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등 국민인가"…승강기 대표들은 고개를 못들었다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2019.11.0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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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5년간 35명 목숨 앗아간 승강기 사고…국회의원 울린 '미니 국감'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여 심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9.11.07.  jc4321@newsis.com【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여 심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9.11.07. [email protected]


“사람이 일하다가 다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까지 가면 안되는 거죠. 살아서 퇴근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승강기 대기업들은 부끄러워야 해야 합니다.”(환노위 민주당 간사 한정애 의원)



승강기 업계에서 잇따른 사망사고를 질의하던 국회의원이 목이 메어 말을 멈췄다. 승강기 4사 대표들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전체회의장의 모습이다.

환노위는 이날 오전 국회 본청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서득현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송승봉 현대엘리베이터·요시오카 준이치로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조익서 오티스엘리베이터 대표 등 승강기업계 ‘빅4’ CEO(최고경영자)를 증인으로 소환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 실국장들도 자리했다.



최근 5년간 35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내 승강기 업계의 ‘죽음의 외주화’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다. 지난달 21일 고용노동부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서 서 대표를 제외한 3사 대표가 불참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당시 환노위는 이날 현안 질의를 하기로 하고 ‘미니 국감’을 예고했다.

◇"해외에선 '시스템 비계', 국내에선 사고 방치"=국감 기간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도 날카로운 질의로 승강기 회사들을 질타했다. 국내 승강기 신규 설치 대수가 연 4만대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 시장으로 성장했으나 근로자 안전이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의원은 미국·일본·독일·핀란드 작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시스템 비계'를 소개했다. 티센크루프·오티스·미쓰비시 등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에선 사망사고를 떨어뜨리는 장비를 도입하면서도, 국내 근로자 안전 관리에는 소홀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 의원은 “한국 국민만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런 작업을 해야 하는 의무가 어디에 있나”라며 “우리 국민은 미국보다, 독일보다, 일본보다 2등 국민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관계 부처에도 승강기 이용자뿐 아니라 근로자의 안전 관리에도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한 의원은 “부처별로 업무가 파편화돼 (공무원들) 각자가 (이 업무는) 우리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러는 동안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부도 너무 준비를 안했다”고 지적했다. 한 의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질의하던 중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엘리베이터 설치 협력업체 근로자 사망사고에 대한 현안질의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엘리베이터 설치 협력업체 근로자 사망사고에 대한 현안질의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
◇"편법하도급, 사고 부추겨…규정 숙지 없이 사업하나"=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승강기 유지·관리 업무에 대한 하도급이 원칙적으로 금지됨에도 명목상 ‘공동수급계약’ 형태의 편법 하도급 계약이 체결된다고 지적했다. 승강기 대기업이 발주처로부터 대금을 일괄 수령해 협력업체에 나눠주거나, 협력업체 도장이 찍혀진 계약서를 대량 확보해 필요시 사용하는 방식이다.

또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사실상 하도급하는 비율이 70% 넘는 경우도 파악됐다고 김 의원은 꼬집었다. 현행 승강기안전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일부 승강기 유지·관리 업무를 하도급하는 경우에도 전체 업무의 50%를 넘어선 안된다.

김 의원은 “(대기업들이) 운영규정을 정확히 숙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어기고 하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런 방식의 계약이 공동수급계약이 아닌 하도급 계약이라며 대금 일괄 수령 방식도 규정 위반이라고 못 박았다.

◇야당도 '한 목소리'…"중진국도 이런 사고 없다"=강효상 한국당 의원은 승강기 대기업 간 공사기간 단축 경쟁에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희생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설사의 공사기간 단축 요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표준 공사기간 가이드라인’ 도입 등을 촉구했다.

강 의원은 “중진국만 해도 이런 사고가 없다. 부끄러워 해야 한다”며 “고위험 직군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이런 사고가 근절되도록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를 진행한 김학용 환노위원장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부끄러운 자회상이 아닐 수 없다”며 “안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 안전 의식이 뒤떨어지는데 승강기업계에도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한숨 지었다.

이어 “오늘 현안 질의를 계기로 엘리베이터 관련 안전의 역사가 바뀌길 소망한다”며 “이재갑 장관을 중심으로 금년이 가기 전까지 관련 종합 대책이 수립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서득현(왼쪽부터) 티센 엘리베이터 대표, 송승현 현대엘리베이터 대표, 조익서 오티스 엘리베이터 대표, 요시오코 준이치로 미쓰비시 엘리베이터 대표이사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엘리베이터 설치 협력업체 근로자 사망사고에 대한 현안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서득현(왼쪽부터) 티센 엘리베이터 대표, 송승현 현대엘리베이터 대표, 조익서 오티스 엘리베이터 대표, 요시오코 준이치로 미쓰비시 엘리베이터 대표이사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엘리베이터 설치 협력업체 근로자 사망사고에 대한 현안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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