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째 그대로'…"회계사 시험 과목 바꿀 때 왔다"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2019.11.1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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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시험과목…정도진 중앙대 교수 "시대변화 전혀 반영안돼"

"감사교육이 너무 어렵다. 나 바보인가 보다"

올해 회계법인에 입사한 수습 회계사들이 이처럼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공인회계사 자격을 얻었지만 시험 내용과 감사 실무와의 괴리감이 큰 탓이다.

회계사 시험의 주된 이슈는 늘 ‘선발인원 확대 여부’였다. 하지만 최근 한 사립대학교에서 시험 문제 유출 의혹이 불거지며 시험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회계사 시험 과목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수십 년 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공인회계사는 13일 “30년 전에 회계사시험을 봤는데 그때와 지금 시험이 정말 똑같다”며 “과목도 하나도 바뀌지 않고 시험시간도 그대로더라”고 놀라워했다.

공인회계사시험은 지난 1955년부터 10여년간 시행된 ‘계리사시험’의 후신(後身)으로 1967년 제1회 시험을 실시했다. 1982년 증권감독원(현 금융감독원)이 한국공인회계사회로부터 시험 관련 업무를 넘겨받았다. 2007년 ‘신(新)시험제도’가 시행되면서 학점이수제도, 제2차시험 부분 합격제 등이 도입됐다.



시험은 크게 객관식 필기시험으로 진행되는 1차 시험과 주관식 필기시험인 2차시험으로 나뉜다. 1차 시험에는 경영학, 상법, 회계학 등 전반적인 지식평가가 주를 이루고, 2차시험에는 재무관리, 회계감사, 원가회계 등 기본지식의 응용능력을 검정한다.

회계업계는 줄곧 AI(인공지능), IT(정보통신), 공공부문 감사 등 회계사시험 과목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한국회계정보학회장인 정도진 중앙대학교 교수는 “현재 시험은 어찌 보면 경영학을 충실히 공부했는지 성실성을 보는 시험”이라며 “특히 원가회계 과목에서 ABC 문제를 내고 있는데 이건 이미 (실무에서) 기계가 바코드를 찍고 있다. 전산·AI 효과가 실무에 들어왔는데 시험문제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현재 회계사 시험을 관리하는 금융감독원을 넘어서 금융위원회 등이 주도권을 쥐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태껏 시험에서 사고를 내지 않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보수적으로 행정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며 “시험 제도를 바꿔야 하는 상황은 분명히 왔지만, 의식 있는 사람이 책임지고 나서지 않으면 해결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더 나아가 회계사 자격증의 다양화도 주문했다. 미국의 경우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만 볼 수 있는 밸류에이션(기업가치평가) 전문가 자격증이 따로 있다. 회계 전문인력의 지식을 하나로 평균화할 수 없기 때문에 시험과 자격증도 그 수요에 맞게 다양화 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시험과목의 변화가 불러올 반향은 상상 이상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수십 년간 시험과목에 맞춰 개설된 대학강의, 수험서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시험과목 변화는 교수들의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다”며 “대부분 대학교 회계수업이 수험서로 돼 있고 회계사 시험에 집중돼 있다. 만약 원가회계 과목 하나를 빼면 대학에서는 폐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반대가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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