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가족 나정보 / 사진=임종철
초등학생 때 어머니께 떠밀려 세뱃돈으로 만든 A은행 어린이적금 통장, 대학생 때 입학금과 등록금을 내기 위해 학교 입점은행에 만든 B은행 통장, 입사와 함께 회사 주거래인 C은행에 개설한 월급통장까지. 하지만 지난달 30일 C은행의 오픈뱅킹 서비스에 가입한 나씨는 2개의 통장을 더 발견했다. 첫사랑 그녀와 함께였던 D은행의 데이트통장은 십수년 전 몽글몽글한 추억을 되살렸고, 첫 이별의 아픔을 안겼던 군대 시절의 E은행 월급통장까지. 30년 나씨의 뜨겁고 차가웠던 순간이 오픈뱅킹을 통해 한자리에 모였다.
가입은 번거롭지만…이용은 간편
국민은행 오픈뱅킹 / 사진=변휘
이같은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위원회는 오는 11일부터 은행마다 순차적으로 계좌번호 자동입력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계좌번호의 덫’을 피하려면 오픈뱅킹 가입을 조금 미루는 것도 방법이다.
가입 문턱을 넘으면 이용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어렵사리 등록만 해 놓으면 A은행 앱에서 타행의 내 계좌정보를 한 눈에 조회할 수 있다. 다만 입출금계좌만 조회 가능하고 예·적금 정보는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체의 경우 A은행 앱에서 B은행-C은행 잔고를 오가도록 하는 ‘타행간 송금’은 국민·신한 등에서만 가능하다. 대부분 은행은 A앱에서 A↔B·A↔C 간 거래만 가능한 상태다. 시범서비스 중인 만큼 차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내가 몰아줄 은행, 선택은?102만명의 가입자, 1215만건의 거래횟수는 한 사람이 여러 은행 앱의 오픈뱅킹 서비스에 가입하고, 역시 여러 은행 앱으로 조회·이체 등을 시도해 본 횟수가 포함된 결과다. 서비스 초기 각 은행의 사전가입 독려와 경품 이벤트 등이 뜨거웠던 점을 고려하면, 초반 흥행으로 보기엔 ‘허수’가 적지 않다.
현재 은행마다 내놓은 오픈뱅킹 서비스는 대동소이하다. 시범서비스 기간인 탓에 은행마다 ‘비장의 카드’를 내보이지도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각 은행의 모객 전략을 즐길 때다. 각종 가전제품과 모바일 쿠폰 등 경품은 물론 ‘현금’도 쏜다.
신한은행은 새로 선보인 ‘MY자산’에 여러 자산을 추가하면 최대 500만원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며, NH농협은행도 오픈뱅킹에 타 은행 계좌를 등록해 급여이체 등을 하면 최대 300만원을 준다. 하나은행도 오픈뱅킹 가입 조건으로 최대 100만 하나머니를, 국민은행은 100만원 현금에 더해 ‘희귀템’인 삼성전자 갤럭시 폴드, 우리은행은 백화점 상품권과 에어팟, 다이슨 드라이어, 기업은행은 애플 아이폰11 등을 각각 경품으로 내걸었다.
오픈뱅킹, 꼭 해야할까10개 은행이 오픈뱅킹 서비스를 야심차게 내보였지만 토스·뱅크샐러드 등 기존 핀테크 플랫폼을 통해서도 ‘내 계좌 모아보기’와 송금·조회 등은 가능했던 만큼 ‘큰 효용성을 못 느낀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처럼 단순 조회·이체 이상을 선보이지 못한다면 금융시장의 큰 변화를 불러오기 역부족일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다만 소비자가 흩어져 있는 자신의 금융정보를 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고, 이른바 ‘주거래’ 금융회사를 손쉽게 바꿀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금융회사들은 긴장하고 있다. 또 데이터 집중을 통한 PFM(개인형자산관리) 서비스 토대가 마련돼 자산가가 아니더라도 개인 맞춤형 자산관리를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아닐 수 있지만 여러 가지 개인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오픈뱅킹 서비스를 받아볼만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