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휴대폰처럼…'전기'도 요금제 골라 쓸순 없나요?

머니투데이 세종=유영호 기자, 박경담 기자, 권혜민 기자, 우경희 기자 2019.11.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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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제자리걸음, 전력산업 구조개편] (종합)

편집자주  한국전력이 지난해 6년 만에 적자를 내고 올해 상반기에도 1조 원에 가까운 손실을 봤다. 탈(脫)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국제 연료값 인상 등을 여러 요인을 놓고 정치 사회적 공방이 치열하다. 하지만 독점적 전력시장이라는 구조를 빼놓고 적자사태의 원인을 생각할 수 없다.

'121년 독점‘ 전력산업, 한전 해체 기로
[15년 제자리걸음, 전력산업 구조개편]기형적 전력산업 구조에 사회·한전·소비자 모두 피해… 전문가 “판매경쟁 도입으로 시장 효율화 시급”

[MT리포트]휴대폰처럼…'전기'도 요금제 골라 쓸순 없나요?


1887년 3월 6일 경복궁 건청궁. 저녁 어스름이 나직이 깔리자 작은 불빛 하나가 깜빡깜빡 거리다 이내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한반도 최초의 '전깃불'이었다. 11년 후인 1898년 1월 26일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고 가정·공장 등에 전기 공급을 시작했다. 한국에도 전력산업이 태동한 순간이다. 121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전력산업은 눈부신 경제성장에 걸 맞는 혁신과 고도화를 이뤄냈을까.



한성전기를 모태로 한 한국전력은 세계적 전력 유틸리티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전력산업 경쟁력은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한전 그룹사가 발전, 송·배전, 판매 등 전력산업을 독점하며 몸집을 불리는 사이 국가 경제의 뿌리가 되는 전력산업은 지속가능성이 위협 받고 있다. 한전 중심의 전력산업 구조 해체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에 따르면 전력산업은 크게 '생산(발전)→수송(송·배전)→ 판매' 부문으로 구분된다.



 【광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23일 한전 광주전남본부에 따르면 5월 한 달간 전남 섬지역 주민들에게 무결점 전력공급을 위해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월철탑 송전선로를 정밀 점검하고 노후설비 교체작업을 집중 실시했다. 2019.05.23 (사진=한전 광주전남본부 제공)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23일 한전 광주전남본부에 따르면 5월 한 달간 전남 섬지역 주민들에게 무결점 전력공급을 위해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월철탑 송전선로를 정밀 점검하고 노후설비 교체작업을 집중 실시했다. 2019.05.23 (사진=한전 광주전남본부 제공) [email protected]
◇121년 독점 전력산업, 지속 가능할까

국내 전력산업은 한전 그룹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발전 부문은 한전 6개 발전자회사 점유율이 80%를 넘고 송·배전 부문은 한전이 100% 독점한다. 판매 부문도 한전을 제외한 10개 구역전기사업자 비중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기형적 구조 때문에 '한전의, 한전에 의한, 한전을 위한 전력산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독점적 전력시장 구조에 따른 부담은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다. 독점시장이라는 이유로 정부 규제가 강하다 보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체계가 고착화 됐다. 전기 요금체계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까닭에 '수요-공급'이라는 시장 기본 메커니즘은 작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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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안전하면서 싼 에너지는 없다"

이는 한전 발목을 잡는 족쇄나 다름없다. 국제 유가 등 원가 변동이 요금에 반영되지 않는 탓에 흑자와 적자가 들쑥날쑥하는 비정상적 실적을 반복한다. 최근 한전 대규모 적자는 국제 원료 가격 상승과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같은 정책비용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그 배경에는 전력산업 독점과 정부 규제로 한전이 모든 부담을 떠안는 구조가 있다.

소비자도 손해다. '싼 전기요금'이라는 착시를 걷어내면 개별 소비자는 비정상적 요금체계로 피해를 보는 일이 빈번하다. 특히 시간, 계절에 따라 가치가 다른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유인이 없다. 사회 전체적으로 외부비경제 효과도 크다. 자원 배분 왜곡이 이뤄지기 때문인데 2차 에너지인 전기는 파급력이 크다.

송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깨끗하고 안전하면서 싼 에너지는 없다"며 "지금 전력산업이 우리 경제에 걸맞지 않는 후진적이고 왜곡된 형태로 남아있는데 사회적 효용을 낮출 뿐 아니라 미래세대에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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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 구조개편, 2004년 중단…"다시 시작할 때"

정부도 부작용을 깨닫고 2001년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추진했으나 노조 반발 등으로 2004년 백지화됐다. 전문가들은 15년 전 멈춘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다시 시작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핵심은 공공재 성격을 가진 '송·배전' 부문을 분리하고 판매 부문에 완전경쟁을 도입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한전이 송·배전을 독점하는 구조에서는 판매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판매 부문 완전경쟁을 위해선 송·배전망 접근을 중립적으로 차별 없이 개방해야 한다"며 "판매경쟁이 이뤄져야 전력시장이 효율화돼 정부 요금 통제 등이 없어질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수요 독점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우 건국대 산학협력중점교수는 "한전이 전력산업의 모든 것을 독점하는 상황인데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라며 "다만 인위적인 분할을 통한 구조 개편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에너지 전환 정책 추진 과정에서 시장 변화,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판매경쟁 도입을 촉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가운데)이 15일 경기도 안성시 신안성변전소에서 2019 국가안전대진단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김 사장은 화재·붕괴·고장 등 비상상황에 대한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해빙기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한 전력시설물의 안전 여부를 확인했다.(한국전력 제공)2019.3.1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김종갑 한국전력 사장(가운데)이 15일 경기도 안성시 신안성변전소에서 2019 국가안전대진단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김 사장은 화재·붕괴·고장 등 비상상황에 대한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해빙기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한 전력시설물의 안전 여부를 확인했다.(한국전력 제공)2019.3.1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경담 기자, 유영호 기자, 권혜민 기자

DJ 짜고 참여정부 엎고…미완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15년 제자리걸음, 전력산업 구조 개편]발전 부문 2001년 경쟁구도 구축…판매 부문 경쟁 도입, 2004년 논의 중단 이후 모든 정권서 실패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김대중정부 집권시기인 1999년 1월 전력산업구조개편기본계획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전력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발전, 판매 부문을 10년 동안 경쟁 구도로 전환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 본격화된 공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br>전력산업 구조개편은 김대중정부 집권시기인 1999년 1월 전력산업구조개편기본계획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전력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발전, 판매 부문을 10년 동안 경쟁 구도로 전환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 본격화된 공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br>
발전 경쟁체제는 2001년 4월 한전 발전 부문 분할로 구체화됐다. 한전 발전 부문은 한국수력원자력과 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남동, 중부, 서부, 남부, 동서 등 5개 발전 자회사로 나뉘었다. 한전이 자회사에서 생산한 자기를 산 뒤 기업, 가정 등에 파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같은 시기 전력시장 및 전력계통 운영을 맡는 전력거래소도 설립됐다.

구조개편은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김대중정부는 한수원을 제외한 5개 발전 자회사는 민영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차 민영화 대상이었던 남동발전 매각은 노무현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중단됐다. 판매 부문 개방을 염두에 둔 배전분할 논의는 2004년 6월 아예 사라졌다. 노무현정부가 한전 배전분할을 멈추라는 노사정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이면서다.

◇캘리포니아 정전사태로 멈춘 전력산업 구조개편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 탓에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정부가 21일 오후 2시부터 20분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정전대비 훈련을 실시했다.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이날 정전 훈련은 폭염으로 냉방전력 수요가 늘면서 예비 전력이 100만kW 미만까지 떨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공공기관과 지하철, 병원등 절전 취약시설에서 전국 동시다발로 실시됐다. 사진은 정전 훈련 시작 전(왼쪽)과 훈련 시작 후의 코엑스몰 모습. / 사진=뉴스1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 탓에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정부가 21일 오후 2시부터 20분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정전대비 훈련을 실시했다.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이날 정전 훈련은 폭염으로 냉방전력 수요가 늘면서 예비 전력이 100만kW 미만까지 떨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공공기관과 지하철, 병원등 절전 취약시설에서 전국 동시다발로 실시됐다. 사진은 정전 훈련 시작 전(왼쪽)과 훈련 시작 후의 코엑스몰 모습. / 사진=뉴스1
발전소가 민간에 넘어갈 경우 전기요금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 민영화가 2001년 캘리포니아 정전사태를 낳았다는 주장에 부딪히면서 구조개편은 동력을 상실했다.

2008년 공기업 선진화를 내건 이명박정부가 집권하면서 구조개편이 재개될 것이란 기대도 커졌다. 하지만 이명박정부는 전기, 가스, 수도, 의료보험은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밝혔다.

2010년 8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안은 구조개편에 걸맞지 않았다. 당시 한수원과 5개 발전 자회사는 시장형공기업으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경영평가 주체가 한전에서 정부로 바뀌었다. 다른 구조개편 축인 전력 판매 부문 경쟁은 중장기 과제로 돌렸고 집권 기간 내에 다시 거론되지 않았다.

◇계속된 실패 원인, 노조 반발·미온적인 정부 태도

30일 오전 한전 변압기 등 설비 점검 현장 스케치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30일 오전 한전 변압기 등 설비 점검 현장 스케치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박근혜정부 역시 2016년 6월 발표한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을 통해 전력 판매시장 개방, 발전 자회사 상장을 추진했다. 2014년 9월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이 정부에 공기업 상장을 통한 지분 매각을 요구하면서다.

남동, 동서발전을 2017년 상장하고 2019년까지 다른 발전 자회사는 2019년까지 기업공개(IPO)를 마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에너지 공공기관 기능조정은 최순실 국정농단,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지지부진하다 이듬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중단됐다.

구조개편이 계속 실패한 이유로는 노조 반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등이 꼽힌다. 송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기업 독점을 해체할 때마다 노조에서 민영화 논리를 꺼내 큰일 날 것처럼 주장했다"며 "원격의료, 우버(차량공유업체) 도입이 안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은 "국가 입장에서도 우량 공기업인 한전에서 흑자가 나면 배당이 돌아오는데 현 구조를 해체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싼 전기요금이 지속 가능한 체제인지를 두고 국민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정부가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도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

‘한전 쪼개기=민영화‘… 진실은?


[15년 제자리걸음, 전력산업 구조 개편]전력판매 시장 개방해도 정부 한전 51% 지배구조는 그대로…"민영화 프레임이 오해 키워“

사진은 한국전력 나주 본사 사옥. (한국전력 제공) 2014.11.30./사진=뉴스1 사진은 한국전력 나주 본사 사옥. (한국전력 제공) 2014.11.30./사진=뉴스1
20년 전 시작된 국내 전력시장구조개편 작업이 '반쪽'으로 끝난 데에는 민영화에 대한 반발이 큰 몫을 했다.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공공재 전기를 민영화할 경우 수급불안은 물론 요금 폭등, 취약지역 서비스 중단 등 여러 폐해가 예상된다는 논리다. 참여정부 들어 공기업 민영화 진행 작업이 중단된 이후 민영화는 '금기어'가 돼 버렸다. 이와 함께 전력시장구조개편 논의도 멈춰서고 말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전력이 독점하던 전력산업을 발전, 송배전, 판매 부문으로 쪼개고 경쟁을 도입하는 전력시장구조개편 작업이 곧 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자유화'(liberalization)와 '민영화(privatization)'의 개념을 구분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력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한전이 갖고 있던 기존 기능을 분리해 제3자에게 분할 매각하는 민영화 형태가 있을 수 있다. 또 한전 홀로 맡던 기능을 제3자도 수행하도록 시장을 자유화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 경우 한전이 그대로 사업자로 존재하며 다른 민간기업과 경쟁하는 만큼 민영화와는 관련이 없다.

판매부문에서 지금까지 주로 논의된 방안은 후자에 가깝다. 소매시장을 개방해 다양한 사업자의 진입을 허용하는 형태다. 현재는 한전이 유일한 전력 판매업자이지만, 판매 자유화가 이뤄지면 다양한 사업자들이 시장에 들어와 판매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MT리포트]휴대폰처럼…'전기'도 요금제 골라 쓸순 없나요?
한전이 민간 소유로 매각되지는 않는다. 현재 정부는 한전 지분의 51%를 갖고 있는데, 이 지분 구조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한전은 그저 새로운 사업자들과 서로 경쟁하면 된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판매시장 개방은 한전도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판매자 중 하나가 돼 민간과 같이 경쟁한다는 의미"라며 "이를 민영화라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다양한 사업자가 참여하는 시장에서 공기업으로서 한전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김진우 건국대 산학협력중점교수는 "한전은 판매시장 개방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공기업으로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전력시장 개방과 민영화를 혼동하는 이유는 과거 정부가 전력시장구조개편 과정에서 민영화를 추진했던 기억 때문이다. 정부는 2001년 한전 발전 부문을 6개 자회사로 분할한 뒤 민영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하지만 민영화가 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도 각각의 발전자회사 간 경쟁을 유도하고 민간 발전사 진입을 허용하면서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한전의 독점 구도를 깨뜨리는 과정에는 아주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민영화와 연결지을 수는 없다"며 "경쟁을 원하지 않는 쪽에서 민영화 프레임으로 몰아가며 오해를 키우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권혜민 기자, 박경담 기자

일본·독일에선 전기요금제 내 마음대로 골라 쓴다


[15년 제자리걸음, 전력산업 구조 개편]전력 판매경쟁 도입으로 다양한 사업자 등장…개인 사용패턴·취향·가치 반영한 요금제 선택 길 열려

[MT리포트]휴대폰처럼…'전기'도 요금제 골라 쓸순 없나요?
휴대전화를 개통하려면 먼저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회사를 정해야 한다. 이후 서비스와 가격이 천차만별인 수십개 요금제 중 이용할 제도를 선택한다. 고민은 늘지만 그만큼 내 사용량과 패턴에 맞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기요금제도 골라 쓸 수 있다면 어떨까. 한국전력 (20,150원 ▼250 -1.23%)이 제시하는 용도별 요금표에 따라 매달 내야 할 금액을 통보받는 한국 소비자들에겐 낯선 일이지만, 해외 주요국들에선 이미 당연한 일이다.

전력 소비자가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는 배경은 개방된 전력 소매시장이다. 주요국들에선 전력산업구조개편을 통해 다양한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전력을 팔 수 있게 됐고, 그 과정에서 경쟁을 위해 다양한 요금제가 개발됐다. 판매 경쟁은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일본에선 통신사 '소프트뱅크'도 전력 판다

옆나라 일본이 대표 사례다. 일본은 1995년부터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추진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소매시장을 대형공장과 빌딩 등 고압으로 전력을 받는 고객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했다. 논의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면서 급물살을 탔다. 경쟁 도입을 통해 원전 가동 중지로 급상승한 전기요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마침내 2016년 4월 전력소매시장이 전면 자유화됐다.

지역에 있는 10개 전력회사의 독점판매권은 폐지됐다. 기존 사업자가 아닌 신전력사업자(PPS)도 요건을 갖춰 정부에 등록만 하면 자유롭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다양한 요금제가 출시되면서 일반 가정 소비자들은 자신의 전력소비 패턴에 맞는 요금제의 비교·선택이 가능해졌다.

일본 전력 정보센터(JEPIC)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507개 회사가 소매전기사업자로 등록했다. 도시가스, 통신, 석유 회사 등 다양한 업종의 사업자들이 뛰어들었다. 도쿄가스, 오사카가스, 소프트뱅크, NTT, JXTG 에너지 등이 대표적이다.

사업모델도 더욱 다양해졌다. 고객카드, 포인트제도 등 부가서비스가 풍부해지고 마케팅도 다양화됐다. 전력과 가스, 통신 서비스를 결합한 묶음상품도 출시됐다. 예컨대 이동통신사 소프트뱅크와 일본 최대 전력회사 도쿄전력은 제휴를 맺고 전기·통신·인터넷을 묶어 사용하면 할인하는 프로그램을 판매한다. 도쿄지역 철도회사인 도큐그룹은 전기와 케이블TV 시청료, 전철 정기권 결합상품을 내놨다.

◇녹색요금제 활성화…독일 에너지전환 성공 발판

독일의 경우 1998년 전력 자유화를 단행했다. 발전과 판매 모든 부문에서 100% 시장개방을 추진했다. 현재는 E.ON, RWE, Vattenfall, EnBW 등 4대 전력회사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1000여개 회사가 경쟁한다. 소비자들은 자유롭게 전력판매사와 요금제를 골라 쓴다. 전력회사들이 앞다퉈 다양한 옵션을 내놓은 것은 물론이다.

눈에 띄는 건 소비자들이 에너지믹스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일 소비자는 회사별로 공개한 발전 포트폴리오를 보고 원하는 구성으로 만들어진 전력을 선택한다. 요금 정산서엔 발전원 구성 뿐만 아니라 1kW당 이산화탄소(CO2) 배출량과 방사성폐기물량 등 다양한 정보가 표기된다. '친환경' 등 개인의 가치를 반영한 선택이 가능한 셈이다.

독일에선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만든 그린피스에너지, 지역 주민 주도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쇠나우(Schonau) 등 재생에너지 전력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다양한 회사들이 등장해 고객과 직거래한다. 기존 전력회사도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를 별도로 운영한다.

이는 녹색요금제 안착에 크게 기여했다. 기존 전기요금에 추가 요금(그린 프리미엄)을 부담하고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구매하는 제도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는 'RE100' 캠페인이 활성화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친환경 전력소비를 가능하게 한 점은 독일 에너지전환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권혜민 기자

전력산업 개편도 요금체계 정상화 없인 도루묵
[15년 제자리걸음, 전력산업 구조 개편]왜곡된 요금체계 유지땐 '전력산업 개편' 헛구호 그칠수도… "원가·수요 반영한 전기요금체계 정상화 필요“

[MT리포트]휴대폰처럼…'전기'도 요금제 골라 쓸순 없나요?
전력산업 구조 개편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왜곡된 전기요금체계 정상화다. 비정상적 전기요금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추진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으로 지금보다 전력산업 전반의 비효율성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 (20,150원 ▼250 -1.23%)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용도별 요금제를 기본으로 한다. 일반가정과 공장, 상가 등 전력수요자 성격에 맞춰 △주택용 △산업용 △일반용 △농업용 △교육용 등으로 구분된다. 용도별 정해진 기본요금과 사용한 전기량에 부과되는 전력량요금을 합쳐 요금이 부과된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이 용도별로 전기요금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정책 혹은 정치적 잣대가 가미된다는 의미로 지속가능 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전기를 하나의 재화로 봤을 때 원가(한전 전력구매단가+송·배전비용)와 수요를 고려해서 요금을 결정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현재 산업·일반용 전기의 경우 제한적으로 △용량별(갑Ⅰ·갑Ⅱ·을) △전압별(고압A·고압B·고압C·저압) △계절별(여름·봄가을·겨울) △시간별(경부하·중간부하·최대부하) 요금기준을 차등 적용하고 있는데 전기요금 전반에 이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용량·전압·계절·시간별 요금제를 전기요금 전체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기계식 전력사용량계를 실시간으로 사용량 측정이 가능한 전자식으로 지능형전력량계(AMI)로 교체해야 한다. 한전은 2022년을 목표로 AMI 보급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기요금을 국제 유가 등 원가 흐름에 연동하는 제도 도입도 필수적이다. 국제 유가나 국제 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면 전기요금도 오르고 반대로 하락하면 내리는 식이다.

실제 정부는 도시가스요금에 연료비연동제를 적용한다. 국제유가 및 환율 변동 등으로 천연가스 도입가격이 3% 이상 변화하면 홀수 달에 이를 자동으로 도시가스 요금에 반영한다. 도매업체인 한국가스공사가 2개월 단위로 앞으로 2개월간 가격을 예측해 소매업체인 도시가스사업자에 가스를 공급하고 실제 원료비가 예측 원료비와 차이가 있으면 이를 연료비연동제로 추후 정산하는 구조다.

한전은 여기에 정책비용 변동까지 포함한 도매가격연동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는 구매단가와 한전이 소비자에게 전기를 파는 전기요금을 연동하자는 것이다. 도입되면 전기요금에 국제 연료 가격 변동은 물론 발전사업자가 총 발전량의 일정량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해야 하는 신재생의무공급제도(RPS) 보전액·탄소배출권 구입비·개별소비세 등 정책비용까지 포괄적으로 원가에 포함돼 전기요금에 연동된다.

한전이 사실상 이를 전력산업을 독점하고 있어 정책비용을 홀로 부담하고 있지만 구조 개편으로 발전·판매 경쟁이 활성화된다면 소비자가 선호하는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정책비용을 부담하는 요금제를 선택하는 게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지지하는 소비자는 다소 비싸더라도 재생에너지와 연동한 전기를 구매하고 사업자는 초과 요금을 재생에너지 투자를 더 확대하면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가 정착할 수 있다.

김욱 부산대 전기공학 교수는 “도매가격연동제도 국제연료가격의 변화와 정책비용 변화를 소비자 요금에 어느정도 연동해 합리적인 (전기) 소비를 유도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기요금과 복지정책을 분리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장애인, 기초수급자, 출산가구, 사회복지시설 등 취약계층에 대한 전기요금 지원은 한전이 자체적 요금 감면으로 맡아왔는데 이를 전기요금 체계와 분리, 정부가 에너지복지 차원에서 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전기요금 복지할인 총액은 △장애인 1311억원 △기초수급 1257억원 △3자녀 938억원 △사회복지 896억원 △출산 469억원 △대가족 415억원 △차상위 204억원 △생명유지 22억원 △유공자 17억원 △독립유공 11억원 등 총 5540억원이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 교수는 “전기요금체계를 정상화하는 대신 저소득, 차상위 계층은 요금 할인이 아니라 바우처 등 별도 복지제도로 돕는 게 전력산업 구조 정상화에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유영호 기자

인허가·수익부진 이중고…전력시장, 말로만 민간개방
[MT리포트]휴대폰처럼…'전기'도 요금제 골라 쓸순 없나요?
포스코에너지가 포스파워 삼척 발전소를 바라보는 감정은 복잡하다. 포스코에너지가 2014년 동양파워로부터 4311억원에 사업권을 인수했지만 환경영향평가 등 인허가 과정이 기약없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포스파워 발전소는 폐광부지여서 산림훼손이나 바다 매립등이 필요 없다. 변전소까지 송전선로 길이도 상대적으로 짧다. 발전소 부지로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에 진행된 사업이었지만 삼척시의 해안사용 불허 등 인허가의 허들을 넘지 못해 상당 기간 사업이 표류했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는 착공률 10% 미만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방침을 정하면서 원안인 석탄화력발전소가 LNG(액화천연가스)발전소로 변경될 뻔 한 상황도 겪었다.

고성그린파워(남동발전·SK건설·SK가스·KDB인프라)와 강릉에코파워(남동발전·삼성물산) 등도 과정에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사정은 같다. 각종 인허가에 발목을 잡혀 사업 기일이 기약 없이 늘어지다가 겨우 건설에 들어갔다. 여전히 정부와 입장 조율이 진행 중인 사안도 많다.

전력산업의 구원투수 대접을 받았던 민간발전사들이지만 정부의 규제와 수익부진의 이중고를 맞고 있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전력시장의 비합리성과 폐쇄성을 극복하지 않고는 민간발전사업에 비전이 없다"며 "이에 대한 혁신이야말로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 성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력신산업 육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민간업체가 도소매 시장에 진입해 경쟁할 수 있는 가격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주도의 요금 결정이 이뤄지고 있다.

민간에 발전사업의 문을 열어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에 민간은 곁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민간의 자율적인 투자나 요금결정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민간 발전사업 육성 의지가 강력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민간사업자들은 프로젝트파이낸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급박하게 자금이 필요하지만 번번히 허들에 걸리는 상황에서 투자를 이끌어내는데 어려움이 크다. 대주단이 투자보수율을 문제삼을 경우 자금 조달 자체가 어려워진다.

말로만 민간 개방을 외친 결과는 우울하다. 한국전력 자회사 6개사가 전력 생산의 81%를 차지하는 가운데 민간발전 비중은 19% 정도에 그치고 있다. 장기윤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전력 경쟁체제 도입이 지지부진한건 정부의 정책의지 부족 탓"이라고 했다.

우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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