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천지' 된 일본, 노인 때문에?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11.07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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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인구 25% 육박하는 노인 인구
현금 집에 보관해 쉽게 피해당해
소비세 인상 등 제도 개편땐 사기 기승

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세계에서 고령화가 제일 빠른 일본이 보이스피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속이기 쉬운데다, 소비세 증세 등 바뀌는 제도에 따른 혼란을 악용한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6일 NHK에 따르면 일본 경찰청은 지난 9월 인터넷 뱅킹 부정 송금으로 인한 사기 피해 규모가 전국 436건으로 전달에 비해 4배 급증했다고 밝혔다. 한달 피해건수로는 2012년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많았다. 피해액은 4억2600만엔(약 45억2600만원)으로 전년 연간 피해액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인터넷 뱅킹 송금을 포함한 일본의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규모는 훨씬 크다. 지난해에만 1만6493건, 피해액만도 356억8000만엔에 달했다. 피해자의 80%가 65세 이상 노인들이었다.

사기 수법 중 가장 많은 건 가족이나 지인을 사칭하는 '오레오레(俺俺·나야 나)' 사기이다. 제도가 바뀔 때는 금융기관 관계자 사칭이 기승을 부린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 송금이나, 직접 찾아가 현금카드 빼돌리기, 현금 수령 등의 방식을 취한다.



중국에 주로 기반을 둔 보이스피싱 조직은 클라우스 서비스를 이용해 범행도구를 공유하기도 한다. 전날 경찰청은 중국 지린성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조직의 조직원 14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일본 노인들만 50여명이고 피해액은 1억8000만엔(약 19억1200만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범행을 저지른 지역도 도쿄, 오사카, 나고야, 가나가와 등 다양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클라우스 서비스를 이용해 '범행도구'를 조직원들에게 전달하는 수법을 썼다. 사전에 개인정보를 입수한 노인들의 신상정보와 가짜 명함, 신분을 증명하는 각종 서류들을 업로드해 놓고 조직원들이 필요할 때마다 편의점에서 인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근에는 카드 바꿔치기 수법도 등장했다. 노인이 사는 집에 전화를 걸고 찾아가 현금카드가 부정하게 사용되고 있으니, '카드 봉인'을 해야한다고 말하면서 현금카드와 비밀번호를 적은 종이를 흰봉투에 넣으라고 시키는 것이다. 준비가 끝나면 봉투에 인감을 찍어야한다면서 피해자에게 인감을 찾아오라고 시킨뒤 그 사이 미리 준비해둔 봉투와 바꿔치기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종이봉투 겉면에 인감을 찍고 다시 금융기관에서 연락이 갈 때까지 열지 말라고 지시한 후 빼돌린 카드로 현금을 인출한다. 올 1월부터 9월사이 이같은 카드 바꿔치기 피해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2배 증가한 58건으로 피해액은 8568만엔(약 9억1000만엔)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1일자로 일본에서 소비세가 인상되면서 이를 악용한 사기도 늘고 있다. 주로 보험급을 환급해줘야 하는데 소비세 인상 때문에 ATM기기에서만 환급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처럼 각종 보이스피싱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노인 인구가 전체의 25%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데다가 대다수 노인들이 거동 불편 등을 이유로 집안에 현금 보유를 선호하고 있어서다. NHK는 여기에 최첨단 도구들이 범행을 정교하고, 간편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줬고, 제도 개편 등을 악용하는 범죄도 늘고 있다고 했다.

고베대학 모리이 마사카츠 교수는 "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이용해 스마트폰만 있으면 범행을 저지를 수 있게 됐다"면서 "이들에 대한 규제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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