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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한국 보험산업의 추락

머니투데이 강기택 금융부장 2019.11.05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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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산업은 인플레이션을 먹고 산다. 보험료를 받을 때보다 보험금을 줄 때 돈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목돈 냈더니 푼돈 돌려 주더라’는 말에 보험산업의 수익모델이 담겨 있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베이비붐은 고도성장기 보험사의 가입자를 늘리고 덩치를 키우는데 기여했다. 보험사들은 핵심지역에 건물을 짓고 영업점을 내 본업 외에 부동산으로도 돈을 벌었다.

매달 꼬박꼬박 보험료가 현금으로 들어오는 업의 특성을 간파한 대기업들이 너도 나도 보험사를 세웠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시절에 부실 보험사들이 망하기 직전까지 말이다. 몇몇 보험사들이 시장에서 아웃되고 일본 보험사의 잇따른 파산이 가끔 화제가 됐지만 살아남은 보험사들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다시 외형과 점유율 확대 게임을 벌였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난 지금 보험산업은 과거와 정반대인 흐름 속에 있다. 인플레이션 대신 디플레이션 위험에 맞닥뜨렸다. 저출산으로 미래의 가입자수 감소는 기정사실이 됐다. 실적은 나빠지고 있다. 상반기 생보사 당기순익은 1년 전보다 32.4%, 손보사의 당기순익은 29.5% 줄었다.



보험사의 기업가치도 떨어졌다. 생명보험업계 1,2위인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주가는 지난 8월 역사적 신저가를 찍었다. 얼마간 반등이 있었지만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다. 손해보험업계 톱인 삼성화재의 주가도 10월에 연저점을 경신했다. 6년 반전인 2013년 4월 이래 최저치였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란 보장도 없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2년간 역성장한 보험사의 수입보험료가 올해 0.3%, 내년에는 제로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생명보험의 수입보험료는 4년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예상했다. 고금리로 판 저축성보험은 역마진이 커졌다. 2017년 9월 기준 생보사 의 부채 551조원 중 금리확정형 부채 223조원, 평균부담 이율은 6.1%다. 반면 국고채 10년물의 금리는 지난해 6월말 2.5%대까지 올랐다 최근 최근 1.7%대로 내려 앉았다. 국내외의 다른 자산으로 수익률을 만회하는 건 버겁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소리 소문 없는 위협이다. 고령화는 보험료를 내던 이들이 보험금을 타 간다는 의미다. 보험사의 손익구조가 좋아질 수 없다. 은행은 고령층 자산가들을 상대로 영업을 확대할 수 있겠으나 보험은 이들의 몸을 고려해야 한다.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주는 것도 치명적인 악재다. 일본의 역대 최저 합계출산율은 2005년 1.26명이었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 출산율 0.98이었다. 이는 일본 보험업계보다 한국의 보험업계가 받을 충격이 더 클 것임을 예고한다.


보험사들은 이런 환경에서 이기거나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예컨대 치매보험이나 각종 미니보험 등 틈새상품을 만들었다. 점포수와 인력을 줄이는 구조조정도 했다. 해외투자자산을 사기도 했고, 해외 점포도 늘렸다.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리스크 높은 상품을 팔아 미래를 위태롭게 했다. 최저보증이율이 높은 양로보험에 드라이브를 걸거나 갱신 주기가 긴 실손보험을 팔았던 게 그 예다. 새 회계제도(IFRS17)에 대비하기 위한 자본확충은 미뤄두고 당장의 성과에 연연했다. 그런 회사가 위너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단기간의 매출과 손익, 주가 등에 따라 보수와 임기가 좌우되는 보험사 CEO(최고경영자)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보험산업에는 ‘비합리적’이라는 점이다. 한 보험사가 무리수를 두면 다른 보험사들 역시 같이 움직인다. 이런 경향은 악화일로인 보험산업의 ‘추락’을 가속화할 수 있다. 지금은 ‘성장’보다 ‘생존’, ‘공격’보다 ‘수비’가 우선인 때다. 혼자 살려다 공멸할 수 있고, 혼자 돋보이려다 먼저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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