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카를 입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길에서 옷가지를 팔고 있다. 2019.10.22 /사진=AFP
2015년 동물권리 변호사 스티븐 와이즈가 이끄는 '넌휴먼 라이츠 프로젝트'(Nonhuman Rights Project·NhRP)는 장류 보호구역과 트레일러 주차장에 갇혀 사는 침팬지 2마리가 불법적으로 감금되어 있는지에 대한 법적 타당성을 물으며 '인신보호영장'을 발부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 논쟁에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도 뛰어들었다. FP는 "뉴욕 법원이 침팬지에게 인신보호영장을 발부할지 고민 중인 이때, 세계 많은 나라에선 여성은 법적제도에서 배제돼있고 가장 기본적인 권리도 무시된다"고 했다. 이중 아프가니스탄의 심각한 여성인권 실태에도 방점이 찍혀 소개됐다.
이 재단은 유엔 회원국 193개국을 대상으로 여성이 겪는 차별, 문화 관행, 성폭력, 성폭력 외 폭력, 인신매매, 의료 서비스 접근성 등 6가지 항목에 대해 여성 문제 전문가 55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는 낮은 여성인권으로 악명 높은 인도에 이은 순위였다. (☞"성폭행 싫으면 밤에 다니지 마"… '강간의 왕국' 오명 쓴 나라 [이재은의 그 나라, 인도 그리고 성차별 ①] 참고)
톰슨 로이터재단은 내전 중인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만연한 폭력에 시달리며 제때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아프가니스탄 남성들에 비해 병원을 가지 못하거나, 병원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 죽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부르카를 입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아프가니스탄 중서부의 주요도시 헤라트에서 길을 걷고 있다. 2019.10.02 /사진=AFP
루마는 아프간 남동부 바다흐샨 지역의 페이자바드에 있는 병원에서 남자 아이를 낳았다. 루마는 첩첩산중에 살기에 교통수단이 여의치 않아 병원에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며 겨우 병원을 찾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병원엔 의사, 조산원 등이 없었고, 수술장비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선 루마의 사례가 그리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대부분 산악지형으로, 병원까지 가는 것 자체가 어렵고 제대로 된 의료진과 의료시설도 없다. 따라서 출산 중 과다출혈 등 각종 원인으로 숨지는 산모가 잇따른다. 그나마 병원에 도착하더라도 병원 출입구, 병상, 환자대기실 등이 여남으로 구분돼있지 않은 경우 여성들이 제대로된 의료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실제 적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산모들이 병원에 가더라도 이런 부분이 구분돼있지 않아 병원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사망한다.
영아사망률도 매우 높다. UNDP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출산시 영아사망률은 1000명 중 129명, 5세 이하 아동사망률은 1000명중 191명이다. 감염된 칼로 탯줄을 마구 자르다 보니 패혈증으로 죽는 아이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이와 산모가 자꾸 죽는데도 출산은 줄잇는다. 2017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The World Factbook)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의 합계출산율은 5.12명으로 세계 224개국 중 10위였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6명이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한다.
이는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는 사회적 압력 때문이다. 무슬림 문화를 기반으로 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이가 곧 노동력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이 같은 문화 때문에 가족계획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여성들은 다산(多産)을 강요당한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28살 여성 무슬라마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벌써 아이를 14명이나 낳았다. 그중 3명만이 살아남았다"면서 "늘 아이를 더 낳으라는 강요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자꾸 죽자 남편은 더 많은 아이를 갖기 위해 새 부인을 맞아들였다"며 "계속된 출산으로 이제 내 몸은 형편없이 약해졌고 삶이 너무 힘겹다"고 덧붙였다.
28살밖에 되지 않은 여성이 14명의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던 건 아프가니스탄에 만연한 조혼문화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게 여성 건강에 큰 해를 끼친다는 건 잘 알려져있다.
2008년 미국 아시아재단의 보고서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지위'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조혼은 전체 결혼의 60~80%를 차지한다. 유니세프가 아프가니스탄 5개 주를 조사한 결과 조혼은 5년 사이 10%줄었지만, 관행은 여전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아는 나이 12살 전후로 이 같은 조혼을 강요당하며, 조혼은 대부분 가족간 또는 부족간 갈등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사이가 좋지 않은 가족에 자기 가족 여아를 보냄으로써 관계 개선을 노리는 것이다. 어떤 집안의 남자형제나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렀을 경우, 그 집 여아를 희생자의 가족에게 내어주는 관습(Khoon baha·쿤 바하)나 빚 또는 분쟁이 생겼을 때 여성을 사고파는 관습(Badd·바드)도 여기에 해당한다. 갈등해소용으로 보내진 여아는 일종의 노예처럼 비참한 생활을 하게된다. 출산 기계, 집안일 기계, 농사일 기계, 그리고 남편의 감정변화에 따른 폭력을 받아주는 기계 등으로 말이다.
부르카를 입은 여성이 아프가니스탄 중서부의 주요도시 헤라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2019.10.01 /사진=AFP
지난해도 아버지의 빚 대신 신부로 팔려 간 9세 여아 사미아가 35세 남편 손에 살해당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어린이지원단체의 하심 아마디는 "사미아는 7살 때 1만3500달러(한화 약 1500만원)에 팔려갔다. 사미아의 아버지가 빚을 청산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팔아넘겼다"라고 말했다. 사미아의 남편은 사미아를 폭행하다가 손으로 목을 졸라 교살한 혐의를 받고 도주했다.
여성이 '2등 시민'으로 간주되고, 여성의 삶은 가정에서 남편을 보조하고 아이를 낳으며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을 하는 게 책무라고만 여겨지는 아프가니스탄에선 당연히 여성 교육과 고용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10명 중 1.2명만이 글을 읽을 수 있으며, 2014년 기준 아프가니스탄 여성은 아프가니스탄 노동력의 16.1%만을 차지했다.
어린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카펫을 짜고 있다. 2019.06.12 /사진=AFP
그런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절망적인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인권도 수십년 전엔 이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선 여성들이 자유로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담배를 피우고, 대학에서 토론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왜 아프가니스탄 여성인권은 이처럼 바닥으로 떨어졌을까. 다음 편에선 아프가니스탄 여성인권 변천사를 짚어본다.
참고문헌
아프가니스탄의 젠더 현황과 크로스커팅 이슈로서의 전략개발, 국제개발협력연구, 송현주
탈레반 이후 시대의 아프가니스탄 여성 : 삶의 변화와 오늘날의 위치, 맥팔랜드, 로즈마리 스카인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지위, 미국 아시아재단 보고서
명예살인과 이슬람의 상관성 및 사례 분석, 중동연구, 임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