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도 지난달 23일 부랴부랴 사용 중단을 권고하고 나섰다. 해외에서 사망자가 잇따르고 국내에서도 의심환자가 나오자 사용 자제를 권고한 지 한 달여 만에 경고수위를 높인 것이다. 이번 조치가 적절한지를 놓고 전자담배업계 등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선 말들이 많지만 정부가 예방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사용 중단을 권고한 것은 바람직하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간에 쫓기지 말고 면밀히 분석해 일말의 불안감도 남겨선 안될 것이다. 생명을 다루는 문제에서는 돌다리를 두드리는 자세로 한 치의 빈틈도 없어야 한다.
연초의 잎을 원료로 만든 제품만 담배로 규정하면서 줄기나 뿌리 또는 합성니코틴을 사용한 신종 담배들이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이 대표적이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도입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이제 와서 호들갑을 떠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담배가 출시되기 전 유해성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현행법엔 담배 성분·첨가물 정보제공 및 분석을 강제하는 규정이 없어 보건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보건당국이 직권으로 담배의 유해성분을 분석할 수 없다. 보건당국이 ‘담배종결전’(endgame)을 선언하고 금연정책의 강도를 높이지만 사실상 반쪽짜리 정책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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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문제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국회에선 담배사업법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됐다. 20대에서 발의된 법안도 여럿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무부처를 어디로 할 것인지, 규제근거를 법과 시행령 어디에 둘 것인지 등 곁가지가 쟁점이 되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부처 간 알력 다툼과 국회와 정부의 권한 싸움에 국민건강이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전 세계 주요국들은 경제적 관점이 아닌 국민건강 측면에서 담배를 관리한다. 담배로 인한 국가 재정상 이득보다 사회경제적 손실이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흡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2013년 이미 7조125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2005년 4조4093억원에 비해 1.6배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현실을 수수방관하면 재정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미래세대에 가혹한 짐이 될 것이 자명하다.
국민건강과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도 이제 담배에 대한 새로운 규제체계를 정립할 때다. 시대착오적이고 허점투성이인 담배사업법은 담배규제법으로 바꿔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주무부처도 재정당국이 아닌 보건당국으로 이관해야 한다. 당장 세금 몇 푼 더 걷자고 국민을 볼모로 삼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