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쓰고 바르면 뜬다…'비스코걸' 누구길래

머니투데이 배소진 기자 2019.11.0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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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즈 BTS(Biz & Tech Story)]
'브이-에스-씨-오'가 아니라 '비스-코'
Z세대의 현실 캐릭터로서의 비스코걸
이들이 찍은 브랜드는 모두 떴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그녀가 쓰고 바르면 뜬다…'비스코걸' 누구길래
'비스코걸'(VSCO girl). 최근 미국에서 가장 '핫'한 인터넷 유행어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가 163만 건, 틱톡 해시태그는 4억 건이 넘는다.



비스코걸은 특정 브랜드를 통해 공통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10대 후반~20대 초반 Z세대 여성들을 뜻한다. 원래 비슷한 유행을 따르는 여성을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하며 생겨난 단어인데 최근 급속히 확산되며 하나의 문화 현상, 사회적 상징으로 떠올랐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브이-에스-씨-오가 아니라 비스-코(vis-co)로 발음한다"며 "비스코걸이 온통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고 비스코걸 현상을 크게 다루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정의됐던 Z세대가 현실의 '캐릭터'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주 소비계층이 될 Z세대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떤 브랜드에 반응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패션트렌드 예측기관 '도네거 그룹'의 롬니 제이콥스 고객 분석 책임자는 최근 CNBC에 "지난 수년간 이뤄진 연구에서 10대 소비자들은 개인화되기를 원하고 튀고 싶어 하는 존재로만 알려졌지만 비스코걸에는 공동으로 추구하는 특정 미학이 존재한다"며 "또래 집단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어울리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분석했다.

◇비스코걸이 찍은 브랜드는 뜬다
/사진=VSCO/사진=VSCO

비스코걸이라는 단어는 사진편집 앱 '비스코(VSCO)'에서 나왔다. Z세대 여성들이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릴 때 늘 이 앱으로 보정해 #VSC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앱은 ‘뽀샤시’하게 ‘블러(blur)’ 처리하는 대신 전문가용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사진을 보정해준다. 연 20달러를 내면 130개 이상 전용 필터를 사용할 수 있는 구독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현재 유료 회원만 200만 명에 달한다. 유료회원 대부분이 25살 미만이다. 덕분에 2018년 매출이 5000만 달러(580억 원), 회사 가치는 5억 달러(5800억 원)에 달한다. 2013년 인스타그램이 인수를 제의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최근 사용자들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Z세대 보고서'를 낸 비스코는 "우리 사용자의 75%를 차지하는 Z세대는 소셜미디어를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며 "사용자의 79%가 비스코로 사진을 편집하는 것이 자신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답변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시작된 비스코걸이 찍은 대표적인 브랜드를 소개한다.

/사진=하이드로 플라스크/사진=하이드로 플라스크
① 하이드로 플라스크 텀블러

2009년 출시된 진공 텀블러 브랜드 '하이드로 플라스크'(Hydro Flask)는 비스코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제품이다. 원래 튼튼하고 흠집이 잘 나지 않는데다 보온·보냉 효과가 뛰어나 하이킹,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했다. 그러다 11가지의 병 디자인과 3가지의 뚜껑, 그리고 14가지 색상을 조합해 나만의 물병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Z세대에게 어필하면서 매출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조사기관 '블룸리치'에 따르면 비스코걸이 유행하기 시작한 2018년 하이드로 플라스크 판매는 전년대비 239% 상승했다.

/사진=피엘라벤/사진=피엘라벤
➁ 피엘라벤 백팩

1960년 창업한 스웨덴 아웃도어 브랜드 '피엘라벤'(Fjallraven)의 학생용 가방 '칸켄'도 이들에겐 ‘잇템’이다. 많은 책을 넣어도 어깨가 아프지 않고 단순하고 세련된 북유럽 특유의 디자인에다 색상이 54종, 크기가 6종으로 다양하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해 오래 쓸 수 있고 더러워지면 비누로 쓱쓱 닦아낼 수 있다. 유럽에선 '국민 책가방'으로 불릴 정도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는데 미국에서는 비스코걸이 찾기 시작하면서 2018년 매출이 33% 늘었다.

/사진=푸라비다/사진=푸라비다
③ 푸라비다 팔찌

2010년 캘리포니아 출신 두 대학생이 창업한 '푸라비다'(Pura Vida) 팔찌 역시 비스코걸이 많이 찾는 브랜드다. 두 사람은 코스타리카로 여행을 갔다가 주민들이 수공예품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는 것을 보고 실 팔찌 400개를 사서 미국에서 판매하다 창업까지 했다. 고객이 디자인을 선택하면 12~28달러 저렴한 가격에 코스타리카 현지 장인 800여명이 만들어 보내준다. 지난 6월 미국 핸드백 브랜드 '베라 브래들리'에 1억3000만 달러(1500억 원)에 인수됐다.

/사진=버켄스탁/사진=버켄스탁
④ 크록스 또는 버겐스탁, 그리고 반스

비스코걸은 편한 신발을 좋아한다. 덕분에 못생겼지만 폭신폭신하고 장식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크록스'와 신을수록 발모양에 맞게 변하는 '버켄스탁'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아무 옷에나 편하게 받쳐 신을 수 있는 '반스'의 슬립온도 유행이다. 미국에서 크록스의 2019년 3분기 판매량은 전년대비 9.4% 증가했고 반스의 체크무늬 슬립온은 전년대비 매출이 25% 늘어났다. 버켄스탁은 노드스트롬 백화점, 신발 전문 인터넷 쇼핑몰 자포스가 전년 대비 재고량을 각각 140%, 171% 늘렸다.

/사진=카멕스/사진=카멕스
⑤ 카멕스의 립밤

비스코걸들은 진한 화장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립스틱 대신 촉촉하고 자연스러운 입술의 색을 살려주는 립밤을 주로 사용한다. 특히 이들이 좋아하는 제품은 2달러짜리 약국브랜드 '카멕스'(Carmex)의 립밤. 창업한 지 80년도 넘었는데 갑자기 인기가 급상승했다. 조나 맨쿠소 카멕스 부사장은 미국 뷰티매거진 '인투더글로스'에서 "비스코걸들을 우리 브랜드로 오게 만들어준 그 힘이 무엇인지는 사실 우리에게도 미스터리"라며 놀라워했다.

◇비스코걸이 선택한 브랜드의 공통점
이들 브랜드들은 비스코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담고 있다. 이들에겐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방식이 그 가치를 담고 있는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사진=푸라비다/사진=푸라비다


① 환경보호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상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Z세대는 텀블러가 필수품이다. 환경보호가 자연스러운 일상이기 때문에 이들에겐 거창한 친환경 구호보다 "거북이가 불쌍하잖아" 한 마디가 더 설득력이 있다.

➁ 착한 브랜드만 골라쓴다.
'지속가능한'(Sustainable) 브랜드, '착한' 브랜드도 이들의 취향을 저격한다. 푸라비다는 창업 목적 자체가 코스타리카 장인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팔찌 판매액의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피엘라벤은 공정과정을 개선해 재활용 플라스틱 병에서 뽑아낸 섬유로 가방을 만든다.

③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몸매를 드러내는 옷보다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 완벽해 보이는 색조화장 대신 촉촉하고 건강해 보이는 스킨케어 위주 화장을 선호한다. 도네거 그룹은 비스코걸을 "느긋한 캘리포니아 바닷가 해변의 길거리 패션 감성"이라고 묘사했다. 결점 하나 없이 완벽한 모습만 공유하던 것에 대한 피로감이 정 반대 이미지를 추구하도록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투자은행 파이퍼 제프리가 최근 10대여성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화장품 소비액은 전년 대비 20% 하락했다. 이 때문에 파이퍼 제프리는 최근 색조화장 브랜드로 유명한 에스티 로더의 투자등급을 한 단계 하향조정하기도 했다.

롬니 제이콥스 도네거 그룹 고객 분석 책임자는 "(비스코걸은) 브랜드를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일종의 '배지'처럼 여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Z세대 소비자들은 어떤 브랜드가 표방한 가치를 자신들이 인정할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을 때 해당 브랜드를 다시 구매한다"며 "앞으로 브랜드의 힘은 이들과 얼마나 공명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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