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93년생 나는 왜 60만원짜리 운동화를 신나'

머니투데이 이강준 기자 2019.11.2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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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 '플렉스'의 완성, 운동화]고가 명품 브랜드 중 가장 합리적인 가격대 제품…또 계절·유행을 타지 않아 오래 신을 수 있어

편집자주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 아니라 운동화다. 미국 힙합문화에서 유래한 '플렉스'(부나 귀중품을 과시한다는 뜻)를 중시하는 90년대생에겐 말이다. '최애템' 신발 하나만 신으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부심'을 느끼는 그들의 이유있는 운동화 사랑을 짚어본다. 

[MT리포트]'93년생 나는 왜 60만원짜리 운동화를 신나'


나는 93년생 입사 1년차 남성 직장인이다. 나름 얼굴에도 부심이 있지만, 내 패션의 완성은 운동화다. 오늘 출근할 땐 지난달 구입한 '최애템' 지방시 스니커즈를 신을 예정이다. 지난달 한국에선 99만원짜리를 50만원 후반대에 세일하길래 해외직구 사이트에서 '득템'했다. 배송료 좀 붙이면 60만원이니까 39만원 싸게 샀다. 여기에 슬랙스 등 세미 정장을 입으면 '깔맞춤'이다.



가끔은 주변에서 "60만원짜리 신발을 살 돈이 어디서 나냐"는 핀잔을 듣는다. 다른 데서 아끼면 충분히 가능하다. 비싼 신발을 신는 대신 맨투맨과 슬랙스는 탑텐 등 SPA(제조·유통 일괄형)브랜드에서 저렴하고 튼튼하면서 유행을 잘 안타는 제품을 산다. 시즌 오프 때 사면 위 아래 합쳐 4만~5만원이면 가능하다.

한달 식비는 달랑 30만원이다. 아침은 안먹고 저녁은 집에서 간단하게 해먹기 때문에 점심만 해결하면 된다. 편의점 도시락에 배고픈 날엔 컵라면까지 추가해서 먹고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면 딱이다.



명품 브랜드는 가급적 국내 매장보다는 직구를 한다. 한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어 관세가 없는 국가에서 직구하면 싸다. 국내 명품 매장은 내가 실제로 입었을 때 어울리는지, 신발 사이즈는 맞는지를 확인해보기 위해서 간다. 오늘 저녁 퇴근 뒤에 친구와 만나 하남 스타필드에 가기로 했다. 운동화를 보기 위해서다. 구찌 매장도 한 번 둘러볼 예정이다.

명품 스니커즈를 신는 가장 큰 이유는 평소 쳐다도 못보는 명품 브랜드 제품을 1년 내내 티내면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핫한 말로 '플렉스'하는데 이만한 아이템이 없다. 예컨대 스니커즈로 유명한 발렌시아가, 지방시 등에서 겨울용 코트 하나 사려면 최소 200만원 이상을 써야한다. 이 돈을 주고 산 제품을 겨울 한 철에만 입는 것이다. 반면 스니커즈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슈구' 등 밑창 보조제로 관리만 잘해주면 몇년 동안 새 것처럼 신을 수 있다.

스니커즈는 평소 캐주얼하게 입는 청바지, 세미 정장과 코디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조금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매일 색깔만 바꿔 스니커즈만 신기도 한다. 데이트할 때도 좋고, 회사 출근할 때도 에티켓에 벗어나지 않게 적당히 단정하다.


명품 신발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후반에겐 '나도 이제 돈버는 진짜 어른이 됐다'는 하나의 상징이다. 30대에게 최근 성공의 상징이 '그랜저'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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