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운동에는 학연, 지연, 혈연을 넘어 각종 SNS와 화장실 낙서까지 총동원된다. 선관위 예산만 1억원이고, 후보당 억대의 선거자금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는 "노조위원장 선거가 흑색선전과 상호비방이 난무해 혼탁해지고 있다"며 경고까지 하고 나섰다.
국내 기업 중 최대 규모인 현대차 노조에는 대한민국이 녹아 있다. 가파른 성장과 민주화 과정을 거쳤고, 계파간 치열한 권력다툼도 있다. 늙어가는 조직 구성까지 인구 고령화를 겪는 한국의 모습을 닮았다.
현대차 노조원의 평균 연령은 47세, 근속 연수는 21년에 달한다. 이들은 연평균 8900만원을 번다. 국내 소득 상위 5% 수준이다. 노조에서 쓰는 조합비만 1년에 200억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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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베이비부머(1946~1965년생)로 현대차에 입사한 노동자들은 현대차 안에서 사회를 배웠다. 각종 계모임부터 축구, 등산 등 동호회, 입사동기회, 향우회, 동문회, 대의원선거구 등으로 끈끈히 뭉쳐있다. 개인의 능력만큼 학연, 지연과 각종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이들에게는 중요하다.
50대는 현대차 노조의 주류다. 현대차 노조원의 절반가량이 50대이다. 이들 중 일부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겪었고, 노조가 설립된 것도 그때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펼쳐진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 저지 투쟁을 거치면서 노동계의 중심에 섰다. 현대차 노사 협상은 자본과 노동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다. 친노동 환경을 조성하는데 현대차 노조의 역할이 매우 컸다.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현대차 노조지만 이제는 다르다. 소득이 높아졌고, 집단의 이익이 중요해지면서 ‘귀족노조’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올해 무파업 교섭을 끝낸 뒤 하부영 지부장이 "사회적 고립과 귀족노조 프레임을 없애는 단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정도다.
고령화와 차세대 자동차 전환은 현대차 노조의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2025년까지 은퇴자만 1만5800명에 이른다. 전 조합원의 30% 이상이 앞으로 5년 안에 회사를 떠나야 한다. 게다가 가솔린, 경유 등 기존 내연기관 차량을 급속히 대체하고 있는 전기차는 부품이 적고, 그만큼 조립인력도 덜 필요하다. 독일 폴크스바겐이 전기차 생산 증가에 맞춰 2023년까지 8000명 감원을 예고했다. 현대차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노조의 급격한 세력 축소가 예상되는 부문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대차 노조가 자동차산업의 중요 구성원으로서 변신을 꾀해야 할 때"라며 "실제로 노조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남이 기자
'이념에서 이익으로'…현대차 노조, 4개계파 선거격돌1987년 노조 설립부터 현장조직 활동…선거 때마다 계파 간 합종연횡, 명과 암 동시에
한국 노동계를 상징하는 현대차 노조의 집행부 선거가 시작됐다. 투표권을 가진 조합원만 5만명에 이르는 매머드급 노조다. 기본 예산만 연 90억원에 달하고, 별도의 전임자 임금 예산과 100억원 이상의 적립금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는 △안현호 △문용문 △이상수 △전규석(기호순) 등 4명의 후보가 지부장 입후보했다. 4명의 후보는 지난 18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선거 운동을 펼친다. 지난 22일에는 공장 라인까지 세우며 후보자별 영상 유세가 방영됐다.
지부장 임원을 뽑는 1차투표는 오는 28일이다. 결선투표까지 가면 다음달 4일 향후 2년간 현대차 노조를 이끌 지부장과 부지부장 등 주요 임원진이 결정된다.
지부장 선거 선거가 끝나면 각 사업부(공장) 대표와 대의원 선거도 진행된다. 현대차 근로자 A씨는 "현대차는 사실상 공장별로 운영된다"며 "각 공장을 대표하는 사업부 대표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각 후보군은 열띤 선거운동을 진행 중이다. 기호가 적힌 조끼를 입고 각 공장을 다니며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후보 비방 등 과열양상도 나타난다. 각종 SNS(소셜미디어)는 물론 화장실 벽 낙서까지 불법 선거의 감시대상이다.
노조 선관위는 공고를 통해 "불법 혼탁 선거 방지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자 한다"며 "특정 후보자의 사생활이나 가족관계를 들춰내 명예를 훼손시키는 행위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자리 찾아 울산으로…1987년 현대차 노조 설립
1967년 설립된 현대차는 1975년 ‘포니’를 내놓으며 80년대 급성장했다. 공장이 세워진 울산에는 일자리를 찾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거나 군대에서 전역한 사람들이 몰렸다. 1955~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취업할 시기와 맞물린다.
80년대 노동환경은 취약했다. 빠른 속도의 컨베이어벨트를 타야 했고, 근무시간도 고무줄이었다. 정문을 통과할 때는 머리카락이 길다고 경비원이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은 민주화운동과 함께 노동운동으로 번졌고, 현대차도 피할 수 없었다.
80년대 초부터 생겨난 독서 모임 등을 중심으로 1987년 노조가 설립됐다. 현장조직은 노조 설립 시기부터 견제세력으로 출발했다. 노조 결성을 주도했던 세력에서 여러 후보가 출마하면서 표가 갈렸고, 이전 노사협의회 노동자대표였던 이영복 노조위원장이 선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예상 밖의 선거결과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민주노동자실천협의회(민실협)’ 조직됐고, 이후 다양한 조직이 생겨났다. 외환위기는 현대차 노조를 더 강하게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리해고가 쉬워지면서 1998년 현대차는 1만여 명의 정리해고를 준비했고, 노조는 강하게 저항했다.
당시 대다수 기업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고, 현대차 노사 문제는 자본대 노동의 대결로 격화됐다. 결국 정리해고 277명, 무급휴직 1968명으로 결론이 났는데, 이 사건으로 현대차 노조가 회사와 대립적 관계를 갖게 됐다는 시각이 많다.
△"이념에서 이익으로" 노사대립의 시대…4개 계파가 집행부 장악
2000년대 들어 노조는 회사에 고용안정과 복지 등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계급, 이념보다는 집단 이익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민주화가 되면서 한국 민주화 운동세력이 방향을 잃기 시작한 시점과 비슷하다.
공장별, 라인별로 이익이 갈리면서 현장조직 내부에서도 갈등과 반목이 지속됐고, 수많은 계파가 명멸했다. 지금도 현대차에는 10여 개의 현장조직이 활동 중이다. 특히 집행부 선거는 현장조직이 갈라지고 연대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8대 지부장 선거에 후보를 낸 4개 조직이 주요 조직으로 꼽히는데,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민투위) △금속노동자민주연대(금속연대) △민주현장투쟁위원회(민주현장) △현장노동자 등이다.
앞의 세 조직은 민주노총 내부 계파인 현장파(민투위), 중앙파(금속연대), 국민파(민주현장)의 영향을 받았고, 현장노동자는 실리주의 노선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큰 의미는 사라졌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는 현대차를 분석한 저서 ‘가보지 않은 길’에서 "과거에는 PD(민중민주), NL(민족민주)계 간 이념 경쟁이었지만 이념의 설득력이 약화된 최근에는 조합원의 이익극대화 전략에 매진한다"고 지적했다.
노조 집행권을 둘러싼 현장조직 간 경쟁은 노사대립으로 이어졌다. 공약을 회사로부터 얻어내야 해서다. 얻어내지 못하면 다른 현장조직의 거센 비판을 받아야했다. 회사와 교섭이 끝나기가 무섭게 각 현장조직은 교섭에 반대하는 대자보를 붙이기도 한다.
현대차 근로자 B씨는 "집행부와 다른 현장조직도 교섭위원으로 회사와 협상에 나설 때가 많은데, 함께 잠정합의안에 합의해놓고 교섭장에서 나오면 바로 반대를 외친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보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성장과 함께 연 소득 9000만원의 고소득자가 된 현대차 조합원의 투쟁은 대중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귀족노조’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노조 내부의 비리 사건도 이런 시선에 한몫했다.
오명에 가려져 있지만 현대차 노조가 한국의 근로환경을 바꾸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 2001년 2462시간에 달했던 현대차 생산직의 노동시간은 2016년 1830시간으로 떨어졌다. 주간 연속 2교대 등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영향인데, 이는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줬다.
김남이 기자
젊은 산업역군에서 어느덧 고인물…정년이 최대 화두2025년까지 정년퇴직자만 1만5800명…신입 없이 늙어가는 조직, 50대가 조직의 절반
현대차는 최근 몇 년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을 빼면 사실상 생산직 신입을 거의 뽑지 않았다. 그만큼 현대차 노조도 늙어갔다.
현대차 조합원의 평균 연봉이 8900만원으로 높은 것도 평균 근속 연수가 21년으로 길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 몇 년간 퇴직 인원이 많아지면서 조합원의 평균 연봉은 떨어지고 있다.
새 피가 수혈되지 않는 점은 현대차 노조의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힌다. 20년 전 함께 투쟁했던 동지가 지금도 똑같다. 주름살만 더 깊게 패였다.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노조 내부에서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한탄이 나온다.
현 지부장인 하부영 지부장의 경우 1960년생으로 1977년 현대차에 입사했다. 1987년 노조를 세울 때부터 대의원 등으로 적극 활동했던 인물이다. 2006년 산별노조 전환 이후에도 2번이나 지부장 후보로 나왔다.
현재 후보자로 나온 인물도 모두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노조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과거 지부장을 역임한 후보도 있다. 20년 넘게 조직 활동한 인물이 많다.
조직이 늙은 만큼 이들의 핵심공약에는 정년연장과 고용안정이 들어가 있다. 2020~2025년간 조합원의 30% 수준인 1만5800명 이상이 정년퇴직을 할 정도로 조직이 나이가 들었다. 표심 공략을 할 대표적인 연령층이다.
현장조직 간 이념색이 옅어지다보니 최근엔 동문회, 향우회 등이 더 중요해졌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 현장조직에서 적극 활동하는 ‘활동가’는 수백명 정도로 파악된다. 현대차 근로자 A씨는 “나이를 비슷하게 먹다보니 부모상, 자식 결혼 등 챙겨야 할 경조사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남이 기자
밥그릇 싸움 멈춰라…"노조도 변해야 산다"전기차 등 생산 확대로 글로벌車 감원 현실화-강경투쟁 노조 대비없이 일자리 잃을 수도
현대자동차 노사 외부자문위원들이 지난달 미래 고용 문제와 관련해 내놓은 제언 중 일부다. 친환경차 확산, 자율주행차 상용화 등 자동차 산업이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노조의 '일자리 공포'도 커지고 있다. 생산공정 자동화 등으로 인력 감축이 불가피해지면서 강경노선의 노조도 변해야 산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주요 자동차 기업들은 대규모 인력 감축을 예고하고 나섰다. 내연기관차 중심인 생산 조직을 줄이고 전기차 등의 연구개발(R&D) 인력을 늘리기 위해서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속한 다임러그룹은 독일 관리직 10%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1100여 명을 줄이기로 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도 미국 내 3개 공장 등 전 세계 7개 공장을 폐쇄하고 1만4000명 가량의 일자리를 감축할 계획이다. 지난 6월 유럽에서 5곳의 공장 폐쇄를 결정한 포드도 전체적으로 1만2000명 가량 줄이기로 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완성차 판매량이 감소하는 데다 미래 자동차로의 구조 변화에 자동차 업계가 감원 압박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올해 완성차 5개사 생산 규모가 400만 대 이하로 떨어져 10년 만에 연 400만 대 생산체제가 붕괴될 전망이다.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직원들은 일감을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조들은 노사 협상도 갈등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결국 대립적 노사관계 개선이 시급하다. 현대차 노사는 이미 '생산절벽'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이에 외부자문위원들은 생산기술 변화에 적응해 노사가 협력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 입장에서 생산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감축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결국 대비 없이 투쟁만 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노조가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인식하고 사측과 함께 연구에 나선 것만으로도 크게 나아간 것"이라면서 "대립적 노사 문화가 아닌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해 노사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도 "자동차 회사 노조가 옛날만큼 이익을 두고 싸우기 어려운 상황이 왔다"며 "노조원들도 자동차산업에 중요 구성원으로서 기업도 살리고 자동차 산업도 살리는 역할을 위해 변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성훈 기자
상경투쟁 버스비만 '억대'…현대차 노조 '파업 예산'한해 100억 넘는 예산 만지는 현대차 노조…올해 쟁의대책비 예산 '32억'
현대차 노조는 두 종류의 조합비를 걷는다. '조합비1'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기준에 맞췄다. 기본급의 1% 정도를 걷어 상급 조직인 금속노조로 보낸다.
금속노조는 이 중에서 54%를 지부 교부금 명목으로 다시 내려보낸다. 이 금액이 일반회계로 잡히는데, 올해 규모는 93억원 정도다. 이와 함께 적립금 중심의 특별회계가 있다. 현대차 노조는 적립금만 100억원 이상 쌓아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합비2'는 별도회계다. 조합비1의 60~80%를 걷는다. 무급인 노조 전임자 월급을 보장해주는 재원으로 보통 쓰인다. 현대차 노사가 합의한 노조 전임자 수는 96명이다.
별도회계에는 노조 활동의 안전망이 되는 '신분보장기금'도 포함된다. 신분보장기금은 조합원이 노조 활동을 하다가 해고 등 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경우 일정 금액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되는 기금이다.
조합원이 많고, 걷히는 조합비도 많다 보니 교섭 쟁의(파업)에만 수십억이 경비로 쓰인다. 올해는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하지 않았지만 책정된 쟁의대책비 예산안으로 그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노조는 올해 단체교섭이 결렬되자 파업에 대비한 '쟁의대책비'로 적립금에서 31억원을 전용했다. 지난해에도 25억원에 가까운 돈이 쟁의대책비로 배정됐다.
올해 예산안을 보면 쟁의집회 경비가 10억6700만원으로 가장 많이 책정됐다. 여기에는 머리띠, 모자, 우의 등 쟁의집회 소모품 구매를 위한 3억800만원이 포함됐다. 2만8000명 조합원 1인당 1만1000원의 금액이 책정됐다.
모자와 같은 소모품 구매를 두고 내부 비판도 나왔다. 노조는 올해 쟁의기간 중 조합원에게 줄 골프 브랜드 모자를 구매했다. 한 조합원은 "모자 구매를 추진할 당시 업체가 제대로 선정됐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며 "쟁의대책비를 명분 있게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경투쟁비에도 7억원이 책정됐다. 3000명이 서울 당일 집회로 2번, 1박2일 상경집회 1번을 하는데 버스대여비만 총 2억7000만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밖에 포스터 배포 등 쟁의홍보비에 1억2044만원이 배정됐다.
이처럼 100억원이 넘는 조합비를 운영하는 만큼 노조 내부의 ‘돈 관리’도 엄격하다. 규칙에 따라 분기마다 감사가 진행되고, 노조의 금액 사용 보고도 철저히 이뤄진다. 지난 7대 집행부 노조 관계자는 “집행부 인수인계를 위해 지난달 이틀간 회계 관련 사업보고를 진행하는 등 투명한 예산집행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이건희·김남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