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능선' 넘은 유료방송 재편…샴페인은 아직 이르다

머니투데이 김세관 기자 2019.11.1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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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유료방송 M&A 승인]달라진 시장 획정 기준 ‘8VSB’와 ‘디지털’로 구분…시장변화 ‘인식’ 바뀐 게 가장 큰 변화

'7부능선' 넘은 유료방송 재편…샴페인은 아직 이르다


국내 유료방송 업계 재편이 7부 능선을 넘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티브로드 합병과 LG유플러스의 CJ헬로 지분 인수를 각각 승인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현 CJ헬로) 인수를 최종 불허했던 공정위가 3년 만에 유사 사례에 대해 전혀 다른 판단을 내렸다.

공정위의 인수 조건도 비교적 무난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아직 이르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최종 승인절차가 남아 있다. SK텔레콤의 티브로드 합병 사안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전 동의도 얻어야 한다. 넷플릭스발(發) 미디어 빅뱅에 국내 산업 재편도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 정책의 기류다. 때문에 과기정통부도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진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방송통신 주무부처가 어떤 승인 조건을 내세울 지가 최종 변수가 될 전망이다.



◇8VSB와 디지털방송, 서비스 방식별 시장 획정이 주효= 3년 전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를 막았던 공정위가 이번에 전격적으로 승인 결정을 내준 건 유료방송 시장 경쟁 상황에 대한 인식과 판단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먼저 시장 획정 기준이다. 유료방송 시장을 전국 단위로 보지 않고 23개 지역 단위로 구분한 건 3년 전과 동일했다. 공정위는 티브로드와 CJ헬로가 케이블TV(SO) 사업권을 각각 보유한 23개 지역권역(총 46개)의 시장 점유율로 경쟁상황을 판단했다.



하지만 유료방송 시장을 디지털 방송과 8VSB(디지털TV를 보유한 아날로그방송 가입자도 디지털방송을 볼 수 있는 방식)이라는 서비스 방식별로 구분한 점이 달랐다. 아날로그 방송은 아예 시장 획정에서 뺐다. 2016년도에는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단일 방송으로 봤다.

8VSB 방송이 별도 시장으로 제외되면서 디지털 유료방송 시장 경쟁 제한성을 따로 심사한 결과, 경쟁압력이 대폭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디지털 유료방송시장에서 경쟁제한성 추정 지역수와 점유율 1위 지역수, 지역 평균점유율 우세 지역 등이 단일 시장으로 획정할 때보다 줄었다.

가령, 기업결합 이후 SK텔레콤과 티브로드는 11개 권역에서만 독과점이 우려됐고, LG유플러스와 CJ헬로는 아예 독과점 우려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6년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이 합병하면 유료방송 권역 23개 중 16개에서 시장 독과점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시정조치만으로 이같은 우려를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을 정도로 약화됐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번 공정위 승인에 대해 심사기일만 길어졌을 뿐 "의외로 무난했다"고 반기고 있다. 유료방송 산업 M&A(인수합병) 사례에 대한 공정위 판단 기준이 달라진 건 무엇보다 현 정부들어 달라진 정책기류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넷플릭스 등 해외 OTT(동영상 서비스) 사업자들의 국내 시장 잠식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강화가 절실하다는 판단이다.

유료방송 시장에서 디지털 방송이 대세로 굳어진 점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 3월 방송통신위원회도 '2018년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 보고서를 내면서 처음으로 아날로그 케이블TV(SO)를 시장 경쟁상황 평가 대상에서 제외하고, 8VSB유료방송과 디지털유료방송만 구분해 평가했다. 공정위도 이 점을 반영했다.

배영수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방송통신 융합의 시대가 도래했고, VOD(주문형비디오) 서비스 소비 등 디지털 방송 상품 중심으로 구매패턴이 바뀌었다"며 "디지털 상품 경쟁제한성을 보려면 디지털유료방송을 독립된 시장으로 봐야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승인 조건이 최종 변수= 이제 공은 과기정통부로 넘어갔다.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주무부처로서 국내 유료방송 산업 재편의 불가피성에 대해 동의해왔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 국경을 초월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유료방송 산업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9월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9월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이들은 이미 심사에 착수한 상태. 때문에 인허가를 내주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전망이다. 업계의 관심은 어떤 조건이 붙느냐 여부다.

가장 우선적으로 승인 조건 부과가 예상되는 내용은 홈쇼핑 송출수수료 문제다. 홈쇼핑 송출 수수료를 둘러싼 유료방송 사업자와 TV 홈쇼핑 사업자들의 갈등은 공정위 전원회의 막판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성욱 공정위 위원장도 "과기정통부와 방통위가 심사할 때 해당 사항을 잘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TV홈쇼핑 송출수수료 갈등 대응방안이 과기정통부의 기업결합 승인 조건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IPTV(인터넷TV) 판매망과 케이블TV 판매망에서 기업결합 이후에도 서로의 상품 및 서비스를 팔지 못하게 하는 교차판매와 LG유플러스의 CJ헬로의 알뜰폰(MVNO)사업 부문 인수 방안에 대해서 어떤 부가조건이 달릴 지도 변수가 되고 있다.

이들 쟁점에 대해 공정위는 시장 경쟁 상황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사안이다. 그러나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방송통신 주무부처인 만큼 알뜰폰 활성화 정책과 케이블TV의 지역성 여부도 두루 따져볼 수 밖에 없다.

이 외에도 SK텔레콤과 하나로텔레콤, KT와 KTF 등 과거 통신사 간 결합 사례에서 주무부처가 부과했던 ‘결합상품 판매 공정성 확보’나 ‘취약지역 통신 구축계획 마련’, ‘약관 통합’ 등의 조건이 고려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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