오, 책, 호두, 인형에 숨긴 필로폰·헤로인까지. 가장 골 때렸던 건 우산 대의 빈 공간에 숨긴 필로폰이었지.


다양한 형태의 마약밀수 시도. 샴푸통, 우산대, 넥타이, 야구글러브 등에 숨겨온 마약 모두 탐지견의 후각을 벗어날 수 없다. /사진=최우영 기자다양한 형태의 마약밀수 시도. 샴푸통, 우산대, 넥타이, 야구글러브 등에 숨겨온 마약 모두 탐지견의 후각을 벗어날 수 없다. /사진=최우영 기자
그런데 아무리 숨겨도 개코를 피할 수는 없어. 밀수꾼들이 제 딴에는 밀봉한다고 해도 제조 과정에서 미세하게나마 냄새가 묻거든. 비닐이건 캔이건 그 어떤 포장도 우리를 속이는 건 불가능해. 어떤 놈은 마약을 갖고 있다가 걸릴까봐 동료에게 건네줬는데 그 과정에서 냄새가 둘 모두에게 묻어서 한꺼번에 검거한 적도 있지. 인간들은 이런 걸 '1타 2피'라고 하더라.

우리 탐지견들이 대한민국 길목을 지킨 지 벌써 33년째야. 88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부터 김포공항에 선배 견공 6마리가 도입된 게 최초거든. 지금은 그나마 여행객들의 인식이 좋아졌지만, 처음에는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어. 선천적으로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공항에 '감히' 개가 들어온다면서 지팡이로 때리는 인간들도 있었다. 요새는 먼저 핸들러한테 질문도 건네고 우리를 사랑스럽게 봐줘서 고마워.

우리도 최대한 여행객들에게 거부감 안 주려고 노력해. 그래서 마약탐지견들은 나 같은 래브라도 리트리버나 스프링거 스파니엘로만 구성돼 있어. 둘 다 얼굴이 호감형이면서도 체력이 좋고 활동적이거든. 셰퍼드 친구들도 일은 잘하는데, 여행객들 많은 공항에서 돌아다니면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까봐 일부러 안 뽑아.

호두 속에 숨겨오는 마약은 탐지견이 아니라면 절대로 찾아낼 수 없다. /사진=관세청호두 속에 숨겨오는 마약은 탐지견이 아니라면 절대로 찾아낼 수 없다. /사진=관세청
나처럼 은퇴한 친구들에게 제 2의 견생을 찾아준다고 관세청에서 1년에 한번씩 무상분양 공고를 내. 은퇴견뿐 아니라 훈련과정에서 탈락한 친구들도 대상이야. 올해도 9월에 공고 내고 16마리가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났어. 평생 같이 일했던 핸들러들이 우리를 좋은 집에 보낸다고, 공고에 합격하면 2달 동안 분양가정 환경도 조사하고 입양인 인터뷰도 하느라 시간이 좀 걸리긴 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훈련에서 탈락한 1~2살 아이들은 입양이 잘 되는데, 나처럼 은퇴한 8~9살들은 일반 가정 입양이 잘 안돼. 우리는 훈련과정과 현장업무를 거치면서 인내력, 규율성 다 검증됐는데 말이야. 물론 센터에서 여생을 보내도 전문수의사와 담당직원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관리를 받긴 해. 그래도 우리가 그동안 국민들 위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남은 견생 국민들 집에서 함께 보낼 수 있게 관세청 무상분양 공고 나올 때 한번만 더 돌아봐주면 고맙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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