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대선 부정 논란 속에 물러난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망명지인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에 도착해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장관의 환대를 받고 있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92년 12월, 부산의 한 초원복국집에서 이뤄지던 대화는 전국민이 아는 명대사가 됐습니다. 현직 정부기관장들이 여당 대통령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자는 대화가 반대파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것인데요. 이 발언은 이후 지역주의 또는 지역주의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지난 10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대선 부정선거 의혹으로 사퇴했습니다.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그는 멕시코 정부에 망명을 요청했고, 멕시코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이어 쿠바, 아르헨티나 지도자들도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두고 "쿠데타의 희생양"이라며 지지를 표했습니다.
'핑크 타이드'가 뭐길래?… 1990년대 흥한 좌파들의 연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진=AFP
2006년 당선돼 무려 14년 동안 집권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볼리비아의 최초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 역시 좌파 성향인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당'(MAS)당 소속이었습니다. 남미 좌파 혁명의 상징적 인물인 체 게바라를 동경하고 유사한 정책을 펼쳐 '볼리비아의 체 게바라'라고 불렸죠. 2006년 선거 당시에는 체 게바라의 딸이 공개 지지 선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모랄레스를 지지한다고 밝힌 베네수엘라, 쿠바, 아르헨티나 지도자들 역시 모두 좌파 성향입니다. 결국 이들이 '우리'가 된 배경에는 '좌파'라는 이념이 있었던 셈이죠.
우고 차베스 사망 이후… 몰락길 걷는 핑크 타이드
사임 이후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사진=AFP
2015년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우파 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그해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선출되고, 지난해 3월 칠레에서 억만장자 출신 세바스티안 피녜라, 같은 해 10월 브라질에서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당선되죠. 베네수엘라에선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부채 위기로 민심을 잃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며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를 맞았습니다.
중남미 우파 정권들은 모랄레스 대통령 사퇴를 두고도 환영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콜롬비아와 페루는 성명을 통해 새 선거를 합법적으로 치를 것을 촉구했고,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심지어 모랄레스의 몰락을 반긴다는 입장까지 밝혔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핑크 타이드의 부활?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지지자가 마두로 대통령의 전임자인 휴고 차베스가 그려진 국기를 들고 있다. /사진=AFP
친미 성향의 우파 정권들 역시 연대를 꾀하는 조짐을 보여 눈길을 끕니다. 14일 볼리비아 임시정부는 베네수엘라 야당 대표이자 국회의장인 후안 과이도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볼리비아 임시대통령을 자처한 자니네 아녜스와 과이도 모두 우파 정당 소속이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에 맞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두로 대통령은 앞서 말했듯 모랄레스와의 연대를 표명한 인물입니다.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는 과연 부활을 꾀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역사 속에 스러지게 될까요? 부패와 극심한 빈부차, 경제 불황으로 신음하고 있는 중남미. 언제쯤이면 좌파든 우파든 집권당의 성향과 상관없이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할 만한 정권이 자리잡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