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on’, ‘(여자)아이들’이란 이름

스큅(K-POP 칼럼니스트) ize 기자 2019.11.2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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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on’, ‘(여자)아이들’이란 이름


그들은 ‘아이들’이라 불린다. ‘아이들’은 개개인을 뜻하는 ‘I’와 복수를 뜻하는 접미사 ‘들’을 합친 합성어로 ‘개성있는 개인들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회사에서 설정했던 뜻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소연이 제안했다는 이 뜻은 (여자)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자리한다. 데뷔앨범 'I am' 쇼케이스에서 소연은 앨범의 컨셉을 묻는 질문에 ‘개성’이라는 답을 내놓았는데, 일견 허황되게 들릴 수 있는 대답은 곡을 쓰는 단계에서부터 멤버들의 음색과 이미지를 고려하는 소연의 섬세한 프로듀싱 하에 설득력을 얻는다. 등장과 동시에 멤버들의 개성을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던 ‘라타타’를 시작으로 ‘한', 'Señorita', 'Uh-Oh'에 이르기까지 (여자)아이들은 ’개성이 곧 컨셉‘이라는 호기로운 답변을 착실하게 이행해왔다. (여자)아이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어떠한 컨셉이나 이미지가 아닌 그들의 존재 그 자체다. “아직 자랑할 게 많아 첫 번째 We’re 아이들”이라는 ‘퀸덤’ 오프닝 퍼포먼스의 랩이 시사하듯이.

Mnet ’퀸덤’에서 공개한 곡 ‘Lion’ 역시 그 연장선상 위에 놓이며 멤버들 한 명 한 명을 효과적으로 조명한다. 이제껏 가장 가는 선을 보여주었던 막내 슈화가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어린 사자에게 왕관을 씌우는' 곡의 테마를 단적으로 형상화한 뒤, 독보적인 음색의 민니와 풍부한 표현력의 수진이 이목을 집중시키고, 타격감 좋은 미연과 우기의 보컬이 후렴을 수놓으면, 소연의 사나운 랩이 절정을 터뜨린다. 그리고 이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I'm a queen like a lion"이라는 선포의 문구를 내뱉고 스스로에게 왕관을 수여한다. 이렇게 개개인의 위용을 드러내며 스스로를 왕위에 올리는 ‘Lion’의 서사는 ‘캣파이트’를 의도했던 경연 프로그램, ‘퀸덤’의 장 위에서 “강인한 울음”이 된다. ‘Lion’은 생존을 위해 끝없는 증명을 요구하는 서바이벌의 한가운데서 울려퍼지는 존재의 선언이다. 증명이 필요 없는, 부정할 수 없는 여왕의 공표는 프로그램의 의도를 무력화시킨다. ‘퀸덤’을 넘어 ‘프로듀스 101’과 ‘언프리티 랩스타 2’를 거치며 ‘서.낳.괴.(서바이벌이 낳은 괴물)’란 별명을 얻어낸 소연의 서사 속에서 이 전복의 메시지는 더욱 형형하게 빛난다. (실제로 소연은 ‘Lion'을 두고 처음으로 멤버들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영감을 받아서 쓴 곡이라고 밝힌 바 있다.)



‘Lion’은 “날 가둘 수 없어 아픔도”라는 결의로 시작해 “길들일 수 없어 사랑도”라는 포고로 끝난다. 결국 ‘Lion’의 포효가 무너뜨리는 것은 치열한 생존 경쟁의 링을 넘어 걸그룹을 옥죄는 “편견이란 답답한 우리”다. 개별성의 과시, 아티스트십의 인정은 대개 남성 아이돌에게 허락되던 것이므로. ‘Lion’ 뮤직비디오의 후반부 흐름은 이 성별 위계를 뒤흔든다. 제단 위에 서있던 (여자)아이들과 계단 위에 서있던 숫사자의 위치는 뒤바뀌며, (여자)아이들을 가둬두던 프레임과 숫사자의 초상에는 불이 붙는다. 초상 앞에 선 수진의 타투 “Self love is the best love”가 증명하듯 이것은 자존에 근거한 해방이다. 종종 ‘컨셉’이란 명목으로 걸그룹에게만 부과되던 편협한 틀은 개별 주체의 선언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질 뿐이다.

그들은 ‘(여자)아이들’이라 쓰인다. 멤버들도 연유를 모른다는 독특한 표기법은 그 진의를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이 그룹의 입지를 잘 표상한다. ‘소녀' 혹은 ‘걸크러쉬’라는 납작한 키워드로 걸그룹을 손쉽게 규정하기 원하는 세간의 시선 속에서 (여자)아이들은 '여자'라는 접두사에 괄호를 씌우고 ‘아이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한 면에서 ‘Lion’은 곧 그들의 이름에 관한 노래다. '뻔한 리듬을 망치는', 누구도 길들일 수 없는 어린 사자. 그들은 바로 ‘(여자)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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