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답게 행동해야지"에 지친 남성들

머니투데이 오진영 인턴, 이재은 기자 2019.1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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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9일 '남성의 날'…'남성에게 휴식을 주자'는 취지로 1991년 미국 미주리 대학 토마스 오스터 교수가 제안

/사진=픽사베이/사진=픽사베이


#분홍색을 좋아하는 남성 A씨는 한번도 본인의 취향을 입 밖에 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남자가 무슨 분홍색이냐'라는 말을 들은 탓이다. 그는 '남자답게' '남자가 무슨' 등의 말이 지긋지긋하다.

19일 '국제 남성의 날'(International Men's Day)을 맞아 성적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여성에게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피해가 된다는 점을 되새기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은 1991년 2월 미국 미주리 대학교의 토마스 오스터(Thomas Oaster)교수가 '남성에게 휴식을 주자'는 취지로 제시한 날로, 세계 70여개 국가에서 이를 기념한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전국의 만 19~39세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남성의 약 40% 정도가 (우리 사회는) 남성에게 불평등한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지 않은 남성들은 그 이유로 남성을 향해 '남성은 ~해야한다'는 시선을 꼽는다. 우리 사회 여성을 향해 '여성은 ~해야한다'는 시선이 심각하듯, 남성을 향해서도 성별 고정관념 문제가 드리워져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최근 여성에겐 성적 편견이 가득한 말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남성을 향해서는 꾸준히 성적 편견이 가득한 말이 행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이모씨(32)는 "남성들만 다니는 회사에다가 지방에 위치해서 그런지, 회사에서 선배들이 회식 후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을 여전히 가곤 한다"며 입을 열었다. 이씨는 "한번 그런 곳에 가기 싫다고 했다가, '남자 구실 못하는 것 아니냐'며 온갖 핀잔을 들어야했다"며 "이후엔 싫어도 싫지 않은 척 억지로 따라간다"고 말했다. 그는 "남성은 무조건 그런 곳을 좋아한다는 인식 때문에 회사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눈물이 많은 남성들도 차별적 시선에 시달리곤 한다. 공무원 문모씨(28)는 남성은 울지 않아야한다는 편견이 싫다고 말했다. 그는 "슬픈 영화를 보거나, 일상이 힘들 때 눈물이 나오곤 하는데, 주변에서 '남자가 또 눈물이냐'며 놀려대서 이젠 울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눈물에 왜 성별 문제가 등장하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성적 편견이나 고정관념 때문에 가사 노동을 부부가 함께 하는 이들은 남성들 사이에서 '패배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교사 B씨는 "함께 교사인 아내가 늦게 퇴근할 때면 내가 저녁을 차리곤 했는데, 주변에서 '아내에게 잡혀 산다'며 조롱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식사를 차리는 것 자체는 아무런 스트레스가 아닌데, 주변의 시선들이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남성들을 둘러싼 성적 고정관념의 틀은 '맨박스'(Man box)로 불린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남자다움'은 사회를 양성 불평등으로 이끌어 가는 틀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토니 포터(Tony Porter)는 '맨박스'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맨박스는 '남성이면 이 정도쯤은 해야지' '남자답지 못하게 왜그래'등 사회적 편견으로 남성의 행동을 제약하게 된다. 그는 '맨박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여성은 남성의 노력을 신뢰할 때 비로소 불평등 격차가 해소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학 교수는 "여성들의 성 역할 역시 남녀 프레임을 강요하던 이전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인다"며 "남성들 역시 '맨박스'에 얽매이는 건 옳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정형화된 이분법적 사고로 구분 짓는 건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서 "맨박스 틀을 넘어 유연한 사고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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