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종이상자의 수난

머니투데이 이강준 기자 2019.11.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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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내년 1월 1일부터 대형마트에서 자율포장대와 종이박스를 퇴출한다고 밝히자 비판여론이 빗발친다. 환경부는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상품을 집으로 가져갈 때 쓰는 종이박스에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이 많이 사용되니 이를 줄이고 장바구니 사용을 활성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환경부가 정책목표에만 매몰돼 현실과 거리가 먼 탁상행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수긍할만하다. 어차피 재활용될 박스를 대형마트가 자율포장대에 비치해둔 것인데 왜 굳이 휴대도 불편하고 구매한 물건을 다 담을 수도 없는 장바구니를 써야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종이박스 퇴출이 환경보호와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또한 아파트 부녀회의 소소한 수익인 재활용품 판매수익이 사라진다거나, 생계가 아려운 노인들의 몇천원짜리 일당인 종이박스 수거일까지 정부가 가로막는다는 등 다양한 불만들이 터져나온다.



이 와중에 환경부는 유통업계가 자율협약을 체결한 것이라며 마치 우리는 무관하다는 듯 한 발 비껴서 있다. 정작 유통업계에 물어보면 "우리가 정말 자율로 했겠느냐"는 답변이 돌아온다.

물론 환경부가 종이상자를 치우려하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플라스틱 테이프가 종이상자의 재활용율을 낮추고 많은 소비자들이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상자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재활용품 수거장에 던져버리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든 국민들이 제대로 납득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



예컨대 이번 종이상자 퇴출의 경우 플라스틱 대신 종이테이프(마치 종이빨대처럼)나 노끈으로 대체를 고민하거나 재활용품 수거시 테이프를 제대로 제거하는 등 단계적으로 시차를 두고 시행했다면 어땠을까. e커머스업체들이 과도한 보냉재와 스티로폼박스, 종이상자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적절한 제한하는 정책부터 먼저 시행했다면 어땠을까.

최근 환경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적극적으로 친환경활동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궁극적인 환경보호는 소비자 참여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소비자들조차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탁상행정과 정책실패라는 꼬리표만 남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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