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달탐사를 바라보는 한국적 속좁음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9.11.2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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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지난 14일 인도우주연구기구(ISRO)는 달탐사선 ‘찬드라얀 3호’ 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내년 11월 달착륙에 재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인도는 2017년 로켓 하나로 위성 104개를 실어 나른 신기록을 보유한 국가다. 고도의 수학·소프트웨어·엔지니어 전문가를 확보한 항공우주강국이다.



[우보세]달탐사를 바라보는 한국적 속좁음


그런 인도가 지난 9월엔 쓰디쓴 실패를 맛봤다. 찬드라얀 2호에서 분리된 착륙선 비크람이 달 남극 부근 착륙을 시도하다 교신이 단절돼 우주미아가 됐다. 이를 지켜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호기 개발 연구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삶에는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최선을 다했고, 인도를 자랑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우주 개발 프로젝트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앞으로 더 나아갈 겁니다.” 모디 총리의 메시지는 고개를 떨군 연구자들에게 용기를 줬고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안겼다.

최근 우리나라 달탐사 사업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우리 측이 달 궤도선 무게 증가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궤도 변경안을 제시했는데 지난주 미국서 진행된 대면회의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달까지 가는 시간이 더 걸리고, 통신 난이도가 높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사업 백지화 등 비관적 추측이 난무한다.



NASA는 궤도선 통신을 맡은 중요 협력기관이다. 우리 달 궤도선에 자신들이 개발한 탑재체도 실을 계획이다. 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미국측은 “안정적으로 우리가 가봤던 달 궤도로 가자”는 입장이고, 우리 대표팀은 “기술적 가능성을 두고 새 궤도를 함께 검토하자”며 협의 중이다.

막대한 투자비가 드는 거대 과학기술 과업에 대한 수정은 수차례 일어날 수 있다. 사업 진행시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런 시행착오다. 문제는 그것이 국회와 여론에 휩쓸려 과학자 사회를 움츠려 들게 하는 경우 생긴다.

달 탐사는 우리가 해보지 못한 영역이다. 이 사업에 약 2000억원이 배정됐다. 전 재산을 새로 짓는 집에 투자했는데 겁이 안난다면 거짓말이다. 사활을 건 연구자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그런데 안팎에선 “왜 처음과 다르냐”, “왜 또 미뤘냐” 등 한마디씩 거든다. 중장기 대형 프로젝트인 달탐사의 속성을 무시한 채 오로지 공기 단축에 매몰된 한국적 속좁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우주로 쏘아올릴 NASA의 차세대 우주망원경 ‘제임스 웹’의 경우, 지금까지 10여차례 사업 변경과 발사 연기를 겪었다.


항우연의 한 책임급 연구자는 “계획에서 조금만 바뀌어도 국회 등 상급기관이 감사하겠다며 난도질을 하니까 연구원들이 겁을 먹어 일을 제대로 못한다”며 푸념했다. 문재인 정부는 선도적 연구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실패하면 연구자가 고스란히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이런데도 도전적 연구를 하라며 등 떠민다. 앞뒤가 안맞는 엉터리 정책이 우리 과학기술계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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