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료 5000만원 더 받게 됐지만…박창진은 웃지 않았다

머니투데이 안채원 기자 2019.11.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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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이주의 판결] 법원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에 7000만원 손해 배상해야" 판결

편집자주 법원에서는 하루 수십 건의 판결 선고가 이뤄집니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담은 판결들도 많습니다. 따끈따끈한 이번 주 판결 중 가장 의미 있었던 판결 내용을 법원 출입 안기자가 자세히 설명해드립니다.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법정 안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전달 드리겠습니다.

/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


"오늘 판결 이후, 어떤 분들은 싸움에서 이겼으니 자축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무수한 갑질로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도 노동자는 생각도 못 할 금액의 퇴직금을 챙기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언론이 높아진 위자료 액수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 위자료를 받아 갈 당사자인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만큼은 웃지 않았다.

법원 "인격에 깊은 상처입혀…고위 임원 잘못 은폐 위해 근로자 인격 침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 사진=김창현 기자 chmt@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지난 5일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해 박 전 사무장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주식회사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2심 판단이 나왔다.

1심과 같은 박 전 사무장의 일부 승소였다. 하지만 손해배상 금액이 다소 높아졌다. 1심 재판부는 대한항공이 책임져야 할 금액을 2000만원으로 한정했지만 2심 재판부는 그보다 5000만원이 더 높아진 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2심 재판부는 "대한항공은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인격권 등을 침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고 혹시 피해를 입었다면 그에 대한 보호조치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한항공은 조 전 부사장의 불법행위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했어야 한다"면서 "더군다나 대한항공은 누구보다도 승객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회사인데, 조 전 부사장의 불법행위로 다수 승객이 탑승한 항공기 안전에 위험이 초래됐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항공은 '땅콩회항' 사건 발생 직후 인격에 깊은 상처를 입은 박 전 사무장에 대해 보호조치를 취하거나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채 오히려 사건의 발단을 박 전 사무장과 승무원들 탓으로 돌리고 그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조 전 부사장 개인의 불법행위보다 대한항공이라는 기업의 불법행위가 더 중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규모 기업 집단을 지배하는 사람의 친족 또는 고위 임원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근로자 인격권을 침해하고 고객에 대한 안전 의무를 게을리하는 유사 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자료 산정에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밝혔다.

다만 1심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던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의 책임이 인정된다면서도 그가 1억원을 공탁(피해에 대한 변제를 위해 일정 금액을 법원에 내두는 것)한 점 등을 고려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바 있다.

7000만원과 6억8000만원…박창진 "나의 존엄을 7000만원으로 판결"
/사진=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 페이스북 캡쳐/사진=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 페이스북 캡쳐
판결 선고가 난 당일, 박 전 사무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판결에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을 게시했다.

박 전 사무장은 "오늘 법원은 저 박창진의 존엄을 7000만원으로 판결했다"면서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하고 약 1년 후 미국에서의 소송 진행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요청을 뉴욕 주 법원에 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많은 분들은 우리나라 재벌에게 대항한 저의 삶을 걱정해주셨다"며 "저 또한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번 쓰러지면 재기가 힘든 우리 사회 구조에서 자본권력을 상대로 저항한 제가 겪을 미래는 자명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자를 이유로 경영책임을 노동자에게 넘기며 희생을 강요하고 무수한 갑질로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도 노동자는 생각도 하지 못할 금액의 퇴직금을 챙기는 것을 목도했다"며 이날 판결을 '선택적 정의'라고 표현했다.

조 전 부사장은 대한항공에서 퇴직하며 6억8000만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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