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 서훈 논란’ 제2 라운드…“훈장 10개 줘도 모자라” VS “서훈 불가”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9.11.0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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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 평전 ‘민족혁명가 김원봉’ 출간 계기…월북 이후 묘연한 행적에 ‘사실’과 ‘추론’의 논쟁

지난 6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열린 평전 '민족혁명가 김원봉' 출간 간담회. 왼쪽부터 김영범 대구대 교수, 저자 이원규 작가, 이동언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원, 장세윤 전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원. /사진=뉴시스지난 6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열린 평전 '민족혁명가 김원봉' 출간 간담회. 왼쪽부터 김영범 대구대 교수, 저자 이원규 작가, 이동언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원, 장세윤 전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원.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해 화제가 된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둘러싼 ‘서훈’ 논란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관련된 평전이 발간돼 ‘제2 라운드 서훈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몇 달 전 김원봉의 서훈 문제가 불거지자, ‘서훈 불가’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지난 8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김원봉)이 북한 국가 수립에 기여한 것으로 안다”며 “그 부분이 해가 돼 현재 기준상 서훈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최근 소설가 이원규는 14년 만에 내용을 보완한 평전 ‘민족혁명가 김원봉’을 최근 낸 출간 간담회 자리에서 “지금처럼 대립하고 논쟁하는 분위기에선 (서훈을) 줘도 의미가 없다”며 “하지만 언젠가는 서훈해야 할 것이고 훈장 10개는 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책은 1898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해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조직한 독립운동가 약산(若山) 김원봉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김원봉의 행적을 샅샅이 조사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각지를 답사하고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했다.



저자는 “2005년 첫 책에는 사실 30%, 상상력 70%를 담았다면, 이번에는 사실 70%, 상상력이 30%”라고 설명했다.

실제 저자가 조사한 김원봉의 행적을 도표로 보면 그가 얼마나, 어떻게 광복군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는지 그 궤적이 고스란히 증명된다. 저자는 이 책이 소설보다 평전에 가까울 정도로 세세한 오류를 고쳤다며 “김일성 저작집까지 조사해 다시 썼다”고 했다.

‘김원봉 서훈 논란’ 제2 라운드…“훈장 10개 줘도 모자라” VS “서훈 불가”
문제는 광복군 시절의 김원봉이 아닌, 월북 이후의 김원봉이다. 책은 월북 이후 행적이 묘연해 상상력에 의존하는 대목이 적지 않기 때문. 저자는 “광복군 시절 김원봉의 한결같은 철학과 행동, 김원봉을 잘 아는 생존자와의 인터뷰 등을 보면 월북 이후에도 그랬을 한결같은 태도의 가능성을 참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의 공적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월북 이후 그가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점과 북한이 일으킨 ‘한국 전쟁에 대한 침묵’이 그것. 하지만 이 얘기 모두 ‘확인’된 것은 아니다. 특히 그의 죽음과 관련된 부분도 ‘숙청설’과 ‘자결설’이 나뉘어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김영범 대구대 교수는 “광복군에서 군사의 책임자였던 김원봉이 북에서는 군 역할을 맡지 않았다”며 “(김일성) 옆에서 한국 전쟁을 부추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원봉을 향한 ‘공산주의’ 개념도 이 자리에 참석한 저자와 일부 관련 학계는 다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일본은 조선의 분열을 획책했지만, 김원봉은 이에 맞서 민족 대단결을 추진했다”며 “그의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라는 큰 틀에서 ‘효용성의 가치’만 녹여낸 노선이자 정책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김원봉은 우리 사회에 숙제 같은 인물”이라며 “그를 통해 독립운동사의 정신을 돌아보고 그에 대한 재평가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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