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일 좀 해라!" 52시간제 보완입법 촉구한 정부의 시위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2019.11.1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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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관계장관회의인 '녹실회의' 이례적 공개…1년 가까이 지지부진한 국회 법안처리 우회 비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정부가 비공개가 관례이던 경제현안조정 관계장관회의(녹실회의)를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주 52시간제 보완대책을 둘러싼 산업현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지만, 지난 4월부터 국회에서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탄력근로제 개정안 처리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나온다.

녹실회의는 주요 경제정책의 방향을 경제부총리와 관계부처 장관이 논의하는 회의다. 공식 경제장관회의와 달리 열리는 장소와 시간 모두 비공개가 원칙이다. 1970년대 이 회의를 진행한 서울 세종로 경제기획원 소회의실의 인테리어가 모두 녹색이라 녹실회의로 불린다.



기획재정부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주재한 녹실회의 내용을 공개했다. 이날 회의에선 50~299인 기업의 주 52시간제 확대적용에 대한 정부의 보완방안이 논의됐다. 홍 부총리 외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 등이 참석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탄력근로제 등 국회 입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국회 입법 과정과 연계해 52시간제 계도기간 부여 등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보완방안 등을 중점 논의했다.



녹실회의 결과에 대한 기재부의 설명은 단촐했다. 이날 오전 11시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별도 브리핑을 통해 녹실회의에서 결정된 52시간제 보완 대책인 △충분한 계도기간 부여 △일시적 업무량 급증시 특별연장근로 허용 △구인난 기업 외국인 고용한도 20% 상향 등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정부가 주무부처 장관의 브리핑이 예정됐음에도 이례적으로 녹실회의를 진행한 사실을 공개한 것은 그동안 52시간제 보완입법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국회에 대한 시위의 성격이 강하다. 52시간제 도입에 맞춰 산업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노사 합의, 정부 입법안 등이 나왔지만 국회에서의 처리는 1년 가까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서 산업현장 연착륙을 위해 6개월간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뒀다. 계도기간 중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포함한 개편 논의를 끝내 현장 혼란을 줄이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탄력근로제 논의가 차일피일 미뤄지며 계도기간은 올해 한차례 더 연장됐다. 이 역시 올해 3월까지 경사노위에서 노사합의를 끝내고 국회 입법까지 이어가겠다는 속셈이었다.


경사노위에서는 노사간 논의를 통해 지난 3월 △단위기간 3개월→6개월 확대 △근로자 임금감소분 보전조치 △근로자 건강권 침해 방지장치 설정 등을 담은 탄력근로제 합의안을 만들고 국회로 공을 넘겼다.

하지만 국회에선 선거제 개편,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 등에 대한 여야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탄력근로제 개편을 반영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논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계도기간을 재연장하면서 "현행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짧아 어려움을 겪는 기업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까지 처벌을 유예한다"는 단서를 달아놓은 상태다. 이에 따라 탄력근로제 도입·도입 예정 사업장에 대한 계도기간은 사실상 법안 통과 때까지 무기한 연장되는 셈이지만, 법안 통과 전까지 산업현장의 혼란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녹실회의 공개는 탄력근로제 개정안 등이 국회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정부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국회가 끝내 직무유기를 이어갈 경우 정부가 자체 대책을 내놓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미 지난주에도 국회 환노위에서 탄력근로제 합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회 입법이 지연되면서 시장과 기업 중심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녹실회의 공개 배경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회에서 조속히 입법이 진행되길 바라는 행정부의 희망사항과 함께 정부 차원에서 나름대로 보완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불안감·불확실성 해소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추후 국회의 입법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요할 경우 정부 차원의 보완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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