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에게’, 김희애가 또 잘한다

김리은, 임현경, 김현민 ize 기자 2019.11.14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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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에게’, 김희애가 또 잘한다


‘윤희에게’ 보세

김희애, 김소혜, 성유빈, 나카무라 유코
김리은
: 고단하고 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던 윤희(김희애)의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우연히 편지를 먼저 발견한 딸 새봄(김소혜)은 이를 숨긴 채 윤희에게 고등학교 졸업 기념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모녀는 편지가 날아온 타지로 함께 떠나고, 윤희는 눈이 가득한 그곳에서 애써 지웠던 첫사랑의 기억을 되새긴다. 시린 온도 속에서도 포근하게 화면을 채우는 눈은 세상으로부터 차갑게 외면받았던, 그러나 그만큼 서로에게는 더욱 절실한 따뜻함이었을 사랑의 메타포다. 영화는 사랑을 특정한 대사나 사건, 혹은 격정적인 감정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끊겼던 인연이 다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느린 호흡으로 담아내면서, 겨울이 오면 눈이 오듯 자연스러운 사랑의 존재 그 자체에 집중한다. 대상화되지 않은 여성들과 무해한 남성 캐릭터들은 서사 속에 녹아들며 연대의 상징이 되고, 눈이 녹은 후 찾아오는 ‘새봄’처럼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특히 존재만으로도 표현 없는 윤희의 감정을 설득하는 김희애의 연기는 왜 그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어야만 했는지를 보여준다.

‘영하의 바람’ 보세
권한솔, 옥수분, 신동미, 박종환
임현경
: 12살 영하(권한솔)는 이혼 후 따로 살던 아빠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려 한다. 영하가 떠밀리듯 집을 나서는 와중에도 엄마는 은숙(신동미) 영하의 방에 묵기로 했다는 하숙객 영진(박종환)에게만 온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아빠는 영하가 찾아오기 전 행적을 감추고, 이삿짐과 함께 덩그러니 남겨진 영하는 쌀쌀한 바람을 맞는다. 영화는 영하라는 소녀의 시간을 3막으로 구성해 아이의 시선을 따라 삶의 불행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를 고찰한다. 가정에서 ‘최초의 부조리’를 겪은 아이는 상흔을 지닌 채, 묵인된 작고 얕은 폭력들이 시나브로 쌓여 만들어진 깊고 거대한 불행을 살아간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어른들의 말과 달리, 모든 걸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어른들은 아이의 의사를 묻지 않고, 위한다는 핑계로 잇속을 챙기고, 화목을 위시해 아이의 상처를 덮는다. 자극적이거나 원초적인 장면을 철저히 배제한 영화는 그들이 ‘하지 않은 일’로 이뤄진 세계를 가만히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생각하도록 한다.

‘좀비랜드: 더블탭’ 보세
우디 해럴슨, 제시 아이젠버그, 아비게일 브레스린, 엠마 스톤
김현민
: 좀비영화의 품격을 한 단계 올린 ‘좀비랜드’가 10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왔다. 1편의 이름값만큼이나 이젠 몸값이 훌쩍 높아진 배우들의 완전체 캐스팅이 반갑다. 좀비가 창궐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콜럼버스(제시 아이젠버그)는 여전히 자기만의 생존 수칙 속에서 굳건하게 살고 있지만, 떠도는 삶에 지친 그는 연인 위치타(엠마 스톤)와의 안정된 관계를 꿈꾼다. 이번 편의 핵심 갈등은 이제 성인이 된 리틀록(아비게일 브레슬린)의 변심이다. 그는 희한하지만 끈끈하게 엮인 이 유사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모험하고자 한다. 전편에서 잃어버린 아들 대신 리틀록에서 부성애를 쏟았던 탤러해시(우디 해럴슨)는 자신의 품을 훌쩍 떠난 리틀록 때문에 속이 쓰리다. 가족이라는 코드가 강화된 속편은 1편에서 잘 쌓은 캐릭터들을 활용해 여유만만하게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가 과도하게 웃기려는 강박이 없으니, 관객은 편안한 호흡 속에서 그들의 모험을 낄낄대며 즐길 수 있다. 좀비의 스타일과 액션신은 보다 진화했고,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유산인 전형을 비트는 재미 또한 여전하다. 별 수 없이 1편만큼의 혁신적인 인상은 남기지 못하지만, ‘좀비랜드’만의 세련된 화법을 기대해온 관객에게는 꽤 만족할 만한 속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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