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선거 '뜨거운 열기'…70대 유권자 "홍콩의 미래를 위해"

뉴스1 제공 2019.11.2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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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소강 상태 …거리 곳곳엔 "광복홍콩 시대혁명"
친중파 유권자 "현 정부 완벽…시위대 제멋대로"

홍콩 구의원 선거일인 24일 오전 홍콩 코즈웨이 베이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다. 2019.11.24/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홍콩 구의원 선거일인 24일 오전 홍콩 코즈웨이 베이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다. 2019.11.24/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홍콩=뉴스1) 한상희 기자 = 5개월째 이어지는 홍콩 시위의 분수령이 될 홍콩 구의회 선거가 24일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홍콩 18개구 모든 투표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유권자들에 긴 줄이 늘어섰다. 우려와는 달리 투표소 인근엔 총을 든 무장 경찰이 눈에 띠지 않았다.

홍콩은 이날 18개 선거구에서 당연직 구의원 27명을 제외한 452명의 민선 구의원을 뽑는다. 610개의 일반 투표소와 전용 투표소 23곳 등에서 일제히 투표가 진행 중이다.



구의원 선거는 이날 오전 7시30분(현지시간) 시작돼 밤 10시30분까지 실시된다.

높은 투표 열기를 반영하 듯 이날 투표 시작 시간 약 1시간 전인 오전 6시30분 무렵부터 유권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7시10분쯤엔 약 20명이 줄을 섰고, 8시가 넘자 줄은 약 100m까지 늘어났다.



시위 현장에서 정부에 분노를 드러낸 건 대부분 10대 20대 초반 젊은층이었지만, 이날 투표소에선 중장년층과 노년층 유권자가 눈에 많이 띄었다.

이날 7시45분쯤 홍콩섬 남부 끝 야리저우(애버딘 섬) 투표소에서 만난 한 40대 남성 유권자는 '왜 이렇게 일찍 나왔냐'는 질문에 "홍콩이 바른 길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 홍콩는 정부와 경찰 모두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며 "그들은 시위대의 목소리를 억압하기만 한다"고 비판했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선 '시위대가 너무 나갔다'는 불만도 있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그랬더니 "많은 도로들이 파괴됐고 나 역시 출퇴근길 많은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건 경제가 아니라 인권에 대한 문제다. 이번 선거로 지난 4~5개월 간 정부의 행동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50대 유권자는 "7시쯤 집에서 나와서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도착해보니 줄이 엄청 긴 것을 보니 내가 늦은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한 뒤,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라이몬디대 투표소에서 만난 한 70대 노부부는 "더 좋은 홍콩을 만들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투표하러 나왔다"며 "이번 투표는 홍콩의 미래에 관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홍콩 구의원 선거일인 24일 오후 우산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이 홍콩 사우스 호라이즌 커뮤티니센터에 마련된 투표소 인근에서 선거 유세 지원을 하고 있다. 2019.11.24/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홍콩 구의원 선거일인 24일 오후 우산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이 홍콩 사우스 호라이즌 커뮤티니센터에 마련된 투표소 인근에서 선거 유세 지원을 하고 있다. 2019.11.24/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이 투표소에선 2014년 '우산혁명'의 주역이자 최근 홍콩 정부로부터 출마 금지 당한 조슈아 웡(23)도 투표권을 행사했다. 그는 이날 선거를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한 걸음"이라 정의하고, 유권자들에게 "우리가 여전히 선거 제도를 가지고 있을 때 투표하자"며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것을 보여줄 시간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짧은 기자회견 후 일반 유권자들과 똑같이 줄을 서서 한 표를 던졌다. 취재진이 몰려들자 유권자들에게 '투표를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며 여러 차례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계속된 시위에 궁지에 몰린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날 오전 8시30분쯤 센트럴 인근 미드레벨 라이몬디 대학에 설치된 투표소 내 별도의 장소에서 투표만한 후 빠르게 빠져나갔다. 이날 이 투표소 주변에는 총에 방패를 든 폭동 진압 경찰 수십 명이 주위를 빙 둘러쌌지만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 빚어지진 않았다.

많은 요소들이 야권인 민주파 우세를 가리키고 있지만 '샤이 친중파'도 이번 선거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날 라이몬디대 투표소에 줄을 서 있던 한 60대 유권자는 현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완벽하다"(perfect)고 평했다. 그는 "(지금도 좋지만) 더 좋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서둘러 나왔다"며 "시위대는 (제멋대로) 자신이 원하는 걸 한다"며 시위대를 향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산 꼭대기에 위치한 이 투표소 인근 아파트의 시세는 한화 10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시위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완벽하다는 유권자 발언에서 현 정부와 중국에 대한 홍콩 기득권층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날 야권인 민주파 후보들은 직접 유세 현장에 나와 시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반면, 친중파인 건제파 후보들은 조용하게 광고지만 나눠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구의원은 본래 정치색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미드레벨 인근에서 마주친 한 민주당 후보는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과 함께'(fight for freedom stand with Hong Kong)라는 시위 구호를 외치며 "저는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민주당 후보입니다"라고 젊은층 표심을 겨냥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홍콩의 거리에 경찰을 조롱하는 낙서가 적혀 있다. popo는 경찰을 의미한다. © AFP=뉴스1홍콩의 거리에 경찰을 조롱하는 낙서가 적혀 있다. popo는 경찰을 의미한다. © AFP=뉴스1
이번 주 내내 시위가 소강 상태를 보여 언뜻 평범한 선거일처럼 보이지만 투표소로 향하는 길에서 최근의 혼란을 엿볼 수 있다. 투표소 인근에는 '경찰을 죽이자' '광복홍콩 시대혁명' 등이 검은 스프레이로 적혀 있고 보행자 도로의 벽돌도 일부 부서져 있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시위대의 온라인 토론방인 'LIHKG'에는 친중파·친정부 세력이 이튿날 새벽 시위를 벌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홍콩 반정부 시위대 측은 정부에 선거를 연기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지난 19일 이후 시위를 잠시 쉬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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