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린 장벽을 부수는 독일 시민들 <자료 사진> © 로이터=뉴스1
1989년 11월9일 밤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SED) 고위 당국자이자 정부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는 동베를린의 프레스센터에서 이날 오전 각료회의 결정 사항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앞서 발표한 동독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일종의 허울뿐인 '여행완화법안'에 대한 보충 설명 자리였다.
정책을 잘 숙지하지 못하고 급하게 나온 샤보프스키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 서류를 찾으며 더듬거린다. 그러자 다시 독일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의 피터 브링크만과 에르만, 미국의 소리(VOA) 기자 크르지츠토프 야노프스키가 동시다발적으로 '여권 없이인가?' '언제부터인가?' 같은 질문을 쏟아붓는다.
수백만이 지켜보던 이 방송에서 이 같은 말이 나오자 독일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에르만 기자는 달려나가 안사에 전화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냈다. 실제로 동독 정부가 내놓은 것은 여행 조건을 일부 완화하는 것뿐이라 사정을 잘 아는 다른 언론사들은 기자회견 내용을 중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잘못된 말에 근거한 사실상 오보인 이 기사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시민들을 더욱더 장벽으로 불러모아 장벽 붕괴를 거스를 수 없게 만들었다.
베를린 장벽을 부수는 독일 시민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동독 경찰 <자료 사진> ©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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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하는 중령의 독촉에 상사는 국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중령을 바꿔준다. 장관이 "귀관이 상황을 제대로 평가할 위치에 있느냐"는 말을 하자 중령은 화가 나서 "내 말을 못믿겠으면 그냥 들으라"며 전화기를 군중들이 모여든 밖으로 난 창에 대준다. 그 후 전화를 끊고 중령은 부하들에게 "장벽을 열라"고 지시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지난달 31일 로이터통신과의 독점 인터뷰에서 "역사 그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속도로 통일을 향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는게 확연했다"고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독일 통일이 유혈사태 없이 이뤄지게 된 데 자신의 공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동독에는 38만명의 소비에트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들은 병영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받았다. 믿을 수 없이 복잡한 과정이 유혈과정 없이 지나갔고 나는 그것에 내 공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최초의 소련 대통령을 지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베를린 장벽의 체크포인트 찰리를 방문했다. © 로이터=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