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중 무역분쟁과 글로벌 경기침체로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LG전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은 모두를 ‘깜놀’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40대 ‘젊은’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그룹 내 기류가 바뀐 것을 그 배경으로 꼽는다. 지난 9월 구 회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주재한 LG 최고경영진 ‘사장단 워크숍’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사업 방식과 체질을 철저하게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하며 그룹 차원의 전사적인 변화를 강조했다.
LG그룹의 달라진 모습은 9월 초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된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9' 현장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LG전자가 삼성전자의 QLED 8K TV가 화질 선명도(CM)에서 국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화질 전쟁의 불을 당긴 것이다. LG전자는 자사의 나노셀 8K TV와 삼성전자 QLED 8K TV를 비교 시연하면서 "나노셀 8K TV 화질 선명도가 90%인데, 삼성은 12%에 불과하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일련의 LG그룹의 행보는 분명히 예전과 달리 전투적으로 비춰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달라진 기류는 그룹 내부에서도 관측된다. 예컨대 LG전자 임원들은 올해 주가가 크게 하락할 때 자사주 매입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섰다. 올해 LG전자 임원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역대 최대이며 또한 국내 상장기업 통틀어 LG전자 임원들 만큼 자사주 매입을 많이 한 곳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LG전자의 올해 역대 최대 매출 실적 발표에 이어 임원들의 기록적인 자사주 매입 소식은 사람들을 또 한 번 '깜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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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말 구 회장 취임 이후 그해 연말까지 자사주를 매입한 임원은 고작 3명 뿐이었고 매수량도 1721주에 불과했지만, 올해 들어선 1,2,7월을 제외하고 전 달에 걸쳐 LG전자 임원들이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특히 각 사업본부를 책임지는 사업본부장들이 대거 나서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모습도 특별히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들은 송대현 사장(H&A 사업본부장), 권봉석 사장(MC, HE 사업본부장), 권순황 사장(BS 사업본부장), 홍순국 사장(소재/생산기술원장), 박일평 사장(CTO, SW센터장) 등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금까지 총 26명의 LG전자 임원들이 총 3만2819주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한 임원은 올해에만 무려 아홉 번에 걸쳐 자사주를 매입하기도 했다. 26명 임원들의 총 매수가액은 21억1309만원으로 평균 매수단가는 6만4386원이다.
올해 LG전자 임원들의 자사주 매입은 8월에 집중됐는데 주가가 올해 최저가로 떨어졌던 때였다. 3분기 실적이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좋은데도 주가가 6만원선 밑으로 떨어지는 등 약세를 보이자 8월에만 15명의 임원들이 총 2만504주, 12억5699만원 어치를 사들였다. 임원들은 주가가 실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떨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자들은 기업의 중요 정보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처지에 서있다. 이에 반해 최고경영진 등 내부자들은 기업의 실적 등 중요 정보를 훨씬 많이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 같은 정보의 비대칭(Informational asymmetry) 상황에서 임원 등 내부자가 자사주를 대량 매입하는 행위는 외부자에게 기업의 실적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재무학에서는 이를 ‘신호이론’(Signaling theory)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LG전자 임원들의 올해 기록적인 자사주 매입 행위는 회사 실적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3분기 실적이 '매출 역대 최대, 영업이익 10년 만의 최대'로 나오면서 LG전자 임원들의 기록적인 자사주 매입 행위는 거짓 신호가 아닌 진실로 밝혀졌다. LG전자 주가도 8월 저점 이후 지금까지 20.5%(15일 종가 기준) 반등했다.
그러다 2017년부터 임원들이 자사주 매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2018년엔 임원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가 2만9655주로 늘어났고 올해엔 지금까지 3만2819주에 달하고 있다. 반면 임원의 자사주 매도는 지난해 단 두 건(740주), 올해엔 단 한 건(137주)에 그쳤다. 2017년엔 임원의 자사주 매도 건수가 총 11건(총 7549주)이나 달했다.
현재 LG전자 최고경영진의 자사주 매입 내역을 살펴보면, 총 9명의 최고 임원 가운데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최고 임원 전원이 2017년부터 자사주 매입에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조성진 부회장(CEO)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연속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다. 총 매수 규모는 1만4500주, 11억340만원이다. 권봉석 사장(MC, HE 사업본부장), 권순황 사장(BS 사업본부장), 홍순국 사장(소재/생산기술원장)은 2017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으로 자사주를 매입해오고 있는데, 매수량은 각각 9562주, 2790주, 4726주다. 권봉석 사장은 조성진 부회장 다음으로 자사주 매입 규모가 많다.
LG전자 임원들의 자사주 매입 손익계산서(15일 종가 7만500원 기준)를 작성해보면, 2017년과 2018년 자사주 매입분은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나 2019년 자사주 매입분은 높은 평가이익을 보이고 있다. 임원의 자사주 매입 평균 매수단가는 올해는 6만4386원이나 지난해엔 10만1735원으로 매우 높다. 올해 8월 이후에 자사주를 매입한 임원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두 큰 폭의 평가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LG전자 최고경영진 가운데 자사주 매입으로 가장 높은 평가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임원은 박일평 사장(CTO, SW센터장)으로 2019년 1000주, 6010만원 어치를 매수해 15일 종가 기준으로 17.30%의 평가이익을 보고 있다. 반대로 가장 큰 평가손실률을 기록 중인 임원은 정도현 사장(CFO)으로 2018년 900주, 9860만원 어치를 매수해 현재 -35.65%의 손실을 보고 있다.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LG그룹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LG전자가 올해 역대 최대 매출 실적을 내고 LG전자 임원들이 역대 최대 규모로 자사주 매입 행보를 보이는 것도 달라진 모습 중의 하나다. 여기서 LG전자 임원들의 기록적인 자사주 매입이 올해 반짝 실적 개선에 국한되지 않고 미래 기업 이익 증대까지 암시하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을지는 올해 4분기와 내년 실적을 지켜본 후 판단내릴 수 있을 터이다. 향후 실적을 지켜보면서 LG전자가 정말로 달라졌는지 확인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